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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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방현희의 책은 두번째였다. 이 약간 어둡고 짙은, 마치 허스키한 목소리의 재즈 싱어의 노래같은 분위기의 문체를 어디서 봤더라 하고 생각해보았다 문득 저자 소개에 눈이 갔다.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이 작가를 알았던가, 싶었는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이라는 복잡한 제목을 봤다. 그래, 그 책이었다. 바로 이 문체를 그 책에서 읽었었다. 머리 속이 순간 잘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 방현희가 가진 자기만의 색이 분명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저자의 문체나 작품세계가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마음에 잘 들어맞는 편은 아니다. 내 취향과는 별개로 그저, 이토록 분명하게 기억되는 문체나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좋은 일이 아닐까. 자신만의 색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을 보고 지인은 표지가 참 예쁘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글쎄, 표지 안 쪽의 내용을 본다면, 저 표지의 그림이 들큰한 냄새를 풍겨내는 위험한 식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역시 단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로스트 인 서울'이었다. 아마,-아마라는 표현은 사실 어울리지도 않을 정도로 분명히-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했던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한명씩 패널로 나와 그 주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니까 케이비에스의 '미녀들의 수다', 남희석이 사회를 봤던 바로 그 -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일 것이다. 주인공인 그렉안나라는 인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교환학생이었고, 빼어난 외모로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또, 그녀가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약간은 얼띄고 치기어린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독히 냉소적이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 이상으로 감정적이기도 했다.

 

또 다른 단편으로는 '로라, 네 이름은 미조'가 좋았다. 영국인 지인이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본 '영국인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 좀 딱딱해보이고 엄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라는 개인적인 선입견, 이를테면 영국인 보모의 엄격함에 대한 생각이나 음식의 맛보단 밸런스를 고려하는 딱딱한 사고 등 정말 개인적이고 정확한 이유도 없는 - 좀 비슷하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재미있었다. 로라가 영국으로 떠나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하잘 것 없지만 사람 마음만큼은 크게 다치게 하는 것인지 잘 알 법하기도 해서 재미도 있었다. 원래 작고 치졸할수록 그냥 넘기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글쎄, 원하는 것에 대해 무의미한 갈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을 잃은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 넘치는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부어 매번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만 기웃거리고 마는 안쓰럽고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았다.

 

전에 읽었던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보다 이 단편집이 더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좀 더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따로 꼽아놓은 단편들 외에는 그럭저럭이었고, 사실 읽으면서 몰입이 안되 애를 먹은 단편도 있었다. 방현희 작가의 책과 세번째로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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