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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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두편쯤은 접해보았을, 어쩌면 가장 클래식한 교육서. 이솝 우화 전집의 원전 번역본이 현대지성에서 출간되었다. 이솝 우화라고 하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익숙하고 읽기 좋은 간결한 이야기다. 현대지성의 이솝 우화 전집은 우화 원작의 가짓수가 여타의 전집들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많고, 또 그 목록이 익숙한 것부터 전혀 읽어본 적 없는 새로운 것들까지 두루 실려있어 엄선된 원전들을 추려 펼쳐내었다는 점이 돋보였다. 또 어린시절부터 한번쯤은 접해봤을 이솝의 우화를 번역의 번역본으로, 쉽게 읽히는 각색을 거쳐 접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의 내용을 직접 옮긴 문장으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번 전집이 기존의 것들과 가진 이런 차별성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솝 우화 전집을 다시 읽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흔한 고정관념으로 아이들이 읽는 짧은 이야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은 뒤로는 굳이 찾아 읽어본 적이 없다. 책을 읽어줄 일이 있을때나 가끔 우연히 마주치는 유명하고 짧은 우화들을 큰 의미두지 않고 흝어 넘겼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너무 깊이 있는 내용이 아닐까 싶은 의미를 담고 있어보였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찬한 고전이니만큼 성인에게도 곱씹을수록 깨달음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지혜의 정수이자 삶의 의미가 담겨있는 그릇이었다. 더불어 국내 최초로 클래식 일러스트를 수록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표지에서 보이는 그림이 인상적인 만큼 책 안의 그림들도 화려한 색이 칠해진 세련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 좋았다.

 

 전집류를 보면 모으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관심이 갈 것 같다. 클래식 일러스트를 삽화로 담아낸 원전 번역본이니 특별한 의미를 담아 한번쯤 읽어보거나, 소장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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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1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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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입니다.

가을에는 마땅히 시집 한 권 읽어야 심신이 안정되고 올바르고 성숙된 현대사회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시를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범인들을 위하여 나태주 시인이 가려뽑은 국내 명시 114편을 수록한 시집의 출간 소식이 반갑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우울감 호소하는 분들도 많고, 일조량이 줄어들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의 변화를 타는 분들도 많으실텐데, 시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시인 한 사람의 시집을 고스란히 읽는 일이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아서 시집을 읽는다는 게 어색할 때가 있는데 많은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읽어보고 접해볼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인 것 같아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가 더욱 기대되었다. 


 읽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책에 실린 시를 꼽아낸 시인이 가진 시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사람을 살게 만드는 시라니,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어쩐지 한 편씩 읽는 동안 시나브로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기운이 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니 시인이 책의 첫 머리에 쓴 글의 의미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시가 주는 덕성, 힘, 손길, 마음의 약...' 특별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잘 아는 사람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인 나태주의 안내와 함께 국내 여러 문인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시들을 고루 만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가끔 시집을 읽는다. 좋아서 읽는 시집이래도 가끔은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얇고 가벼운 시집이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인 나태주가 직접 선정한 우리시 114편을 읽는 동안은 그런 염려나 부담을 내려놓아도 괜찮았다. 크게 다섯 갈래로 담은 시들이 있고 각 시 한 편 한 편 마다 달아놓은 짧은 글이 감상의 문턱을 낮춰 읽는 이의 감상을 돕는다. 그동안 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아마, 시에 대한 경험이 교과서적 읽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시인 나태주의 덧붙임은 이와 달리 그가 소개하는 시와 시인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감상을 돕는 길잡이가 되어주지만 암기식의 정보를 쏟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첫만남의 자리에서 믿음직한 사람에게 소개를 받는 느낌이 든다.
 
 가을이 되니 선득해지는 바람을 따라 감성을 채우고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싶고, 시집이라고 한 권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를 읽어보자. 시가 가지고 있는 온기와, 시인 나태주가 담아낸 애정이 잘 담겨진 한 권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에는 읽으면서 좋았던 시를 쓴 시인의 시집도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또 교과서에서 만난 시를 읽을 때에는 몰랐던 그저 감상만 해도 괜찮은 시 읽기 경험을 통해 감동을 느끼고 감성이 충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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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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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는 점심 배식으로 나온 과일을 절대 본인이 먹는 법이 없었다. 우리도 학교 급식에서 과일을 받아 먹을 수 있는데, 할머니는 꼭 우리에게 주려고 과일을 싸 오곤 했다. 할머니는 겨우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과일을 반으로 잘라 온기와 나에게 한 조각씩 나눠 주었는데, 매번 내 조각이 조금 더 컸다. (65) "

 

