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할머니는 점심 배식으로 나온 과일을 절대 본인이 먹는 법이 없었다. 우리도 학교 급식에서 과일을 받아 먹을 수 있는데, 할머니는 꼭 우리에게 주려고 과일을 싸 오곤 했다. 할머니는 겨우 한 입 거리밖에 안 되는 과일을 반으로 잘라 온기와 나에게 한 조각씩 나눠 주었는데, 매번 내 조각이 조금 더 컸다. (65) "

 

 닮은 꼴들을 찾아보았다. '스노볼'에서 해리의 닮은 꼴들을 찾아다니듯, '스노볼'의 닮은 꼴들을 이곳저곳에서 찾아보려는 호기심은 당연할 것이다. 세상이 차갑게 얼어붙어버리는 기후위기가 닥쳐오고, 소수의 사람들만 특권을 누리고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 거의 모든 순간이 방송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설정에서 이미 우리는 아주 유명한 두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설국열차'와 '트루먼 쇼'. 복제인간을 만들어 인간을 다른 인간의 스페어로 쓴다는 것도 '아일랜드'같은 영화에서 이미 만난 적 있다. 어쩌면 미래사회를 그리는 가장 식상한 방법으로 마지막 남은 재미를 뽑아낸 것 같은 책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나라면 바퀴를 돌리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나라면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할까? 나라면 도전할까? 나라면 망설일까? 나라면? 그만큼 몰입도 잘되고, 나의 가치관, 욕망, 양심을 놓고 인물에 이입해 볼 정도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내용이다. 영 어덜트 소설이라는 말이 다소 낯선데 '스노볼'을 읽다보면 청소년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약간은 가벼운 문장과 깊이 있는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내용에 이런 느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두툼한 무게감에 놀랐는데 단숨에 마지막장까지 읽게 되고, 심지어 이 한 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지게 될만큼 잘 읽힌다.

 

 '스노볼'은 재밌다. 하지만 책에서 담고 있는 세계는 얄팍하고 불완전한데 마지막까지 열린 상태로 끝맺어진 탓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딘지 아쉽다. 이 소녀들이 어떤 결심을 했건, 어떤 도전을 했건 그 단발의 시도가 구조를 뒤바꿀만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적어도 소설 안의 세계를 해리와 초밤, 소명, 시내의 용기로 해체하고 전복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읽던 독자에게는 약간의 실망을 남겼다. 끝까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본회와 어떤 역할도 가져보지 못하고 소모 된듯한 제노, 초밤의 반쪽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온기까지. 주변 인물들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다음 이야기가 필요하다.   

 

 읽으면서 머리속으로 상상해내는 세계로는 부족한 듯 하여 작가가 만들어 낸 스노볼 같은 미래 세계의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을 볼 수 있다면 넷플릭스 같은데서 판권을 사가도 좋을텐데,하고 바랬다. 분명히 시리즈물로 제작되어 나올만한 매력적인 세계를 가졌다. 우리나라가 판타지 영화를 잘 만든다면 기대해볼 법 한데, 아무래도 어렵겠지 싶어 아쉽다. 다만 '스노볼'의 두번째 이야기를 기다린다. 지금 구축해놓은 세계와 사건을 바탕으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이 다음이 되지 않을까?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처럼 재밌었던만큼 인물들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다음 스노볼을 꼭 만날 수 있길 바란다.

 

*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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