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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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책이었다. 마르셀, 장, 닥터 정, 마쓰코 네 사람이 연주하는 이야기는 단조가 많은, 음울하면서도 관능적인 곡이었다. 관능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고도 잦았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사실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인물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면모를 보인다. 그런 네 사람이 우연인듯이 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 얽히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가느다란 실타래가 서서히 얽혀들어가는 매듭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다. 라디오에서 폭탄이 내린다고 했다. 폭탄. 그녀의 귓속으로 또 다른 레퀴엠이 쇳소리를 내며 찌르르 파고들었다. ...중략... 갑자기 웬 눈 폭탄이지! 그리고 그녀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폭설이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눈에다 폭탄이라는 말을 연결시키는 나라.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고 마음을 놓았다."

 

한국에 온 마르셀이 말하는 한국에 대한 첫 감상,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중간에 생략된 부분에는 분단 국가라는 이야기와 북한, 핵, 뭐 이런 얘기들이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폭탄이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언어 문화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이 곁들여진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아 걱정하는게 외국인들이 가진 분단 국가의 이미지인가. 사실 그런 걸 평소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보니 새삼스럽다. 더불어, 다소 거친 편이 분명한 우리의 언어 습관도 함께 염려되고.

 

그녀가 한국으로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르셀이 한국으로 오고, 장을 만나고, 또 닥터 정에게 찾아가게 되고, 닥터 정이 마르셀을 만나게 되면서 마쓰코의 존재가 환기되고, 그들의 연결고리를 따라 장도 닥터 정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들은 다시 마르셀과 마쓰코의 흔적을 찾아 나가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서로 앞에 나타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미술품 중개업을 하던 한 프랑스인 부부가 갓 태어난 영아를 연달아 세 번이나 죽이고 앞마당에 묻고는 그것이 발각되자 프랑스로 달아난 일이 있었다. 아빠는 프랑스인이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거라 보증하고 슬픔에 빠진 그들을 돌아가게 해줬는데 그들은 그 뒤로 행적을 감춰버렸다.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 세 구만 덩그러니 남아 그의 책임을 물었다."

 

이 책이 가진 특징 중 하나가 현실과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맞닿아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과거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마치 이 소설이 그 과거 속이 어느 부분으로 존재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현실과 상상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는 자칫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 못할 길에 빠지게 된다. 기억에 맞다면 위의 부분과 같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꽤 끔찍한 사건으로 다뤄지면서 충격을 줬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과 마르셀의 아버지 사이에 연관성을 두면서 현실을 끌어들여 묘한 구체성, 현실감을 준다. 진짜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도록.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 혹은 일본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처들이 광복이 되자 달라진 처지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자녀도 빼앗기고 남편과 그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일본의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주변의 한국인들로부터도 소외당한 채, 가해자이면서 졸지에 피해자가 되어 전라도 어디와 경상도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어디의 작은 마을 인근에 몇몇이 모여 새로 촌락을 이뤄 살고 있었고 지금은 경주 어디의 요양시설에 최후의 몇 사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장의 배경도 그렇고 마쓰코도 그렇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묘함에 대해서도 꽤 깊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일본 안에서 자신의 절반쯤이 혹은 그 이상이나 이하의 부분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 이유는 그게 더 살아가는 것을 쉽게 만들기 때문이고- 또 일제 강점기 이후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 일례를 들어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것 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그닥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기 어려운 면이 있다. 좀 껄끄럽다. 아마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작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 반대적인 표현으로도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경멸과 깔봄이 있다고 함께 언급했는데, 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야기였다.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있듯이, 이들도 상처를 가진 네명의 남녀들이고, 그들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다른 색을 띄는 감정으로 여겨진다. 보기와는 다른, 다른 것들과도 또 다른,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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