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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다소 천천한 호흡으로 읽고 있던 이 달의 책은 "도련님"이었습니다.
첨부된 책 사진엔 푸른 빛이 강하게 도는데 실제 책을 대하고 있을 땐 회색이란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거기에 옅은 물빛이 감돌아 보는 위치에 따라 색이 언뜻 달리 보이는 표지의 책입니다. 묘한 색감이 수수하면서도 지그시 바라보게 만드는 끌림을 던집니다. 무게도 가볍고 가을을 맞아 독서하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올해 9월에 출간된 송태욱 번역의 "도련님"은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의 두번째 책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진한 여운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욕심이 없고 고운 심성을 가'진 도련님이 11월의 추위 앞에 나섰습니다. 그가 내뿜는 곧고 - 또 거센 치기가 더운 김을 내뿜고 책장을 넘기는 손에 즐거움이라는 온기를 전하는,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산짐승이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에 내려와 산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같다.'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봇짱-도련님-에게서 순진함이랄까 단순함, 융통성없이 곧이 곧대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보일 때 종을 초월한 유사함이 느껴졌습니다. 엄연히 다른 구석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지요. 도련님이란 인물을 생각하면 세상의 때가 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론 사람냄새난다는 평을 하게 됩니다. 여타의 사람들과 다른데 사람냄새가 나는 인물이라니 쓰면서도 이중적인데요, 묘하게도 도련님이 어떤 인물일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그 존재에 대해 스스로 기대하는 바와 실제 가지고 있는 역량이 다르다는 것을 도련님을 읽으며 다시금 느끼게 되는 요소였습니다.
짧게나마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바로, 도련님이 시골학교에 부임하여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듯 읽으려 했는데, 감정 이입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 반경과 겹치는 부분이 교사의 생활에도 존재하고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경단, 메밀국수 사건- 그러했고, 아이들이 악의없이 행동했건 엇나감으로 그러하였건 여부를 떠나 교사에게 반발하는 행동을 보이면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화(이자 상처)가 나고야 마는 점이 그러했습니다. 마치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같이 화가 나 읽기를 멈추기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짧은 교사생활이 도련님과 마찬가지로 요령부득이었던 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 중 가장 강렬했던 감상은 재미나 화,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호기심보다도 '부러움'이었습니다. 도련님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속까지도 알아주고, 감싸주려는 존재인 기요가 갈수록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벌어지는 선생님들 사이의 암투는 표면적인 내용을 이끌어가지만, 도련님의 마음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기요라는 존재였지요. 기요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하는 부러움과 함께요. 사람들 틈에서 옳고 그름이 혼돈될 때도 믿고 떠올릴 말이 있다면, 일이 아무리 불리하고 잘못되게 돌아가도 돌아가서 받아들여질 사람이 있다면 도련님처럼 배짱좋게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기요가 왜 자신을 칭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도련님이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마찰을 겪으며 다시 기요를 떠올리게 됩니다. 처음엔 기요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그가 말미에 결국 기요의 곁으로 돌아가길 결정했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가진 장점- 우직하지만 올곧고 약간은 대책없이 순수한 성품을 잃지않고도 자신이 있을 곳을 스스로 정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처음엔 그저 철없고 경망되게 생각이 짧았던 도련님이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고, 제자리를 잘 찾아간 것 같아 책장을 덮으며 대견함을 느끼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한편의 성장소설도 되겠습니다.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읽기 편한 고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