 닮은 꼴들을 찾아보았다. '스노볼'에서 해리의 닮은 꼴들을 찾아다니듯, '스노볼'의 닮은 꼴들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보려는 호기심은 당연할 것이다.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어버리는 기후위기가 닥쳐오고, 소수의 사람들만 특권을 누리고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 거의 모든 순간이 방송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설정에서 이미 우리는 아주 유명한 두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설국열차'와 '트루먼 쇼'. 복제인간을 만들어 인간을 다른 인간의 스페어로 쓴다는 것도 '아일랜드'같은 영화에서 이미 만난 적 있다. 어쩌면 미래사회를 그리는 가장 식상한 방법으로 마지막 남은 재미를 뽑아낸 것 같은 책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나라면 바퀴를 돌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나라면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할까? 나라면 도전할까? 나라면 망설일까? 나라면? 그만큼 몰입도 잘되고, 나의 가치관, 욕망, 양심을 놓고 인물에 이입해 볼 정도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내용이다. 영 어덜트 소설이라는 말이 다소 낯선데 '스노볼'을 읽다보면 청소년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약간은 가벼운 문장과 깊이 있는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내용에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두툼한 무게감에 놀랐는데 단숨에 마지막장까지 읽게 되고, 심지어 이 한 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지게 될만큼 잘 읽힌다.

 

 '스노볼'은 재밌다. 하지만 책에서 담고 있는 세계는 얄팍하고 불완전한데 마지막까지 열린 상태로 끝맺어진 탓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딘지 아쉽다. 이 소녀들이 어떤 결심을 했건, 어떤 도전을 했건 그 단발의 시도가 구조를 뒤바꿀만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 안의 세계를 해리와 초밤, 소명, 시내의 용기로 해체하고 전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읽던 독자에게는 약간의 실망을 남겼다. 끝까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본회와 어떤 역할도 가져보지 못하고 소모 된듯한 제노, 초밤의 반쪽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온기까지. 주변 인물들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다음 이야기가 필요하다.   

 

 읽으면서 머리속으로 상상해내는 세계로는 부족한 듯 하여 작가가 만들어 낸 스노볼 같은 미래 세계의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을 볼 수 있다면 넷플릭스 같은데서 판권을 사가도 좋을텐데,하고 바랬다. 분명히 시리즈물로 제작되어 나올만한 매력적인 세계를 가졌다. 우리나라가 판타지 영화를 잘 만든다면 기대해볼 법 한데, 아무래도 어렵겠지 싶어 아쉽다. 다만 '스노볼'의 두번째 이야기를 기다린다. 지금 구축해놓은 세계와 사건을 바탕으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이 다음이 되지 않을까?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처럼 재밌었던만큼 인물들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다음 스노볼을 꼭 만날 수 있길 바란다.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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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기주의자
율리엔 바크하우스 지음, 박은결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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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기만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크고 작은 목표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세우고, 실패하고, 가끔 이룬다. 오늘 해야할 일에 대해 머리 속에 기억하고 하고 있다가 그날 해치우면 그것도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룬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아주 원대하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만을 '내가 세운 목표'라고 여기고 이에 부담을 느끼거나 혹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느날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글을 봤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람은 어떤 유형인가에 대한 글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고 협동하는 사람? 자신의 목표를 위해 조금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예상했다시피 후자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학습해왔던 생각과 다른 관점이라 언뜻 보고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던 내용인데,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아 아쉬웠던 차에 '자유로운 이기주의자'를 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란 참 어렵다. 덧붙여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도 어렵다. 솔직해지면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은 계산이 돌아간다. 하지만 미성숙함으로 그런 모습을 이해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그런 본능을 내보이는 것은 없어보이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고, 잠깐 이기심을 채운 댓가로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하기도 한다. 이기적 행동이 금기시되다시피 한 탓에, 누군가의 이기적 행동은 도드라지게 보이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고, 행위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싶게 만든다. 그럼 정말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렇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율리엔 바크하우스의 책은 이기주의 만능같은 아주 파격적인 내용을 선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에 얽매여 자신을 억압하지말고, 자신의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라는 메세지를 세련되게 전달한다.

 

