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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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읽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으나, 이토록 즐겁고 기쁘게 여기게 된 것은 바로 시인 이병률의 시집, '찬란'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름도, 이 시집의 제목도 들어본 적이 없으나 서가에 꽂혀있는 시집 중 눈에 띄어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의 담겨있던 시들과의 만남은, 오래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찬란'했다. 시 읽기의 즐거움, 마음에 드는 문구를 마주하고 나오는 깊은 들숨과 날숨을 이병률 시인의 시집 '찬란'을 통해서 새삼스럽게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시인의 시들을 읽다보면,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표현들이 곳곳에 있어 마치 꺾인 길목을 돌아 나서다 마주오는 어떤 커다란 것과 생각지 못하게 맞대어 선 듯한 느낌이 든다. 시인은 같은 것을 먹고도 다른 존재가 되도록 소화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인지,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만의 힘이 참으로 감탄스럽다. 시인의 표현처럼 "어떻게 신은 한 사람 안에다/한 사람을 들여놓게 만들었는지" (슬픔의 바퀴' 일부) 신이 따로이 영혼을 빚어낸 평범한 사람의 틀 안의 특별한 사람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생활에게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

 

 자신을 반으로 나눠 안전한 집에 두고 반을 챙겨 밖으로 나서는 시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일하기가 힘들 때면 나와 같은 사람이 하나쯤 더 있어서 그 애에게는 일을 시키고, 나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와 조금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시인은 그런 나태함보다는 좀 더 다른, 자기 위안과 휴식의 느낌으로 자신을 하나 더 두기 보다는 나를 반으로 떼어내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나눠 살기 어려울 때 차라리 둘이었으면 했지만, 나는 이 시를 읽고서야 둘을 떠올리지 않고 나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 모독

 

내가 당신을 먹는 풍습에 관하여

할 말이 있다면 당신은 해보라

 

내가 끔벅끔벅하는 것은

감정을 연장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치지 못해서도 아니다

 

암굴로 데려와 맨발로 당신을 먹는 것은

극지에 모아둔 당신을 일으켜 살기를 채우는 것

 

깜깜한 당신의 시간을 갈아엎는 것은

환멸의 뼈를 발라 거는 것

 

먹으면 죽어서 달의 빛이 되고

당신의 비명으로 출처가 남겠지만

 

당신을 낡아가야 하리라

너무 많은 절박조차도 마르게 했으므로

 

그러나 끝도 없이 고단했던 당신의 몸

 

당신을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존재하느라 몸을 떨어 감정을 파먹었던 당신을

 

당신이 숱하게 피를 먹던 기록을 지우는 것이니

내가 이리도 한사코 먹겠다는 것은 나란히 소멸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찢기면서도 그리 알라 "

 

 이 시를 읽으면서 말 그대로의 의미로 시를 생각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법의학자의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먹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남자에 대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인 사가와 잇세이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나왔기 때문에 먹고 싶다'는 욕구가 어쩌면 그렇게 소수의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대상에 대한 소유의 욕구를 발현하는 또 하나의 통로로 먹고 싶다는 느낌을 꼽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도의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가해한 일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가볍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 역시 그런 욕구를 어느 정도 포함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에서, 당신을 먹는 풍습'이라 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의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대로의 의미로 생각해도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생각외의 부분은 대상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소유욕으로 인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 시에서는 나란한 소멸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 왼쪽으로 가면 화평합니다

 

왼쪽으로 가면 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바다입니다

마을을 가려면 삼 일이 걸리고 바다로 가려면 이틀이 걸립니다

삼 일은 내 자신이고 이틀은 당신입니다

 

혼자 밥을 먹다 행을 줄이기로 합니다

찬바람에 토하듯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스친 것으로 무슨 인연을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날아오른다고 하여

이 과도한 행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있을 것인지

 

물가에 내놓은 나는 날마다 물가에 가 닿지 못하고

풍만한 먼지 타래만 가구 옆에 쌓아갑니다

 

춤을 추겠다고 감히 인생을 밟은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날마다 치명적 오류 속에 있습니까

 

참으로 나는 왼쪽으로 멀리 가다가도

막을 수 없어서 바다로 갑니다 "

 

