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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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에 살던 집에서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악몽은 혼자 잠에서 깨어나는 때를 노리듯 반복됐다. 온몸에 돋아난 소름이 목덜미와 다리, 팔등을 타고 돌아다닐때 어두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잠들면 또 악몽을 꿀지 모른다는 불안이, 악몽을 꾸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의식되어 견딜수가 없었다. 단순히 어느 날 어두운 집에 들어왔을때 반은 장난 삼아 반은 불안을 떨치려 큰소리로 '나와, 여기 있는거 다 안다'하고 말해보는 것과는 달랐다.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불면을 토로했더니 절에서 부적을 몇 장 받아와 문에 몇 장 붙이고 불사른 연기를 집안 곳곳에 입혔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악몽을 더는 꾸지 않았다. 진짜 효과가 있어서인지, 그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음과 생활에 안정이 찾아왔고 만족스러웠다. 


 집이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이 궁금하기도 하고 읽기 무섭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그 때의 두려움이 다시 머리 속에 심어져서 또 악몽을 꾸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부분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암시하는 묘사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공포에 바탕을 두고 있어 염려했던 것보다는 편안히 읽었다. 가장 첫번째 작품인 '누군가 살았던 집'이 책을 읽기 전 예상했던 공포와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 묘하게 의식되었던 화장실 냄새라는 요인이 읽는 내내 신경쓰여서 결국은 책을 읽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구석에 청소용으로 둔 목초액 병 때문에 나는 냄새였다. 두려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는 걸 알면 허탈하면서도 과학과 문명이 승리한 기분이 들곤한다. 책에선 현실과 환상이 섞인 채 끝났지만.


 두번째 작품인 '죽은 집'은 한동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져 책도 찾아 읽어봤던 '특수청소업체'에 대한 내용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빌라왕 전세사기'에 대한 내용이 얽혀있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유일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 특별하고,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죽은 집'은 초자연적인 존재, 악몽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고 가장 현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등장 인물들이 희망을 봤다는 이유로 비현실적이라 느껴진다니, 어떤 허구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고 무섭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안 어울리는 건 아닌가 싶지만,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곳으로 여겨질 집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표현되는 제목처럼 아이러니함을 짚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한 결로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반송사유'는 약간 거칠게 느껴져서 섬세한 공포를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메일을 주고 받는다는 재미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비어진 여백이 공포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힘을 잃어서 아쉬웠다. 양현이 반복해서 말하던 '낚시바늘'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늦은밤, 새벽시간의 메일에서 보이는 이상한 언동이 점차 낮에도 보이는 변화, 양현의 집에 대해 염려하던 김혜가 어느 시점부터 메일을 수신하지 않게 된 이유같은 것들이 무어라 주어지는 것 없이 보여지다 마무리되어 버린다. 좀 더 주의깊은 독자가 되어 숨겨진 공포를 찾아내 읽어야했던 걸까 아니면 좀 더 친절하게 두려움으로 독자를 이끄는 요소들이 필요했을까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다른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집보다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더 중점이 되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어느 정도 활용했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는 철저히 인물들의 내면이 공포가 된다. 죄책감, 괴로움, 상실감, 슬픔, 고통 같은 감정이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집은 그들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장소의 역할만 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주제에 더 맞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무서움이 와닿았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가족이 아프거나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몇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막연히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에 좀 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동반한 내용이었다. 진혜의 엄마가 헬스장에 다시 운동하러 가도 되는지 죄책감을 가지는 현실적인 내용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작부터 집이 무서웠던 경험담을 풀어놨지만 책의 위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집은 여전히 다른 어떤 곳과도 비할 수 없는 '홈 스위트 홈'이다. 우리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픈 심정을 경험한 공부하는, 일하는, 지쳐본 현대인들이니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며,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인 집을 비틀어 봤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도였던 책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 때문에 비일상, 공포, 불안과 곁들였을때 더 자극이 크게 다가오는 효과도 있었다. 마침 주말에 본 영화에서 나왔던 노래를 떠올리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의 서평을 썼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집이 가장 무서운 책을 읽고, 멸망한 세상에서 집이 가장 중요한 영화를 본 주말이다. 모두 집에서 읽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 행복하며 생활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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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망상 - 어느 인턴의 정신병동 이야기
무거 지음, 박미진 옮김 / 호루스의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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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헤맨 사람에게는 어둠이 바로 그 사람을 단련시키는 무공이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 증상은 환자가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증상은 생존을 위함이다'라는 인식은 정신분석의 기초이다. 환자에게는 이 증상이 필요하기 대문에 있으며, 불필요해지면 증상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쓸모없는 기관이 스스로 퇴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p81 (망상 속의 괴물 중) "


