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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망상 - 어느 인턴의 정신병동 이야기
무거 지음, 박미진 옮김 / 호루스의눈 / 2023년 7월
평점 :
"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헤맨 사람에게는 어둠이 바로 그 사람을 단련시키는 무공이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 증상은 환자가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증상은 생존을 위함이다'라는 인식은 정신분석의 기초이다. 환자에게는 이 증상이 필요하기 대문에 있으며, 불필요해지면 증상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쓸모없는 기관이 스스로 퇴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p81 (망상 속의 괴물 중) "
나는 무던한 사람이다. 강박적이거나 예민한 부분이 좀 있지만 대체로는 무심하고 게으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어떻게 구분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렇고, 그런 이유로 주변과의 마찰이 있던 적도 있으니 열에 여덟 정도는 나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싶다. '악몽과 망상'을 읽으면서 섬세함과 예민함에 대해 주로 떠올렸다. 인물에게는 '악몽과 망상'이었겠지만 읽으면서 '슬픔과 절망'을 가장 많이 느꼈다. 누군가의 내면에 고통스러운 사건이 새겨진 흉터를 바라보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정신병동 이야기라니, 심리와 정신에 대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해볼 수 있을테니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호기심은 타인의 병증을 자극적인 소잿거리로 삼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어려운 지식에 대해 좀 더 쉽게 알아보려는 욕구와 닿아있는 면이 크다. 무슨무슨 증후군이나 트라우마, 가스라이팅 같은 심리학 용어들이 한 번 알려지면 유행처럼 번져나가 사용되지 않는가. 읽어가면서 호기심이 이해와 공감으로 번져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용 자체가 단순 케이스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삶과 내면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 처음 팡위커를 만났을 때, 고양이에 관해 물었던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애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바로 엄마였다.
"다가가면 도망가버릴까요?"
(.)
"그럼 제가 저 멀리 가면 따라올까요?"
(.)
"글쎄,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무슨 사이라면요?"
(.)
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팡위커라고 두려움과 아쉬움이 없었을까. 다시는 수영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던 말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 싶은 게 당연하다. p139 (동생이 만들어낸 형 중 내용 일부 가림) "
'동생이 만들어낸 형'은 가장 마음 아프게 읽은 내용 중 하나이다. 다중인격은 소설, 영화같은 창작물에서 많이 다뤄지는 소재라 여기서의 내용도 약간 클리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책의 내용도 인상적이지만 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개인적인 경험과 엮어 확장해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가끔 형제자매를 둔 지인과 부모님은 자식들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물론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듯 부모님에게 '우리 중 누가 제일 좋으세요' 물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의외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지인들은 대체로 분명히 형제자매 들 중 누군가를 꼽아냈다. 그게 자신이든 아니든.
자식에게는 부모가 절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여럿 존재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헌신은 대체로 자식이 부모를 향하는 것보다 크다. 이런 일반적인 속설들만 나열해봐도 관계는 복잡하다. 자신의 필터로 걸러둔 그동안 겪어왔던 사건들을 모아서 속단해서는 안될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철없이 우리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애정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된다. 팡위커의 이야기를 읽으며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 사랑받기 위해 경쟁했던 것들, 여전히 가장 사랑받고 싶다고 갈구하는 마음을 은연 중에 드러냈던 '누구를 가장 좋아할까'란 질문의 본질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이 누군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타인과의 교류로 인한 병증이 있었고 그 상황에 대해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추신의 이야기는 나말고도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 추신은 매일 음식을 극소량만 섭취하면서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는 보통 신체 이상형태성 장애를 겪는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이미 너무 말라서 아름다움을 잃은 수준까지 갔는데도 정작 본인은 더 마를수록 보기 좋다고, 아직 더 살을 빼야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른 몸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과 지각이 완전히 왜곡된 상태이다. p177 (침묵의 폭식증, 속죄의 거식증 중) "
추신의 식이장애는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식이장애를 가지게 되는 이유가 마른 몸에 대한 미적기준 때문이다. 나 역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절식과 폭식을 하는 식이장애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건강적인 문제 때문에 식사를 조절하고 있는 이유가 크지만 마른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여전히 섞여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면, 호감을 얻고싶다는 욕망이 외양이 아닌 내면으로 집중된다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타인에게서 얼마나 더 초연해져야 이런 욕망이 다스려질까?
" 그가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무식했지만. 천진난만함과 잔인함은 본래 유의어가 아니던가. p301 (내 바지 어딨어? 중) "
다시 돌아가서 처음에 나는 내 무심함에서 비롯된 주변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 좋게 포장하기 위해 무심함이라고 했을 뿐 무신경함, 이 책에서의 무식함과 다를 바 없는 언행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주변인들의 범위를 많이 줄이고, 단정적인 어조로 공개적인 곳에서 말하기를 조심스러워 하는 편이다. 과거 가까운 상대에게서 '너의 이런 언동에 상처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말이 내심 충격으로 작용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으로 집중을 옮겨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는 점점 더 좁고 내밀한 곳으로 집중되는데 타인의 관심과 호감을 얻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SNS의 좋아요를 확인하거나, 내 겉모습이 어떤지에 대해, 지금 어떤 냄새가 나고 있는지 확인하거나,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가 헤아려보게 되는 행동은 사회와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행동들은 외적인 것에만 치중하는 부자연스러운 욕망일까? 책을 읽으며 상충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궁금함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이 앞섰다면 읽으면서 점차 책에서 자신으로 생각을 확장하도록 만드는 꽤 괜찮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면서 조금 흐름이 달라지게 되는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마무리를 위한 사건을 만들고 매듭 지은 수순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책은 재밌다. 거의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잘 읽힌다. 날이 더우니 책과 함께 시원한 카페로 피서를 떠나 독서라는 행위를 보여주기 해도 좋을 것 같다. 내면을 가꾸는 행위를 보여주기로 이용한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가책을 느껴도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