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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인 부모가 된다는 것 - 세계적인 교육학자 루돌프 드라이커스의
루돌프 드라이커스.비키 솔츠 지음, 김선경 옮김 / 우듬지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민주'적인 부모라는 말이 시작부터 쉽지 않다. 변화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네의 전통적인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민주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부모에게 권위를 바라고 아이에게 순종을 바라는 사회에서 살고 있던 것이 아닌가 먼저 생각해보게 된다. 언뜻,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권위와 순종은 바람직한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가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사회라는 말은 사회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서에도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곧이어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그런 걸 따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는 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가져왔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더 이상 권위의 역할을 맡을 수 없다. 권위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
책에서 부모는 이제 권위의 역을 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와 어떤 관계로 자신의 위치를 형성해야 하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분명 아이에게 규칙이나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적절히 지켜야할 선을 알려주는 역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아이를 무섭게 종용하거나 소리지는, 협박, 폭력 따위는 사용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이와의 힘겨루기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엄격할 필요는 있지만 그 엄격함을 아이를 굴복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데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이 이상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기력한 아이들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부분이 많으며, 여러 상황에서 어른보다 더 슬기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처럼 평등의 개념이 아직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이미 우리 문화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못견뎌한다. 그것이 아이가 자신의 몫을 다 해내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반항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타인을 낮춤으로써 자신을 올려세우려는 행동과 다름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도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말한다. 아이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 만족하거나, 모든 것을 대신 해주고 싶은 욕구가 드는 부모입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고, 모든 것을 도와주고 싶은 만큼 아이의 자율과 가능성 또한 지켜주어야 한다.
"형제가 세 명인 가정에서 한 때 '아기'라는 영예로운 위치를 차지했던 둘째 아이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 '중간'이라는 위치에 놓이는 경우에 이 아이의 입장은 특히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는 이제 큰 아이가 지니는 이점도, 아기로서 누렸던 특권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둘째 아이는 위아래로 압력을 받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자기만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인생도, 사람들도 모두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더욱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행동의 지침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해가 쉽도록 해놓았는데, 그 중에서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잡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은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요새는 아이가 하나인 가정이 많고 많아야 둘 정도겠지만, 형제가 많던 시절에는 보통 둘째들의 개성이 강한 편이었다. 왜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비교적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답을 내놓고 있는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의 행동은 대부분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하고 부모와 주변의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 많았다. 그 점을 가장 주의깊게 여겨야할 것 같았다.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지라도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일이 잘 안 돼서 정말 안됐다." "일이 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어떡하지?" 하고 아이와 아이의 행동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는 단지 기술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한다."
요새 아이들은, 자존심만을 알고 자신감, 자존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가치에 대한 확신, 가능성을 믿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실수, 실패를 아이가 한 행동의 결과물로 문제삼기 보다는 그 일 자체의 결과로 봐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공감이 됐다. 자신의 가치를 믿고 자기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생각 외로 많지 않다. 매우 중요한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의 도전을 염려하기 보다는 응원하고 실패를 탓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또 다음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수단이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언어가 더 비효과적일 때가 많다.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부모 자신의 행동부터 살펴야 한다. 부모가 하는 행동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니면 단순히 귀찮은 행동을 잠시 털어 버리는 것에 불과한지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편명한 선택을 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실수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지 우리의 설교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기지를 발휘한다. 그것이 부모가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모습이든, 부정적인 모습이든 타인의 관심만을 바라고 하는 행위는 아이에게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매번 같은 방식으로만 행동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착한 행동만을 하려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부담을 줄 수도 있고, 온통 비뚤어진 행동으로 상처입으면서 관심을 받으려는 무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힘겨루기나 관심받으려는 아이의 노력들은 너무나도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이 분명한 만큼 부모의 말과 행동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다.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다. 우리는 보통 그 덕목들을 나와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세련된 행동 양식으로 생각한다. 우리보다 미성숙한 존재인 아이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필요치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숙한 행동 양식이 필요한 것은 아이와의 관계인 것 같다. 아이는 마치 거울처럼, 그리고 무섭도록 부모의 행동과 말에 집중하고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성적인 호기심과 장난 등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도 있었는데 큰 문제가 없는 한 아이를 훈육하지 않고 지켜보는 정도로 두도록 조언한 점이 특이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다소 난감하지만 관여하기 껄끄럽게 여겨지는 문제라서 요새는 성적인 부분에 대한 교육적 내용이 담긴 책, 만화, 연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시키거나 직접 주의를 주는 대신 자율적으로 두면 스스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문제로 보고 있다.
또 가족과 함께 하는 활동에 대한 부분에서도 텔레비전에 관한 얘기는 컴퓨터와 연결해볼 수도 있다. 과거에는 텔레비전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우려했고 그것에서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요즘은 컴퓨터나 핸드폰 등의 기기로 그 염려가 옮겨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유해한 매체와 중독성은 과거 텔레비전이 주는 고민보다 더 큰 것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례들이 책 안에 있고 그 사례에 대한 원인 설명과 대처 방법의 제시가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다. 아이들이 생각 이상으로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그 위치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놀랍다. 책은 매우 이성적이면서 엄격한 태도로 아이를 훈육하길 조언하고 있는데, 확실히 우리의 정서로는 쉽지 않은 길임이 느껴진다. 하지만 매우 유익한 길잡이가 될 책임은 분명하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 강압이나 귄위가 아니라 존중을 통한 자아실현을 도울 이야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