 나는 무던한 사람이다. 강박적이거나 예민한 부분이 좀 있지만 대체로는 무심하고 게으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고, 그런 이유로 주변과의 마찰이 있던 적도 있으니 열에 여덟 정도는 나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싶다. '악몽과 망상'을 읽으면서 섬세함과 예민함에 대해 주로 떠올렸다. 인물에게는 '악몽과 망상'이었겠지만 읽으면서 '슬픔과 절망'을 가장 많이 느꼈다. 누군가의 내면에 고통스러운 사건이 새겨진 흉터를 바라보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정신병동 이야기라니, 심리와 정신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해볼 수 있을테니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호기심은 타인의 병증을 자극적인 소잿거리로 삼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어려운 지식에 대해 좀 더 쉽게 알아보려는 욕구와 닿아있는 면이 크다. 무슨무슨 증후군이나 트라우마, 가스라이팅 같은 심리학 용어들이 한 번 알려지면 유행처럼 번져나가 사용되지 않는가. 읽어가면서 호기심이 이해와 공감으로 번져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용 자체가 단순 케이스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삶과 내면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 처음 팡위커를 만났을 때, 고양이에 관해 물었던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애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바로 엄마였다.

 "다가가면 도망가버릴까요?"

 (.)

 "그럼 제가 저 멀리 가면 따라올까요?"

 (.)

 "글쎄,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무슨 사이라면요?"

 (.)

 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팡위커라고 두려움과 아쉬움이 없었을까. 다시는 수영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던 말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싶은 게 당연하다. p139 (동생이 만들어낸 형 중 내용 일부 가림) "


 '동생이 만들어낸 형'은 가장 마음 아프게 읽은 내용 중 하나이다. 다중인격은 소설, 영화같은 창작물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라 여기서의 내용도 약간 클리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책의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개인적인 경험과 엮어 확장해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가끔 형제자매를 둔 지인과 부모님은 자식들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물론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듯 부모님에게 '우리 중 누가 제일 좋으세요' 물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지인들은 대체로 분명히 형제자매 들 중 누군가를 꼽아냈다. 그게 자신이든 아니든. 


 자식에게는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여럿 존재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헌신은 대체로 자식이 부모를 향하는 것보다 크다. 이런 일반적인 속설들만 나열해봐도 관계는 복잡하다. 자신의 필터로 걸러둔 그동안 겪어왔던 사건들을 모아서 속단해서는 안될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철없이 우리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애정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된다. 팡위커의 이야기를 읽으며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 사랑받기 위해 경쟁했던 것들, 여전히 가장 사랑받고 싶다고 갈구하는 마음을 은연 중에 드러냈던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질문의 본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이 누군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타인과의 교류로 인한 병증이 있었고 그 상황에 대해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추신의 이야기는 나말고도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 추신은 매일 음식을 극소량만 섭취하면서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보통 신체 이상형태성 장애를 겪는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이미 너무 말라서 아름다움을 잃은 수준까지 갔는데도 정작 본인은 더 마를수록 보기 좋다고, 아직 더 살을 빼야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른 몸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과 지각이 완전히 왜곡된 상태이다. p177 (침묵의 폭식증, 속죄의 거식증 중) "


 추신의 식이장애는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식이장애를 가지게 되는 이유가 마른 몸에 대한 미적기준 때문이다. 나 역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절식과 폭식을 하는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건강적인 문제 때문에 식사를 조절하고 있는 이유가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여전히 섞여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면, 호감을 얻고싶다는 욕망이 외양이 아닌 내면으로 집중된다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인에게서 얼마나 더 초연해져야 이런 욕망이 다스려질까?