 나에게로 가면 화평할 것을 당신에게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어 날마다 치명적 오류 속에 바다로 향하고 있다는 시를 읽으며 삶과,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렸다. 삶은 언제나 두갈래 길의 선택의 중간에 서는 것이며, 그 갈래길에서 나는 자신이 아니라 삶이 이끄는 힘에 의해 운명과 같은 길을 선택하여 걷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에게로 향하다 결국 타인에게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것처럼, 삶은 타인에게 타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다가서는 멀리 떨어진 섬이 가깝도록 소통하는 일의 반복이 된다. 하지만 타인의 곁에 다가가도 그와 완전히 닿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존재를 그 옆에 켜켜이 쌓고 또 쌓을 뿐이다. 시인은 왼쪽으로 가면 화평하다고 말하면서도 왼쪽으로 가지 않는다. 가지 못하는 것처럼. 삶 자체가 어떤 것인지 이 시를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시를 읽으며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을 온전히 담아낼 재주가 없다. 담아내놓을 만큼의 것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표현할 길이 없는 이 느낌을 그러안고 시인의 다른 시를 언젠가 다시 만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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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1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1
은지성 지음 / 황소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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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책 '훔쳐라'라는 책을 읽었다. 최근의 일이다. 보고 배우라는 말 대신 자신의 것으로 훔치라는 표현이 강렬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태도를 보인다. 메시지가 강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느낌은 덜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제목은 훔쳐라"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떠올릴 수록 깊이있게 다가온다. 삶의 주체가 무엇이 되느냐를 묻는 질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를 중심으로 둘 것인지, 내 앞에 놓여지는 순간에 얽매여 휩쓸리듯 살아갈 것인지 느슨해진 삶의 고삐를 조이기 위한 죽비같은 문구다.

 

 "선물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인생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갓난아이를 안은 부모들이 "이 아기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부모님과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소중한 선물이라는 점을 잊지 마라."

 

 아이는 보물이다, 선물이다"라는 말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어떤 풍조인지 모르겠는데, 어른들이 태어난 아이를 칭찬할때나 덕담으로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던 것도 같다. 그 말을 두고 아이 자체가 부모나 주위 어른들에게 귀중한 존재라는 의미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어보니, 그 선물이라는 의미는 어른 뿐 아니라 아이 자신에게도 인생이라는 선물을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는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메세지와 자신의 삶에 있어 행복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조언을 담고 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여러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소개된 인물 오드리 헵번은 원래 영화를 찍은 배우였으니 그녀의 영화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라 비앙 로즈'의 에디트 피아프, '코치 카터'의 켄 카터, 록키 아오키의 딸로 영화배우인 데본 아오키에 대한 언급도 있고, '행복을 찾아서'의 크리스 가드너,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월트 디즈니 등이 소개되어 있다. 인물들과 관련된 영화를 함께 찾아서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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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공자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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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가볍거나 편한 마음으로 선택하여 읽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분량도 적지 않을 뿐더러,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공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이 짐작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에 띄는 이유는, 작가 최인호의 이름과 지금, 새롭게 왜 공자에 대한 소설이 나왔는가에 대한 궁금함 때문일 것이다. 정갈한 느낌의 표지가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공자를 새롭게 접하거나, 논어를 읽는 것보다는 조금 더 편안히 공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은 몇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자의 네번의 출국과 황금시대,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의 공자천추 등 약 다섯 부분으로 공자의 행적이 시기별로 나뉘어있다. 책을 읽기 전에 스스로 배경 지식이 없음을 되새기고 읽었지만 읽으면서 보니 의외로 공자님 말씀"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반갑고, 스스로가 기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워낙 영향력이 큰 인물이기때문에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학부시절 동양 철학과 관련된 기초 교양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논어를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었고, 간신히 그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만약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안영과 경공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안영의 집에 간 경공이 그의 아내를 보고 그녀가 너무 늙고 못생겼으니 자신의 딸을 안영에게 주겠다고 하자, 안영이 자신의 아내와 백년해로를 약속했는데 이제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한 부분이 너무나 노골적이라 놀랐다. 이런 무례가 일상으로 이루어진 시대라니.

 

 책을 읽기에 앞두고 공자와 개성많은 그의 제자들 사이의 에피소드나, 공자가 가진 소심한듯한 집요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가 좀 더 많기를 기대했었는데, 막상 접하고 보니 공자의 면면을 받들고 따르는 내용이 주를 이뤄서 그 점은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이상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고 오히려 공자에 대해 재미를 느끼면서 차분히 알아갈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이 책과 더불어 '소설 맹자'도 출간되었으니 맹자에 대해서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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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소셜한가? - 소셜미디어가 바꾸는 인류의 풍경 SERI 연구에세이 109
유승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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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하지 못한 편인 나로서는 이 책을 대할 때, 대체 소셜한가의 소셜이란 무엇인가가 더욱 궁금했다. 당신은 소셜한가'라는 질문에서는 아니오'라는 대답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더 궁금했다. 표지만 봐도, 사실 표지 속의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바로 좋아요 표시를 거꾸로 해놓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다 좋아요" 표시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좋아요가 있으면 싫어요도 있는 게 마치 짝꿍처럼 생각되는데 오직 좋거나, 혹은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지극히 배려적인, 우호적이기만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 또 몰랐다.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공간이 곧 소셜한 세계인가?

