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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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나라의 젊은 남자 작가에게 질투를 느낀다. 89년 생. 90년에 이리도 가깝게 태어난, 다듬은 눈썹이 보기 어색한, 이 작가는 벌써 몇편의 글을 써 세상에 낸 것인지. 게다가 그의 글이 가볍긴 하지만 재미있었기 때문에 한층 더 질투가 인다. 이런 글을 써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이 든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도 어떤 단계가 있다. 그 가장 깊은 단계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창작하는 것이라 한다. 책을 예로 들면, 책을 좋아해서 읽는 사람, 책을 좋아해서 읽고 모으는 사람, 책을 좋아해서 읽고 모으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직접 쓰는 사람에 이르는 그런 깊이의 단계. 마지막 단계는 좋아함을 넘어서서 재능이라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니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 단계까지 가는 일은 흔치 않겠지만. 어쨌든 제목 한번 길고 의아한,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만나보았다.

청춘물을 좋아하는데, 때로는 하이틴물 혹은 청소년 도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미권의 작품은 하이틴이라 해야 어울리고, 우리나라 작품은 청소년 도서라고 해야 입에 붙고, 일본의 작품은 청춘물이라 느낌이 온다. 결국은 다 비슷한 시기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뭔가 느낌이 좀 다르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가 혹은 하이틴-청춘물-청소년 도서 사이의 의미 개념이 정말 다른가 모르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청춘물.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들만의 세계인 학교 안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일들을 담았다. 동아리 문화가 많이 발달한 일본의 학교 답게 주인공들은 각자 몸담고 있는 동아리가 있고 그 안에서 공부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열정을 쏟을만한 대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다보면 문득 딱 그 시기만의 고민이나 열정이 너무나 부러워진다. 그때 느낄 수 있는 허무나 고독감 등도 후엔 부끄러울지 몰라도 참 치열하다 싶다.

이야기는 여섯명의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마치 자기 앞에 놓인 시한폭탄을 들고 이야기를 쏟아낸 뒤에 다음 사람에게 휙 건네면 또 받아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듯이. 어떤 식으로든 인물들끼리 연결은 되어 있지만 하나로 모일만한 구심점은 없고 그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사정에 대해 풀어낸다. 그리고 문제의 기리시마 학생은, 동아리를 그만둠으로써 이야기의 첫 시작을 알리는 사건을 만들어주긴 했으나 어쩐지 누구의 '친구'도 아닌, 이야기의 중심도 아닌, 붕 뜬 존재로 남겨져버린다. 정작 기리시마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은 없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조각조각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리미사의 이야기를 모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모든 인물들이 다 붕 떠버린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마치 만화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리묘사도, 상황에 대한 표현도 눈에 그려지듯 생생했다. 예쁘게 교복을 입는 법이나 외모, 눈에 띄는 스타일을 두고 철저히 위와 아래로 그룹을 나눠 그 흐름에 맞게 생활하는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서 일본 특유의 문화가 강조되어 좀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공감되는 면도 있었다. 사회생활도 맵고 쓰다면 그렇겠지만, 그 이상으로 냉랭하고 단호한 것이 학교생활이었던 것을 너무 금방 잊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들기도 했다. 철저한 그룹 생활이 필수적 생존 요소로, 혼자 떨어져 행동하는 것은 곧 소외로 이어지는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금기라는 암묵적 룰이 받아들여지는 곳이 교실안이니까.

신선함이, 젊은 작가의 목소리가 듣고싶어진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 읽으면서 좀 어색했던 것이 고무라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쓴 것이다. 우리식의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좋았을까 그냥 두는 것이 좋았을까 모르겠다. 고무라는 표현을 그냥 이해하기에는 좀 생소하고 왜색이 짙은데 굳이 그 표현만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서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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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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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방현희의 책은 두번째였다. 이 약간 어둡고 짙은, 마치 허스키한 목소리의 재즈 싱어의 노래같은 분위기의 문체를 어디서 봤더라 하고 생각해보았다 문득 저자 소개에 눈이 갔다.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이 작가를 알았던가, 싶었는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이라는 복잡한 제목을 봤다. 그래, 그 책이었다. 바로 이 문체를 그 책에서 읽었었다. 머리 속이 순간 잘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 방현희가 가진 자기만의 색이 분명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저자의 문체나 작품세계가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마음에 잘 들어맞는 편은 아니다. 내 취향과는 별개로 그저, 이토록 분명하게 기억되는 문체나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좋은 일이 아닐까. 자신만의 색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을 보고 지인은 표지가 참 예쁘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글쎄, 표지 안 쪽의 내용을 본다면, 저 표지의 그림이 들큰한 냄새를 풍겨내는 위험한 식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역시 단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로스트 인 서울'이었다. 아마,-아마라는 표현은 사실 어울리지도 않을 정도로 분명히-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했던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한명씩 패널로 나와 그 주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니까 케이비에스의 '미녀들의 수다', 남희석이 사회를 봤던 바로 그 -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일 것이다. 주인공인 그렉안나라는 인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교환학생이었고, 빼어난 외모로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또, 그녀가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약간은 얼띄고 치기어린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독히 냉소적이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 이상으로 감정적이기도 했다.