 " 그가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무식했지만. 천진난만함과 잔인함은 본래 유의어가 아니던가. p301 (내 바지 어딨어? 중) "


 다시 돌아가서 처음에 나는 내 무심함에서 비롯된 주변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 좋게 포장하기 위해 무심함이라고 했을 뿐 무신경함, 이 책에서의 무식함과 다를 바 없는 언행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주변인들의 범위를 많이 줄이고, 단정적인 어조로 공개적인 곳에서 말하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과거 가까운 상대에게서 '너의 이런 언동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말이 내심 충격으로 작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으로 집중을 옮겨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는 점점 더 좁고 내밀한 곳으로 집중되는데 타인의 관심과 호감을 얻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SNS의 좋아요를 확인하거나, 내 겉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지금 어떤 냄새가 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 헤아려보게 되는 행동은 사회와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행동들은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부자연스러운 욕망일까? 책을 읽으며 상충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궁금함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이 앞섰다면 읽으면서 점차 책에서 자신으로 생각을 확장하도록 만드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면서 조금 흐름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마무리를 위한 사건을 만들고 매듭 지은 수순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책은 재밌다. 거의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잘 읽힌다. 날이 더우니 책과 함께 시원한 카페로 피서를 떠나 독서라는 행위를 보여주기 해도 좋을 것 같다. 내면을 가꾸는 행위를 보여주기로 이용한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가책을 느껴도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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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김미영 지음 / 미문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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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실제 책이 아닌 파일로 글을 읽어보았다. 다소 낯선 감은 있었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글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 적응하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초반의 내용들은 어느 정도 그간 만나봤던 에세이들과 결이 비슷한가 싶은 느낌이었다. 기대는 조금 낮아졌지만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히는 문장도 장점이었고, 내용도 일상적인 선에서 공감 가능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어떤 부분은 공감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구나 싶은 비교도 하면서 읽었다. 그래서 약간은 가볍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감이 느껴졌다.

 

 세번째 챕터에 들어서면서부터 책장을 넘기는 시간 사이가 조금씩 길어졌다. 요즘 상실에 대해 생각하게 될 일이 많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생각지 못한 이별이 있었고 그로인한 괴로운 심사를 어디에 털어내지 못하고 담아두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동안 마음이 복잡해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는데 아주 조금은 술렁였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직은 많이 괴롭지만 이 또한 관계에서 온 휘둘림이었던가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내려놓고 더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구나, 아직도 덜 단단하고 부족하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서 처음 목차를 살펴볼 때부터 궁금했던 '햄스터 그 커다란 생명(204)'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 작은 생명체와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컥한 마음을 한참 가다듬어야 했다. 언젠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욱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읽을수록 책을 읽은 초반 조금은 가볍다 느꼈던 것이, 깊이에서 나온 덜어냄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생각이 복잡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지만 또 너무 가볍지 않게 우리의 삶에 공감해주고 위로를 전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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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생각들 - 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하여
오원 지음 / 생각정거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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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산책길에서는 내 소리만 들어야 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터넷도 켜지 말고, 회사 이메일도 체크하지 않고, 사회적인 '나'라는 존재의 어떤 오지랖이 개입하기 전에, 물 한 잔을 마시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 뒤 가장 자연스러운 나라는 인간으로 산책길에 나서야 한다. 최대한 문명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 이것이 가상의 순례길을 걷는 당연한 약속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이것이 산책길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물론 간간히 음악을 들어주는 것은 좋다.(134) "

 

