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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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에 살던 집에서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악몽은 혼자 잠에서 깨어나는 때를 노리듯 반복됐다. 온몸에 돋아난 소름이 목덜미와 다리, 팔등을 타고 돌아다닐때 어두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잠들면 또 악몽을 꿀지 모른다는 불안이, 악몽을 꾸는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의식되어 견딜수가 없었다. 단순히 어느 날 어두운 집에 들어왔을때 반은 장난 삼아 반은 불안을 떨치려 큰소리로 '나와, 여기 있는거 다 안다'하고 말해보는 것과는 달랐다.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불면을 토로했더니 절에서 부적을 몇 장 받아와 문에 몇 장 붙이고 불사른 연기를 집안 곳곳에 입혔다. 미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악몽을 더는 꾸지 않았다. 진짜 효과가 있어서인지, 그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음과 생활에 안정이 찾아왔고 만족스러웠다. 


 집이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이 궁금하기도 하고 읽기 무섭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그 때의 두려움이 다시 머리 속에 심어져서 또 악몽을 꾸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어떤 부분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암시하는 묘사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공포에 바탕을 두고 있어 염려했던 것보다는 편안히 읽었다. 가장 첫번째 작품인 '누군가 살았던 집'이 책을 읽기 전 예상했던 공포와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 묘하게 의식되었던 화장실 냄새라는 요인이 읽는 내내 신경쓰여서 결국은 책을 읽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대청소를 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구석에 청소용으로 둔 목초액 병 때문에 나는 냄새였다. 두려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는 걸 알면 허탈하면서도 과학과 문명이 승리한 기분이 들곤한다. 책에선 현실과 환상이 섞인 채 끝났지만.


 두번째 작품인 '죽은 집'은 한동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져 책도 찾아 읽어봤던 '특수청소업체'에 대한 내용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있는 '빌라왕 전세사기'에 대한 내용이 얽혀있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유일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 특별하고,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죽은 집'은 초자연적인 존재, 악몽 이런 것들을 말하지 않고 가장 현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등장 인물들이 희망을 봤다는 이유로 비현실적이라 느껴진다니, 어떤 허구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고 무섭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안 어울리는 건 아닌가 싶지만,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곳으로 여겨질 집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표현되는 제목처럼 아이러니함을 짚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한 결로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반송사유'는 약간 거칠게 느껴져서 섬세한 공포를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메일을 주고 받는다는 재미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의도적으로 비어진 여백이 공포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힘을 잃어서 아쉬웠다. 양현이 반복해서 말하던 '낚시바늘'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늦은밤, 새벽시간의 메일에서 보이는 이상한 언동이 점차 낮에도 보이는 변화, 양현의 집에 대해 염려하던 김혜가 어느 시점부터 메일을 수신하지 않게 된 이유같은 것들이 무어라 주어지는 것 없이 보여지다 마무리되어 버린다. 좀 더 주의깊은 독자가 되어 숨겨진 공포를 찾아내 읽어야했던 걸까 아니면 좀 더 친절하게 두려움으로 독자를 이끄는 요소들이 필요했을까 여러번 읽어보았지만 아쉬움이 남았고, 다른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집보다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더 중점이 되는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어느 정도 활용했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는 철저히 인물들의 내면이 공포가 된다. 죄책감, 괴로움, 상실감, 슬픔, 고통 같은 감정이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집은 그들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장소의 역할만 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주제에 더 맞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무서움이 와닿았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가족이 아프거나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몇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막연히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에 좀 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동반한 내용이었다. 진혜의 엄마가 헬스장에 다시 운동하러 가도 되는지 죄책감을 가지는 현실적인 내용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작부터 집이 무서웠던 경험담을 풀어놨지만 책의 위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집은 여전히 다른 어떤 곳과도 비할 수 없는 '홈 스위트 홈'이다. 우리는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픈 심정을 경험한 공부하는, 일하는, 지쳐본 현대인들이니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며, 나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인 집을 비틀어 봤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시도였던 책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이미지 때문에 비일상, 공포, 불안과 곁들였을때 더 자극이 크게 다가오는 효과도 있었다. 마침 주말에 본 영화에서 나왔던 노래를 떠올리며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의 서평을 썼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집이 가장 무서운 책을 읽고, 멸망한 세상에서 집이 가장 중요한 영화를 본 주말이다. 모두 집에서 읽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 행복하며 생활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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