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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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라는 제목이 독자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문자 그대로 수긍했을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님이 나무 아래에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면 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고양이에게 말씀이라는 높임말을 붙이는 것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다.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들이 무분별하게 제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와중에 책의 내용은 의외로 평범하다. 고양이님이 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해주시는 내용이 아니었다!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마음속으로 고민을 안고 있을 때 들린 어느 신사에서 미쿠지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만나면 참배당 앞 다라수-엽서나무-의 잎을 한장씩 줍게 되는데, 그 나뭇잎에 써있는 문구가 고민을 해결할 열쇠가 되어준다. 그래서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라는 제목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진짜 말하는 고양이가 나올줄 알았기 때문에 미쿠지라는 고양이의 존재나 나뭇잎에 써있는 문구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두번째 잎사귀 '티켓'의 내용이었다. 사춘기 딸과의 관계를 어찌할 바 몰라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전에 일본에서는 가족들이 욕조의 목욕물을 같이 쓰기 때문에 사춘기가 된 딸이 아빠가 들어갔다 나온 탕의 물을 쓰고 싶지 않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여기서도 냄새난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소심함? 절절함이 웃펐다. 게다가 본인은 엄청난 고민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부러운 부녀관계였던 것 같아 끝까지 몽글몽글하게 재밌게 읽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읽기도 했고, 내용적으로도 큰 매력을 못 느꼈는데 주인공 미하루가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지난 여름 달리기를 조금 해봤는데, 달리기는 확실히 매력있는 운동이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뛰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달리는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힘들지만 달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이 복잡해서 괴롭거나 의욕이 부족해서 고민이라면 겨울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따뜻하게 잘보내고 날이 다시 풀리고나면 달리기를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쓰다듬어주는 건 좋은데, 먹이는 주지 마. 우리 집은 아파트라서 못 키우니까.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애초부터 어중간하게 애정을 줘서는 안 돼.(321) " 일곱번째 잎사귀의 한 부분이다. 나에게도 이런 고양이가 있다. 아파트 입구에서 자주 돌아다니는 녀석인데 귀여워는 하지만 키울 수는 없어 잘 지내고 있나 오가며 확인해본다. 넉살 좋고 애교많은 녀석이라 동네 사람들에게 밥도 잘 얻어먹고 제법 보살핌을 받지만 '책임'은 무거운 것이라 구조되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만 보면 어디든 따라가서 함께 살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항상 안타깝다. 그 고양이가 생각나서일까 일곱번째 이야기와 에필로그까지 따뜻하게 마무리 됐지만 어쩐지 씁쓸한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하지만 책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가끔 '난 평소에 책을 잘 안읽는데 읽은 책 중에서 재밌는 책 추천해줄만한 게 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때마다 책을 읽고 재밌다고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책을 추천해줘야 할지 곤란했었는데 아마 이 책이라면 추천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연말을 맞아 다른 사람에게 가볍고 재밌게 읽을만한 책을 권해주고 싶다면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를 꼽아도 좋겠다. 일본 책 특유의 문체나 문화에 거부감이 있지 않다면 무난하게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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