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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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있는 일은 아니다. 책을 읽기 전에 한번 주욱 책장을 넘겨보는 것은. 외출하기 전에 가방에 책을 담으면서 그저 무심결에 책장을 오른손 엄지 손 끝에서 왼손 쪽으로 훑어 넘겨보았는데, 그때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의 그 가벼움. '할리' '소녀시대' '루왁커피' '웨이터' '소라' '이본좌'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 따라 자칫 책장 바깥으로 빠져나갈 것 같은 그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공원정대는 말 그대로 그 '조공'원정대였다는 것을 바로 그 때 알았다. '소녀시대'라는 단어가 눈에 딱 들어오던 때.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어찌어찌 지나가던 오리라도 한마리 잡아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능청스러운 세태 반영으로 재미를 이백퍼센트 정도 줬는가 싶으면 또 그렇게까진 아니다. 느끼기에는 작가 최민석의 "능력자"가 떠오르는 것 같았는데 재미는... 또 잘 벼른 칼을 단단히 품은 블랙유머로 세태를 냉정한 수술대 위에 올려 메스를 들이댄 냉철함도... 살짝씩 고개를 기울이게 만드는 약함이 있었다. 물론 자연스럽게 진짜 현실감있는 생활이야기 중간 중간에 딱 우리가 눈감고도 짐작으로 두드려 맞출 수 있을만한 사회-정치적 문제까지 절묘하게 '얹어놓은' 시도는 좋았고, 그 부분에서 가슴으로 확- 와닿는 순간의 통함은 놓친 토끼가 아무려면 어떠랴 싶을 정도로 괜찮은 오리였다. 한마리라 아쉽긴 한데 토끼보다 괜찮은 소득이라 여겨질 법한, 그런 오리.

 

처음엔 다른 작가들이, 혹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좀 쓸 법한 사람들이 거쳐갔을 법한 다 큰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스펙이고 비전이고 가진 것 없어 루저라 불리우는 젊은 세대들, 커피라는 음료가 자신의 영역의 뛰어넘어 현실감 없는 무절제한 소비와 공상을 일삼는 된장 문화의 아이콘이 된 현실에 대해 한 번 더 언급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다. 그래서 줄곧 반쯤은 점수를 깎아내리고 읽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기 좋은 무대 위에 올려 말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애쓴 장치로 트렌디함을 첨가해놓았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트렌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과 트렌디함을 장치로 쓴 것은 좀 다르니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이력에 빛나는 작가의 첫 소설집이니만큼 다음 묶음이 더 기대된다. 사회적으로 다루어져야 될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그것이 트렌디함이 되기 전에 배상민 작가의 글로 발빠르게 만나보고 싶다. 그럼 지금보다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더 세련된 장치를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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