 언젠가 오래도록 길을 걷는 산티아고의 순례기를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지만 생각하기로, 그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남게 될 것 같긴 하다. 미세먼지가 괴로운 때지만 되도록이면 이리저리 걸어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걸으면서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니 때로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때로는 두서없는 생각들을 이리저리 옮겨가고, 때로는 눈 앞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에만 골몰하기도 했다. 저자 오원이 걸으며 한 생각들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앞으로 걷는 시간동안 어떤 생각들을 하면 좋을까 싶은 생각에 찬찬히 책을 읽었다. 걸으며 이런 생각들을 하고 또 글로 써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걷는 생각들'에서 만나는 글들은 요즘 감성에 맞는다. 트렌디하다고 해야할까, 공감대가 잘 형성된다고 해야할까. 짧게 이어지는 글들에서 익숙함을 발견하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던 것들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하기도 했다. 걷기와 사유라는 것에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편안하고 공감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오늘의 배경음악을 선곡해준다는 것이다. 배경음악이 없는 날(140)도 있지만, 아는 노래가 나오는 날은 특히 좋고, 모르는 노래가 문득 마음에 들었을 때도 좋았다. 짧은 글을 읽고나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계절별로 나눠진 단락을 따라, 산책을 하는 날 나도 생각을 하며 걸어보고 싶다는 그리고 그 생각을 손으로 써서 글로 남겨놓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멋진 내용은 아니더라도, 몸과 정신이 함께 건강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욕심을 내본다. 산책에 대한 책을 추천해 준 내용(93)도 있어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 하나씩 옮겨 놓았다. 여기서 언급되는 영화들도 전에 본 영화와 겹치는 제목들이 많아 책 목록을 공유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가상의 순례길을 네번의 계절과 함께 촘촘히 걸어나간 기록을 썩 재미있게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점점 좋아지는 봄날,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에 '걷는 생각들'을 얹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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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 - 인생에 처음 찾아온 나이 듦에 관하여
이현수 지음 / 수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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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한 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몹시도 허무하고 못내 울적하다는 듯 만남 내내 친구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을 대부분의 일들을 다 거쳤으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괜찮을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들으면 젊은 나이에 별 말을 다 한다고 할 얘기겠지만 그때는 그런 친구를 위로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찻길을 건너게 되었는데, 아슬하게 비켜가는 대형 트럭의 위험한 운전을 피하며 '깜짝이야,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하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날 친구가 했던 푸념은 진심이 아닌 말, 그저 나이듦을 실감한 어느 순간의 한탄이었으리라. 나이듦이란 무엇이길래 죽고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마저도 삶의 무상함을 입에 올리게 만드는 것일까. 잘 나이드는 것이 궁금하고 중요해진 길목에서 '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를 만났다.

 

 한동안 화제가 된 것이 사람의 노화가 매일매일 쌓이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정해져있다는 연구결과(*nature medicine)였다. 그 3단계는 각각 34세, 60세, 78세에 있다고 한다. 거울 속의 자신이 갑자기 나이들어 보이는 것에 놀란 마음을, 이 정도면 거뜬하다고 생각한 운동량을 소화 못하는 체력을 느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나이듦'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은 전에 비해 노화가 느리고 다들 동안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 자신의 노화를 처음으로 의식하고 나면 어찌해야할 지 갈피를 잡기 어렵고,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조금 이르지만 '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를 읽어보고 싶었다. 서른을 넘어서고 나서 갑자기 건강보조제를 찾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화의 주제에 운동, 건강, 노화 같은 것들로 끼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노화에 대한 대비는 몸과 정신이 함께 필요함을 책을 읽으며 많이 깨달았다.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점점 더 익숙해진다. 혼자 먹는 일이 끼니를 거르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혼밥은 아무래도 간편하고 대충 차리게 되기 쉽상이다. 나 자신에게 잘 대접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혼밥에 대한 그리고 권정생, 이오덕 선생의 일화를 예로 든 내용을 인상깊게 보고 생각을 정리했다. " 혼밥을 먹더라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 대접해주자. 고요하고 거룩하게 잘 해먹어보자. 그러다가 한 번씩은 '징그러울'정도로 자신에게 최고의 혼밥을 차려주자.(168) "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 또 남에게 하듯이 자신을 대접하자고. 이 내용은 뒷부분의 '외로워도 괜찮아(222)'에서도 같이 연결되어 혼자 자신의 일을 해결하는 것, 외로움과 마주하는 것을 함께 생각하게 해주었다.

 

 책의 말미에는 죽음에 대한 내용도 있다. 생각만해도 마음이 무거운 이 주제를 아직 보류해두었다. 아직 그런 준비까지는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막연히 두려운 주제였다. 삶의 흐름이 어느날 버겁게 느껴질 때, 곁에 두고 천천히 오래도록 초라하고 어설프게 늙지 않도록 읽어보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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