 쉬운 예로, 이제는 많이 알려진 비행기 기내 안전수칙 중 하나인 산소마스크 등의 착용 안내를 들 수 있다. 비상 상황 시 보호자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착용하고 아이와 도움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46)이다. 약자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겠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주체인 자신부터 챙겨야 주변을 살필 수 있고, 자신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을 돕느라 자신을 소진시켜버리는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이 반복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하겠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내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린 적은 없었나? 가족의 병간호를 도맡아 했던 적은? 당번이 정해진 집안일이 밀린 것을 대신 처리해준 적은? 이런 것들을 좀 내려놓고 자신에 더 집중해도 괜찮다. 내 생활이 만족스러워야 더 진실된 마음과 여유로 주변을 돌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을 여성들에게 더 많이 추천하고 싶다. 물론 요즘같은 세상엔 '생존을 위해' 아주 조심해서 행동해야겠지만, 여성들은 특히 컴플레인을 망설이지 않는다(60), 상대가 계약을 지킬 경우에만 나도 계약을 지킨다(68),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않는다(77),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99) 같은 원칙들을 좀 더 가까이 해야 한다. 카페에 가서 음료를 살 때도 빨대나 홀더, 하다못해 티슈 한 장이 필요할 때도 '죄송하지만'을 붙여 말하곤 했다. 죄송하지 않은 일에도 너무나 많은 죄송을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난 뒤로 고치려고 하는데, 이런 모습을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서 많이 발견했다. 이런 것들은 굳이 '이기적'인 행동에 들지도 않는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해당되는 면이 있다면 바꿔보다. 다만 자신을 의심해본다(92)는 항목은 읽지말고 지나치자. 자기검열은 이미 차고 넘친다.  

 

 또 하나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가장 좋은 친구는 자신이다(158)'이다. " 대부분 연인 관계는 언젠가 이별로 끝을 맺는다. 독일에서는 부부의 연을 맺은 커플조차도 50퍼센트 정도는 이혼한다. 가족 관계조차도 영원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고 살아 있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갈등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만이 남는다. (159) " 다소 비정하게 보이는 이 문장을 읽으며 자신의 삶과 내면을 타인에 의지하고 그를 통해 채우려고 기대하는 일을 줄이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준비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가장 재밌는 부분은 " 목표를 소문내지 말 것(224) " 이다. 책을 읽기 전에 잠깐 보았던 자료와 비슷한 결이다. 누군가는 타인의 목표를 질투하거나 방해할 수 있다. 남들 앞에 자신의 목표를 공약하는 것도 좋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거나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타인의 검열이라는 압박적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경쟁자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다이어트 한다더니 지금 뭐 먹는거야?' 나 '살이 별로 안 빠진 것 같은데?' 나 '**은 살 안쪄' 같은 말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이기주의'나 '이기주의자'라는 말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은 험한 말 섞어서 이기적이 되자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나쁜년/놈이 되라는 게 아니라 교양있는 성인이라면 이정도의 성숙한 이기적태도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요지로 정리된다. 이 정도는 내 것도 챙기고 살아야 정신 건강에 좋을 법한 내용을 정리해놓았다고 보자. 매운맛인줄 알았는데 보통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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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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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이면 지인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로 했다. 물론 이 생각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관계에는 어떠한 이벤트가 있어야 더 오래도록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쌓여가는 법이라고 지금으로서는 믿고 있기 때문에, 올 연말에도 편지를 주고받자고 강요했다. 사실 이런 건 강요로 할 일은 아니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생소해졌기 때문에- 하다못해 이메일 조차도 이제는 편지용으로 쓰지 않으니까 고집을 부렸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는 지인과는 때로 편지를 주고 받는데, 어느 날 우편함에 놓인 편지를 발견할 때면 항상 그날, 그리고 한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래서 서간문 모음이라는 낯섦도 받아들여보고 싶었다.
 
 이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고 있지만 언젠가 서간문 모음집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음... 너무 내밀하다. '보여질 것을 예상하고' 쓴 것이지만 보여짐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가끔 서간문을 모아둔 책들을 보면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의 내용이 이렇게나 멀쩡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만한 내용이다. 하다못해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고흐의 편지는 가난마저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선간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깊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글쓰기도 훈련이라는데, 싸이월드 시절 감성과 오글거림을 모두 포도알과 바꾼 내가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아마 안될 것이다.
 
 한 편의 서간문 마다 해설이 붙어있는 친절함이 꽤 도움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는다는 것 자체로 맥락과 배경을 몰라도 어느 정도 재미와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만 깊은 이해는 어려웠다. 오히려 해설이 앞에 있어서 이 편지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인지 알고 읽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고 난 뒤에 해설을 보면 다시 돌아가서 기억을 되살려야 하니까. 확실히 초반의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과 '문학 관련 서간문들'은 관심있는 부분이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정치나 로마, 고대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은 전부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깊이있게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읽기 까다로웠다. 
 
 고전과 철학을 통해 인문학을 꽃피울 수 있도록 새로운 사유의 방법론을 제시한 인물이니만큼 내용이 묵직하고 문장이 유려하다. 처음에는 좀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읽다보면 깊이있는 문장과 자연스러운 흐름에 모르는 사이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천천히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다. 페트라르카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그가 남긴 글을 통해 페트라르카를 알아가게 되는 다소 독특한 접근이었다. 어려움을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아마 이탈리아 문학이나 인문,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서간문 그리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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