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1
로버트 J. C. 영 지음, 김용규 옮김 / 현암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관심이 많이 가는 도서였다. 늘 책을 읽는 분야가 한정적인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지냈는데, 인문/사회 관련 도서를 더 많이 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서던 차에 작년부터 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하이브리드 총서 시리즈를 한두권씩 읽기 시작했었다. 나름 다양한 분야의, 잘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의 도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었는데, 이번엔 또 자모의 책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이 분야는 둘째치고 출판사의 다양성이 심히 부족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마침 현암사에서 새로 기획한 '우리시대의 주변/횡단 총서'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표지부터 다소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내용은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다른 시리즈 들도 천천히 기쁘게 만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 기대된다.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다룬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사회와 현대 사회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서구화된 모델을 세련되고 합리적인 것이라 받아들이는가. 예를들면 분홍은 촌스럽고 핑크는 세련되었다는 감각처럼. 혹은 히잡을 둘러쓴 여자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라 딱하게 여기는 생각같이. 다국적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고 제 몸 부풀리기에 열중하는 것이 그저 자유경쟁체제 아래서의 당연한 결과인양 받아들이는 일이. 그런 구분을 두는 근간에는 어떤 사고가 작용되고 있는가 생각해 볼 계기를 주는 책이었다. 자립해서 섰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종속되어 있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서양국가의 현실을 깨우치며 읽은 기분이다.

 

"흔히 두 가지 종류의 백인이 있다고 얘기되어 왔다.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백인이 아닌 상황에는 처해본 적이 없는 백인과 그 방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백인인 경우를 경험한 백인이 그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아마 처음으로 그들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은유적으로 말해, 서양 바깥에 있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이 실질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즉 소수 집단 출신이 된다는 것, 항상 주변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 결코 규범적인 자격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즉 발언할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서문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된 부분이었다. 한국에 온지 몇년이 다 되어가도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외국인을 만나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영어만을 사용하며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영어로 말을 하고, 한국인들은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가 영어권 혹은 백인이 사는 나라에 가서 얼마간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나라의 말을 못한다는 것이 불편하거나 부끄러운 일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쩌면 생활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비약적인 경우로, 백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온지 몇년이나 지났는데도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면. 그 경우에도 주변인들은 그들이 한국말을 배우길 종용하지 않을까.

 

일차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당연시 했던 작은 부분들이 어떤 면에서는 얼마나 서구에 맞춰진 편협하거나 강제적인 잣대에서 비롯되었는가 였다. 서양인들이 비서양을 바라보는 자기 중심적인 시각에 비서양인 우리들도 물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구분, 외국인 중에서도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구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런 구분의 기준 역시 백인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유색인종이면서 동시에 같은 아시아 계열의 타 민족을 무시하는 행태는 천박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유럽인들에게 베일은 동양의 에로틱한 신비를 상징하곤 했다. 무슬림들에게 베일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냈다. 오늘날 베일의 의미는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많은 서양인들에게 베일은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가부장적 이슬람 사회의 상징이다. 다른 한편 이슬람 사회나 비이슬람 사회의 많은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히잡과 같은 베일은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해왔고, 여성들을 점차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로 그것을 착용해왔다. 그 결과 베일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널리 착용되고 있다. 오늘날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베일은 통제냐 도전이냐, 억압이냐 자율이냐, 가부장제냐 비서양의 공동체적 가치냐를 상징한다."

 

또 하나, 표지에서도 그렇듯이 눈만을 내어놓은 히잡을 쓴 여인이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자신을 두고 어떤 선입견이나 설명을 거부하는 듯한 확고한 눈동자가 표지에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상징적인지- 사실 표지를 본 순간 이 책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 그녀를 둘러 싼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쉽게 떠오른다. 히잡을 갑갑한 멍에로만 떠올렸으나, 그 것이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억압을 해방시켜준다는 시각이 또 다른 억압으로 존재한다는 것, 타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여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와 다름에 대해 편협하고 폭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마주했을때 - 제목이나 표지의 색감마저 - 다소 어렵거나 재미없게 보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사실 보는 것과는 다른 면이 많은 책이다. 오히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고, 무엇보다 번역이 좋았던 것 같다. 이책이 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하고 읽어서 그보다 부담이 덜해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는데, 문장이 꼬여지거나 어색하게 번역된 부분이 적고 명료하게 의미를 전달하여 읽기 편했다. 인문/사회 서적에 관심은 있는데 뭘 읽어야 좋을지 모르겠거나, 쌓아놓은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 고민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른 총서 시리즈들도 기대되는 첫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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