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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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첫날과 둘째날의 마음이 달랐다. 처음에 읽으면서 눈에 띄는 표현들이 상투적이고 산부심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지 모르게 산에 대한 찬양인 것이 어쩐지 영 마음에 까칠하게만 닿았다. 부정적인 시선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운의 제목부터가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져서 갑갑하고 의식됐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밤 자고나서 뒷 부분을 연이어 읽어내려가다 보니 전날 느꼈던 불편한 마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이 책이 좋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달라진 건 별로 없는데 다 읽고 나니 책이 온통 내가 붙여놓은 갈피들로 화려해졌을 지경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산을 오를때와 내릴때 마음이 달라지듯이 하루만에 내 마음도 어딘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설산 하나를 넘어 다시 설산, 깊은 겨울 속으로 서서히 빨려든다. 몰아치는 찬바람을 피하려 손수건을 둘러매어 입을 가리니 쌔근거리는 내 숨소리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차가운 침묵, 순정한 고독. 이 또한 겨울 산이 마련해 둔 비밀한 축복이다."

 

 위의 문구를 시작으로 그녀의 글이 내 마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을 든 첫날 많은 분량을 읽지 않아서 꽤 초반부터 울림이 느껴진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산행과 작가 김별아 그리고 에세이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녀도 책에서 표현했듯이 내려올 것을 무엇하러 올라가는지 잘 모르겠고, 이해하고 싶은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산행이라면 손사래를 칠 정도로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오랫동안 산이라는 것이 멀리서 철마다 바뀌는 모습을 보는 용도 외에 내 삶속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의 불편함은 그곳에서부터 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발이 290이나 되는 다 큰 아들을 가진 그녀가 나와 매우 다른 사람인데 김별아라는 여리한 이름이 내 예상과 달라 무색한 인물인데 꽤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으로.

 

 책에 프랑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반가웠다. 개봉했을 당시 혼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화였다는 것을 알고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역시나 꽤 감동적인 이야기였다는 것과 그닥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책에서 언급된 영화 외에도 각 부분을 마무리 짓는 어귀마다 시가 한편씩 실려 있는데 대부분 좋은 시들이어서 곁에 누가 귀라도 기울여 준다면 소리내어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들이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산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녀 주변의, 그녀가 읽은 책과 시와 수필, 세상의 소식들까지 다채롭게 번져있었는데 그 점이 더욱 마음을 끌었다. 마치 같이 산을 오르며 생각이 닿는 여러 이야기를 끌어다 부담없는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대거리를 해야할까, 무슨 주제를 끄집어내야 할까 걱정없이 술술 흘러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말벗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마음을 다친 사람의 삶의 원동력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나는 오랫동안 삶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불신하며 두려움과 불안을 앓아왔다."

 

 전권에서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읽어보지 못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이 없듯이 그녀도 나름의 어려움을 디뎌가며 삶을 견뎌낸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러기에 저런 문구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일테다. 말미에 가면 함께 산행을 했던 아이들과 삶에 있어 고난이 어떤 의미인지 토론하는 부분이 짧게 나오는데, 그녀가 던진 반문에 아이들이 어리둥절했듯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고난이 꼭 심적인 문제는 아니더라도, 삶을 풍족하게 살아내려면 온 마음을 다 써야하는데 남의 것보다 내 것이 먼저 다 쓰고 없어질까봐 마음을 아끼고 사는 요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깟거 다 버리듯 훌훌 써버리면 어쩔까 싶어도 혹시나 마음을 다 쓰고나면 나도 빈껍데기처럼 텅 비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을수록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마음을 다주고 다쳐본 적도 없으면서 다친 흉내부터 내고 산다.

 

 "어쩌면 립 서비스에 가깝긴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이따금 말하곤 한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너를 손가락질하며 네게서 등을 돌리는 한이 있다 해도,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나는 너의 마지막 사람이야."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온전한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부모에게서 받았던 것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을 뿐이다."

 

 아이와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여정을 담아낸 책이라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물씬 담겨있기도 하다. 몇개월간 성큼 자란 아이에 대한 애틋함도 담겨있고, 함께 산행을 하는 다른 아이들이 쓴 글들이 군데군데 들어앉아 있기도 하다. 새삼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느껴지는 모습을 느낄때면, 이런 삶을 살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 휴일이건 남는 시간에 각자의 공간에 틀어박혀 지금 내 가족이 우는지 웃는지도 모르고 사는것보다, 이렇게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것이 좀 덜 편할지는 몰라도 더 예쁜 모습인 것은 확실해보였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아마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열린 자아(open self)', 두 번째는 나는 모르고 남은 아는 '눈먼 자아(blind self)', 세 번째는 나는 알지만 드러내지 않아 남은 모르는 '숨겨진 자아(hidden self)', 그리고 마지막은 나도 남도 모르는 무의식 속의 자아인 '미지의 자아(unknown self)'이다."

 

 자아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어 있기에 마음이 쓰여 옮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대번에 나를 방해하는 것이 숨겨진 자아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눈먼 자아고, 내가 가장 어색한 것이 열린 자아고, 내가 모르는 것이 미지의 자아라고 생각되었다. 한심스런 생각이라 생각한 것을 옮겨와 쓰면서도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녀처럼 산에 오르거나,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뭔가에 집중한다면 이런 구질함이 좀 벗겨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그래도 한참 먼 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 여러 모습들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렇게 책을 읽다가도 문득 이런 부분이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저 네가지 자아에 대한 부분을 읽고 각각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사람들 저마다 다 다른 생각을 할 것은 분명하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책, 참 특이했다. 첫인상이 별로였던 상대도 만나보면 이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끼게 된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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