 

또 다른 단편으로는 '로라, 네 이름은 미조'가 좋았다. 영국인 지인이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본 '영국인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 좀 딱딱해보이고 엄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라는 개인적인 선입견, 이를테면 영국인 보모의 엄격함에 대한 생각이나 음식의 맛보단 밸런스를 고려하는 딱딱한 사고 등 정말 개인적이고 정확한 이유도 없는 - 좀 비슷하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재미있었다. 로라가 영국으로 떠나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하잘 것 없지만 사람 마음만큼은 크게 다치게 하는 것인지 잘 알 법하기도 해서 재미도 있었다. 원래 작고 치졸할수록 그냥 넘기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글쎄, 원하는 것에 대해 무의미한 갈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을 잃은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 넘치는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부어 매번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만 기웃거리고 마는 안쓰럽고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았다.

 

전에 읽었던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보다 이 단편집이 더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좀 더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따로 꼽아놓은 단편들 외에는 그럭저럭이었고, 사실 읽으면서 몰입이 안되 애를 먹은 단편도 있었다. 방현희 작가의 책과 세번째로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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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1
로버트 J. C. 영 지음, 김용규 옮김 / 현암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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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많이 가는 도서였다. 늘 책을 읽는 분야가 한정적인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지냈는데, 인문/사회 관련 도서를 더 많이 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서던 차에 작년부터 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를 한두권씩 읽기 시작했었다. 나름 다양한 분야의, 잘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의 도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었는데, 이번엔 또 자모의 책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이 분야는 둘째치고 출판사의 다양성이 심히 부족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마침 현암사에서 새로 기획한 '우리시대의 주변/횡단 총서'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표지부터 다소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내용은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다른 시리즈 들도 천천히 기쁘게 만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 기대된다.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다룬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사회와 현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서구화된 모델을 세련되고 합리적인 것이라 받아들이는가. 예를들면 분홍은 촌스럽고 핑크는 세련되었다는 감각처럼. 혹은 히잡을 둘러쓴 여자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라 딱하게 여기는 생각같이. 다국적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제 몸 부풀리기에 열중하는 것이 그저 자유경쟁체제 아래서의 당연한 결과인양 받아들이는 일이. 그런 구분을 두는 근간에는 어떤 사고가 작용되고 있는가 생각해 볼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자립해서 섰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종속되어 있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서양국가의 현실을 깨우치며 읽은 기분이다.

 

"흔히 두 가지 종류의 백인이 있다고 얘기되어 왔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백인이 아닌 상황에는 처해본 적이 없는 백인과 그 방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백인인 경우를 경험한 백인이 그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아마 처음으로 그들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은유적으로 말해, 서양 바깥에 있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즉 소수 집단 출신이 된다는 것, 항상 주변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 결코 규범적인 자격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즉 발언할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서문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된 부분이었다. 한국에 온지 몇년이 다 되어가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을 만나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영어만을 사용하며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영어로 말을 하고, 한국인들은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가 영어권 혹은 백인이 사는 나라에 가서 얼마간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나라의 말을 못한다는 것이 불편하거나 부끄러운 일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쩌면 생활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비약적인 경우로,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온지 몇년이나 지났는데도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면. 그 경우에도 주변인들은 그들이 한국말을 배우길 종용하지 않을까.