 

 책은, 생각 외로 가벼워서 놀랐다. 얇고 가벼워서 소포를 받아들고는 이 안에 대체 뭐가 들었을까 생각했다. 책이 올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적었다. 보니 [연구에세이]라는 라벨을 달고 있었다. 어쩐지 다소 건조한 문체와 여기저기 달려있는 참고 문헌, 수없이 많이 차용된 실험과 이론의 예시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파고들게 되었는지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읽다보면 공감이 되거나 혹은 새롭게 느껴지는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몇몇은 조금 끌어다 썼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없지 않지만, 인문 사회 과학적으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이런 실험들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보면 사회의 흐름을 좀 실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재미있었다. 예를들면 도시와 시골의 쓰러진 사람"실험이라던지.

 

 "밀그램의 실험을 보면 피험자가 권위자의 목적에 따라 행동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험자는 권위자에게 복종하기 위해 노력했고, 권위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매우 신경을 썼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친구는 편안한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가장 중요한 준거집단인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실험 대상을 두 부류로 나눠 한쪽은 질문과 전기 충격을 주는 쪽, 한쪽은 충격을 받는 쪽으로 해서 충격의 강도를 어떻게 올리느냐를 보는 실험이었는데 감시자가 충격의 크기를 올리도록 종용하자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지시에 따랐다는 내용이다. 그, 감옥에서의 감시자와 수감자 실험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에 대한 보고서였었는데. 여기서는 실험자들이 감시자의 존재를 매우 의식하고 있다는 측면에 집중해서 소셜미디어와 친구 집단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일상이나 생각에 대해 즉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집단이 있고 그들과 공감대를 공유하는 한편 그것을 깨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 마치 칼과 방패처럼 서로 감시와 공감이 가능한 이유는 같은 정서와 생활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성장기를 거쳤다는 것은 그만큼 같은 경험을 공유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감대의 기본 틀이 된다. 더불어 발달 지표가 있듯이 마땅한 시기에 수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성취도도 상대방에 비추어 가늠해 볼 수 있다. 친구라는 감시자가 가진 힘은 의외로 크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집단에서 뒤쳐진 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에 자발적인 비교와 증명이 이루어진다. 

 

 "웃음이 전염되듯, 행복감도 전염된다. 즉 내 주위 사람, 그중에서도 나의 친한 친구가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한 것이다. 심지어 비만도 감염된다. 내 친구가 비만하면 나도 비만하게 되며, 이 말은 거꾸로 나 때문에 내 친구도 비만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의 비만은 내 친구 때문이며, 내 친구의 비만도 나 때문이다."

 

 이건 다른 내용들과는 전혀 상관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충격적인 부분이라 뽑아놨다. 가족들의 모습에서 식습관의 영향때문에 체형이 다 비슷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만이 감염된다니. 비만도 식욕이라는 욕구의 충족 과잉에서 오는 산물이기 때문에 그 행복감이 전염되어 감염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잖은 충격이다. 내가 살이 찐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내가 사귄 어떤 뚱뚱한 친구의 탓이고, 그리고 내 마른 친구가 살이 찐 것은 내 탓이라는 건가. 친구를 가려서 사귀고 사귀다가 이제는 체형도 가려서 사귀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니. 세상을 삭막하게 만드는 건 지식이다.

 

 "소셜 미디어 덕분에 스타들처럼 보통 사람들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모은다.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져 무리가 되면 서로 팬의 팬이 된다. 서로 팬이 되어주면 '나도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적인 것까지 내놓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나와 유사한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한다. 이제 소셜미디어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존재할 수 없다. 나의 매력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나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노출시켜야 한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호기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다간 고립되고 만다."

