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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아름답다
우은정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작가의 이력을 살펴봤다. 이 책을 접하게 될, 대상은 그녀보다 더욱 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 그녀는 매우 젊기 때문에 이력을 살펴본다고 해도 크게 나올 것은 없다. 출신 대학, 그리고 그녀가 치른 몇 번의 시험, 그 후의 여행, 그리고 여행 후의 행보가 그녀의 이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좀 더 특별한 젊은이로 만드는 것들이다. 소위 유행어처럼 말하게 되는 '이대나온 여자'가 바로 그녀이고, 스물 넷에 사법고시를 패스하였으며,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지를 일년간 여행하였고, 지금은 사법연수원에 재직중이다. 이 한문장이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줄세우기 필터를 거쳤을 때 그 효과가 더 큰 것이긴 하겠지만, 그녀가 채 서른도 안된 나이에 이 모든 일들을 해왔다는 것을 두고보면 젊음을 남김없이 사용하는 충실하고 치열한 젊은이임은 확실하다.
책은 세부분 정도로 나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녀의 나날들. 공부하느라 힘들고, 남들이 신나게 꾸미고 놀 때 자신을 다독여가며 참아야 했던 많은 것들, 실패에 대한 부담, 공부와 병행해야 하는 일의 고됨 등이 꽤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 남아메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이 좀 적은, 자서전 비슷한 느낌이 나는 여행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스물둘,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온통 가 있는, 그런 것들이 즐거울 때다.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보면서 그렇게 청춘을 채워가는 데에 바쁜 나이.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스물둘을 살고 있다. 크고 빛나는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정말 더 할 수 없을 정도 열심히 살고 있다. 비록 지금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평범한 스물둘의 삶과 조금 다르다 해도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청춘을 채워가기에 바쁜 것뿐이니까."
아마 그녀와 비슷한 꿈을 갖고 있거나 상황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매우 큰 위안이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녀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경험들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녀에게 중요치 않은 문제이다. 사람마다 가치있게 생각하는 인생의 경험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의 인생을 즐겨야 미래의 인생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람이 있고, 미래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지금은 조금 인내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크고 빛나는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면 된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도록 하루를 보내면 그것으로 괜찮다.
" "그럼 빈곤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니?" "그냥 죽죠."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빈곤한 사람들은 그냥 죽는다는 그의 대답보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티 없는 얼굴로, 그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의 태도에 일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너 같은 바보가 나중에 엘리트랍시고 돌아가서 정치한다고 나서대니까 너희 나라가 지금 그런 상황인 거다. 정치, 경제 공부하기 전에 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라.' 그에게 쏘아붙여 주고 싶었다."
그녀가 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바른 생각이 책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추진력이 강하고 젊고 똑부러진 모습이 연상된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비곤한 사람들은 그냥 죽는다고 답한 그루지야 청년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태도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볼 때 꽤 화나고 이해안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가 저렇게 말하게 된 배경을 짐작해보며 동정적인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라 잘못됨을 느끼지 못하는 그 나라의 환경이 씁쓸한 것이다. 마치 빵이 없다는 국민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익-또는 과자, 어쩌면 고기?-을 먹으라고 했다는 누군가의 천진함과도 닮아보인다.
이 외에도 여행지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비교적 정해져 있다는 것과 가죽 염색을 하는 사람들을 사진찍는 일에 대한 단상, 자신들의 지능이 낮다고 자기 민족을 비하하는 사람과 한 이야기, 외국인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지나치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외국인 친구와의 에피소드 등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 내용들이 많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를 보면서 미래를 꿈꾸고 여행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녀처럼 행동하고, 그녀처럼 살라는 것은 아니고, 그녀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알았으면 한다.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내 눈 앞의 어떤 장면도, 그 순간의 분위기와 감동을 잡고 싶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정말 남기고 싶은 것을 찍는다기보다는 무엇을 보아도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숩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꽤 공감한 내용이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엄청, 정말 좋아한다. 외국,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렇게 일반적인 일이 아니어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데 매일같이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서 이렇게 지치지 않고 사진을 좋아하는 걸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엄청,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찍히는 건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특별한, 또는 일상적인 겸험이라도 찍어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기대하던 것에 대해서는 특히 찍어서 남기자는 생각이 더 집요해져서 그것을 즐기는 것을 뒤로하고 사진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데 고치기 쉽지 않고 뒤늦게 깨닫고 아쉬워하는 때가 있다. 기대하고 있던 것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그것을 즐기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녀의 방황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방황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할 줄 아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 그녀의 방황을 아름답게 만든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그녀가 방황이라 일컫는 그녀의 여행이, 방황이 아닌 여행으로 보이게도 만든다. 목표와 현실적 미래가 구축된 바탕 위의 떠남은 실제로는 방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여행이 될 뿐이다. 목표도 의미도 없이, 현실성도 없이 그저 꿈만 꾸고 갈피를 못잡는 것이 방황이다. 방황은 아름답지 않다. 답답하고 자신이 작고 초라해지는 만큼 거칠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혹 누구라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방황을 하려거든 꼭 자신을 갈고 닦은 다음에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