 

일차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당연시 했던 작은 부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얼마나 서구에 맞춰진 편협하거나 강제적인 잣대에서 비롯되었는가 였다. 서양인들이 비서양을 바라보는 자기 중심적인 시각에 비서양인 우리들도 물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구분, 외국인 중에서도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구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런 구분의 기준 역시 백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유색인종이면서 동시에 같은 아시아 계열의 타 민족을 무시하는 행태는 천박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유럽인들에게 베일은 동양의 에로틱한 신비를 상징하곤 했다. 무슬림들에게 베일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냈다. 오늘날 베일의 의미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많은 서양인들에게 베일은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가부장적 이슬람 사회의 상징이다. 다른 한편 이슬람 사회나 비이슬람 사회의 많은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히잡과 같은 베일은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해왔고, 여성들을 점차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로 그것을 착용해왔다. 그 결과 베일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널리 착용되고 있다. 오늘날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베일은 통제냐 도전이냐, 억압이냐 자율이냐, 가부장제냐 비서양의 공동체적 가치냐를 상징한다."

 

또 하나, 표지에서도 그렇듯이 눈만을 내어놓은 히잡을 쓴 여인이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자신을 두고 어떤 선입견이나 설명을 거부하는 듯한 확고한 눈동자가 표지에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상징적인지- 사실 표지를 본 순간 이 책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 그녀를 둘러 싼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쉽게 떠오른다. 히잡을 갑갑한 멍에로만 떠올렸으나, 그 것이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억압을 해방시켜준다는 시각이 또 다른 억압으로 존재한다는 것, 타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여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와 다름에 대해 편협하고 폭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마주했을때 - 제목이나 표지의 색감마저 - 다소 어렵거나 재미없게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사실 보는 것과는 다른 면이 많은 책이다. 오히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고, 무엇보다 번역이 좋았던 것 같다. 이책이 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하고 읽어서 그보다 부담이 덜해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문장이 꼬여지거나 어색하게 번역된 부분이 적고 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하여 읽기 편했다. 인문/사회 서적에 관심은 있는데 뭘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거나, 쌓아놓은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 고민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른 총서 시리즈들도 기대되는 첫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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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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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광범위하고 방대하진 않지만, 근근히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난민법이 개정된다는 뉴스와 함께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난민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다른 나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우려 섞인 의견들이 많았다. 과격한 표현도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글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난민법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난민법이니 뭐니 나 자신의 입장을 어느 쪽으로 정하기 이전에 관련된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만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입장을 정했다고 생각하고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찾아 공부할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있는 건 또 아니었고. 그러던 차에 '내 이름은 욤비'의 출간 소식과 함께 저자와의 만남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책부터 찾아 읽었다.

 

 

'내 이름은 욤비'는 저자인 욤비 토나씨의 에세이 혹은 자서전과 비슷하다. 그가 고향인 콩고를 떠나 어떻게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에 대한 여정이 꽤 상세히 적혀있다.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정치적 활동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오게 된 경위와 한국에 도착한 처음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했던 일들, 그리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게 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욤비씨는 대체적으로 한국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긍정적인 자세로 이야기하려 한다. 그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좋지만, 공장에서 일하며 만났던 사람들, 특히 그를 새끼야'라고 부르던 사장님들이나 인종 차별을 하면서도 그것이 심각한 문제인지 의식조차 못하는 사람들- 한국의 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 난민법에 대한 나의 입장을 책을 읽고 욤비씨의 강연을 듣고 나면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입장을 분명하게 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우리의 편함을 조금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글쎄... 난민법과 함께 다문화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루어져야 되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인도적 차원에서 편함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입장을 정리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인터넷 댓글에서 본 것처럼 뗏목을 타고 오는 수천 수백의 난민들을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심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한국사회의 문제들과 더불어 생각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다.

 

책 자체는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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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메타포 11
크리스 린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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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시작된다. 마치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좋지 않은 불운으로 비롯된 엉크러진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끊임없이 호소하는 사람이며 이성적인 인물이다. 나는 평화와 안정된 관계를 지향하며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과 나를 부정하고 있다. 그녀는 나의 설득을 전혀 들으려하지 않고, 흥분된 감정으로 거부와 분노만을 보인다. 나는, 그리고 나와 그녀는 결코 그런 것들로 이어져있으면 안되는데.

 

이 책은 주인공 키어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나로 표현되는 인물은 독자에게 모든 상황을 전달해주는 인물인 키어이다. 우리는 키어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키어의 눈, 키어의 귀, 키어의 생각, 키어의 마음. 우리는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인물을 믿고 이야기 속으로 따르게 된다. 낯선 세계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주는 정보를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고 그 정보에 의지하여 책의 마지막 장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길을 찾는다. 우리는 키어가 처한 상황을 난감하게 받아들이며, 키어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 우리와 함께 마지막 장에서 만족스럽게 책을 덮을 수 있길 기대한다. 우리는, 독자이다.

