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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평점 :
연말이면 지인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로 했다. 물론 이 생각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관계에는 어떠한 이벤트가 있어야 더 오래도록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쌓여가는 법이라고 지금으로서는 믿고 있기 때문에, 올 연말에도 편지를 주고받자고 강요했다. 사실 이런 건 강요로 할 일은 아니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생소해졌기 때문에- 하다못해 이메일 조차도 이제는 편지용으로 쓰지 않으니까 고집을 부렸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는 지인과는 때로 편지를 주고 받는데, 어느 날 우편함에 놓인 편지를 발견할 때면 항상 그날, 그리고 한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래서 서간문 모음이라는 낯섦도 받아들여보고 싶었다.
이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아두고 있지만 언젠가 서간문 모음집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음... 너무 내밀하다. '보여질 것을 예상하고' 쓴 것이지만 보여짐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가끔 서간문을 모아둔 책들을 보면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의 내용이 이렇게나 멀쩡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만한 내용이다. 하다못해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고흐의 편지는 가난마저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선간문을 모아놓은 이 책의 깊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글쓰기도 훈련이라는데, 싸이월드 시절 감성과 오글거림을 모두 포도알과 바꾼 내가 이런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아마 안될 것이다.
한 편의 서간문 마다 해설이 붙어있는 친절함이 꽤 도움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는다는 것 자체로 맥락과 배경을 몰라도 어느 정도 재미와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만 깊은 이해는 어려웠다. 오히려 해설이 앞에 있어서 이 편지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전해지게 된 것인지 알고 읽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고 난 뒤에 해설을 보면 다시 돌아가서 기억을 되살려야 하니까. 확실히 초반의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과 '문학 관련 서간문들'은 관심있는 부분이라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정치나 로마, 고대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은 전부 다 읽어보지 못했는데,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깊이있게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서 읽기 까다로웠다.
고전과 철학을 통해 인문학을 꽃피울 수 있도록 새로운 사유의 방법론을 제시한 인물이니만큼 내용이 묵직하고 문장이 유려하다. 처음에는 좀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읽다보면 깊이있는 문장과 자연스러운 흐름에 모르는 사이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천천히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다. 페트라르카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그가 남긴 글을 통해 페트라르카를 알아가게 되는 다소 독특한 접근이었다. 어려움을 예상하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아마 이탈리아 문학이나 인문,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서간문 그리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라는 인물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