 

 나를 드러내어 남의 이목을 산다. 어찌보면 자기 자신을 파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얼핏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일인데, 어차피 남과 교류한다는 것은 남에게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로 타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타인과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니까.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를 알린다는 것이 흉흉한 세상을 떠올려보면 꺼림칙할테지만, 아마 다들 그쯤은 감수하고 연결고리를 넓히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원하는 대상에게만 나를 알려봤자 닿지않는 소리없는 아우성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상은 남들이 원하는 대상이 되기 쉬우니까. 대신 나를 알려서 내가 남들이 원하는 대상이 되는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공개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노출시켜봤자 그 파편들은 파편일 뿐 전체의 그림이 될 수 없다. 는 것이 그 행위를 더욱 촉진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데,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것이라 직접적인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이 책을 읽으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구비해야 할 어떤 필수 조건이나 덕목처럼 여겨지기는 한다. 흥미로운 이론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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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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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옥 작가의 전작들 이름을 들어봤다. 들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트렌디한 느낌의 유명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읽어보지는 못했다. 백영옥 작가의 글을 처음 본 것이라 생각 외의 부분들을 많이 발견했다. 제목만으로는, 꽤 무거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볍고 또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는 제목과 소재가 매우 개성있어 인상적이다. 겉표지가 매우 화려해서 속도 그런 느낌일거라 생각했는데 속은 또 단정한 모습이라 의외였다. 책의 내적으로 외적으로 생각 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제목이 곧 내용이 되는 책이다. 실연한 남녀들이 잔뜩 나오는 책이다. 마치 이 책의 등장인물로 이름이라도 한 번 나오기 위한 서류전형에 최근 실연했을 것. 이라는 목록이라도 한 줄 들어가 있는 듯이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 자격에도 한번쯤은 실연해보았을 것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을 것만 같은 책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무려 일곱시의 조찬 모임에 굳이 실연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려는 사디스틱한 마음이 아니고서야.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은 아마 모두 실연을 해봤을 것이다.

 

 "실연의 흔적이 남긴 것들은 어째서 이토록 반짝이는 걸까. 이미 죽어버린 후에도 이 빛들은 왜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걸까. 죽어가는 역에 몰입한 발레리나의 눈빛에서 가장 큰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한 걸까."

 

 연인과 반짝임에 대한 명구절이 있는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일 것이다. 한 번 보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드라마. 거기서 려원이 마음이 변한 현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 그 사람이 반짝여보일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와 나 사이의 반짝거림이 사라졌듯이 그 사람도 반짝임이 없어질거라고. 그래도 그 사람에게 갈거냐고. 이 책에서도 반짝임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반짝임이 아니라, 사랑이 끝남의 반짝임을 말한다. 마치, 죽기 전에 한 번 낸다는 백조의 울음처럼, 스러지기 직전 그 마지막 반짝임이 어째서 그토록 반짝이며 상처입은 가슴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말고는 큰 공감은 하지 못했다. 실연의 흔적은 반짝이지 않고 시뻘건 생채기를 그냥 내보인 채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같은 느낌이다. 너무 크고, 또 흉이 남을까봐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누군가 전문적인 사람에게 가서 보이고 수술이라도 받아야 나을 수 있는 상처처럼 느껴지는 실연을, 죽어버린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반짝임으로 표현한 것이 나와 다른 점이라 인상적이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단면 중 하나를 서로 맞대어 본 기분이다.

 

 " "전 그냥 애인을 잃은 게 아니에요. 지훈이는 저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고, 우린 같은 학번 친구이기도 해요.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MT를 갔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함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죠. 지훈이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아빠나 엄마처럼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중략...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가판대 앞에 서서 잡지를 팔고 있는 나이 든 아저씨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걸 알게 됐어요. 지훈이를 통과하지 않고 제 청춘을 이해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전 정말 고아가 된 거예요. " "

 

 한 사람과 오래도록 만나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마치 한 사람 몫의 추억을 그 사람과 나눠가진 것처럼, 반쪽을 떼어내면 온전치 못하게 되는 물건을 서로 한쪽씩 맡아두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이별이 더 아프단 구절을 본 것 같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면 여러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겹겹이 쌓인 감정은 선명하지도 않고, 어느 한 가지 감정만이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대신 더 무겁고, 여러가지 빛과 형태를 가지고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나니, 오래도록 만난 사람과는 헤어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만으로 고아가 된 기분이 되어버린다니. 시간이 참 무섭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트렌드한 글을 쓰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톡톡 튀는 문장들도 많았고, 사강에 대해 언급한 감성은 약간 8,90년대 분위기도 났는데, 사진으로 보니 꽤 미인이다. 작가의 신작을 읽고 오후 일곱시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됐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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