 

이 책의 구성이 바로 이런 독자의 마음을 잘 파고든 것 같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키어의 눈으로 주변을 볼 수 밖에 없는 독자는 주위의 이야기와 자신이 본-키어의 눈- 것이 다름을 의식한다. 그리고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키어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잘 생각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어떤 사람처럼 보이길-되길 원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들은 그에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그가 성숙한 행동을 하는데 서툴수도 있고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가벼운 일들부터. 초대를 받아서 간 축구팀 파티에 불청객인 풋볼팀 친구들이 몰려와 축구 선수들을 괴롭힌 사건. 옷이 벗겨져 풀장에 들어가 있어야 했던 축구선수들이 즐거워했었다'는 키어의 이야기와 그 부분을 빼고 좋지 않았던 부분만 누군가 찍어놓은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부터. 풋볼 시합 중에 일어난 '불운한' 사고로 상대팀의 한 선수가 다시는 풋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버린- 그래서 키어가 킬러로 불리게 된 일까지도 키어는 정당한 시합을 규칙을 지켰기 때문에, 독자들은 진실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독자들의 외부의 시선과 키어 자신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며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의심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키어의 시선이 과연 사실일까? 키어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과연 착한 인물일까? 그리고 키어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점점 가까운 과거로 이야기가 옮겨지기 시작한다. 지지와 키어가 아름다운 밤을 보내게 되는 졸업식날 밤으로. 지지는 남자친구 칼과 작은 다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지를 좋아하고 있던 키어는 그 작은 틈을 대신하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키어는 지지를 위로하기 위해 또, 자신의 졸업식에 불참한 두 누나를 직접 만나러가기 위해 누나들이 있는 대학 기숙사를 지지와 함께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잘 조율해오고 있었다 믿었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도 아주 가까운 친누나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분노에 빠진 키어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동정하기 이전에 그가 가진 차갑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모두 부정하고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남기는 작은 칭찬만을 받아들이는 키어의 모습, 절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자기 변명을 하며 주장을 내세우는 키어의 모습.

 

그리고 키어는 우리의 시선이 되어주는 안내자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날선, 낯선이 인물이 되었다. 키어의 행동에 대해 냉정한 눈으로 이야기하는 누나의 입을 통해 독자들의 불안은 확신이 되어 돌아왔다. 키어는 그가 말하는대로-원하는대로 착한 인물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그렇게 포장하고 싶은 인물이었을 뿐. 집으로 돌아갈 차를 돌려보낸 키어가 누나들에 대한 분노와 술, 약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가 된 키어가 지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를 캠퍼스 안의 방문객 숙소로 인도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되풀이 되어 온 지지와 키어의 대립이 시작된다.

 

키어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지만 지지는 그가 그녀를 강간했다고 말한다. 키어는 그녀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만 지지는 그녀의 입장을 고수한다. 시종일관 키어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봤기 때문에 일견 어떤 상황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지가 원치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키어의 강간은 확실한 사실이다. 에고에 가득찬 인물이 어떻게 타인의 생각을 짓밟고 자신만을 강조하는지 키어를 통해 볼 수 있다.

 

 

데이트 폭력에 관한 청소년 소설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키어라는 인물을 통해 차갑고 잔인한 범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타인과 조율하고 교감할 수 없는 자신만 가득찬 사람, 자신을 우선하기 위해 타인을 냉정한 계산 위에 올려놓아도 무감한 사람이 바로 키어이다. 그런 인물이 꼭 키어와 같은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곁에 있다면 인간적인 유대가 공감되지 않는 단절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해되지 않는 낯선 상황에 떨어진 키어의 시선에서 '나'를 분리해낸다. 키어의 시선과 나의 시선을 동일시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정체를 깨닫게 된다. 나는 자기합리화에 빠진, 자기애에 집중하는 이기적이고 유아적인 행동을 일삼는 키어를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인물에 대한 파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로 독자의 반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읽기에는 편하지 않을지 몰라도 재미있는 방향으로 서술된 좋은 책이었다. 조각 퍼즐을, 끊어진 필름을 맞추어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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