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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문장이 어떠냐에 따라서 더 어렵게도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이정도의 흐름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을 잘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 말고도 '공리주의' 도 읽을 예정이라 12월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공리주의'도 이렇게만 읽힌다면 괜찮을 것 같다. 유토피아라고 하면 이제는 아마 디스토피아가 더 인기있겠지만, 우리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면서 '어디에도 없는 나라(248)'를 의미하기도 한다. 500년 전에 제시된 이상국가의 틀을 지금 읽으면 어떨까 유토피아는 아직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읽었다.
" 이 나라는 이러한 해롭기 짝이 없는 폐단들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시골의 농장과 마을을 파괴한 자들에게는 그곳을 재건하게 하거나, 그렇게 재건하려는 자들에게 넘기라고 국가가 명령해야 합니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다 사들인 후에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 수를 줄여야 합니다. 농업을 재건하고 모직업을 회복시켜 정직하게 돈을 버는 직종으로 육성하여, 일이 없어 노는 많은 사람이 그런 일에 종사하게 해야 합니다.(49) "
이 문장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다른 결일수도 있으나 얼마 전 제주도를 갈 일이 있어 숙소를 알아보는데 가장 먼저 많이 노출되는 신화월드가 중국자본 소유라는 것을 알고 피해갔었다. 제주도 땅의 상당 부분을 중국인이 사간 것이나, 부동산 규제 속에서 중국자본의 부동산 매입이 제약없이 이루어진 내국인 역차별 상황 같은 것을 보면 시장의 독점이자 농장과 마을의 파괴나 다름 없다. 외국 자본의 과점에 대해서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같은 경우 요즘 무엇보다 독과점과 난개발을 경계해야 하는 분야여서 특히 예민하게 봤었다.
" 반면에 유토피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모든 집은 이미 국가가 철저한 계획 아래 지어 공급했기 때문에, 새 부지에 새 집을 짓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119) "
아무래도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는 부분의 글이 눈에 띄는 법이다. 요즘 주식도 그렇고 부동산 이슈가 워낙 들끓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해도 솔직히 초탈할 수는 없어서 종종 찾아보고는 하는데, 유토피아식 거주법을 보면서 감탄했다. 세상에 이렇기만 하다면야 이렇게 안팍으로 시끄러울 일이 없을텐데.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서 결국은 돈을 좇는 일이 천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피할 도리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씁쓸했다.
" 유토피아에는 극소수의 법만 존재합니다. ...중략... 그들은 너무 많아서 다 읽을 수도 없고 그 뜻이 모호해서 이해할 수도 없는 법을 제정해서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일반 사람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렵고 모호한 법들이 산더미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법을 제정해 공표하는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행할 의무들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복잡한 해석을 거쳐야만 알 수 있는 법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 법을 지키는 사람도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법이 좀 더 단순하고 알기 쉽다면 모든 사람이 법을 알고 지킵니다.(176) "
또 하나 불평등한 삶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과 관련된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 법이란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값이 나오기 때문에, 또 그동안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들을 두고 개인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은 부분이다. 법이 오히려 사각지대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토피아에서는 법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들로 관점을 달리해 보고 있었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볼수도 있는 문제구나 싶은 부분이었다.
오래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한 호흡으로 쭉 읽어나갈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찾았다. 용어 정리나 토머스 모어에 대한 설명 등 추가적인 도움말들이 있다는 점도 좋았다. 이런 구성이라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유토피아의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을 옮겨서 끝 마무리를 대신한다.
" 그럼에도 유토피아 공화국에서 시행되는 것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이 우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바람이 하나의 희망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