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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평점 :
책을 펼치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솔직히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책이니 속시원한 까발림?같은 것도 있고, 그 당당함만큼의 벌이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월달 수입 42만원, 2월달 수입 감사하게도 96만원의 선명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자 내 마음이 먼저 텁텁해졌다. 하필 또 오늘, 그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구장창 사마시다가 이때에만 우유와 당분이 들어간 따뜻한 커피를 시켰을 줄이야. 벌컥 시원하게 들이켤 것도 없이 목이 마르고 입이 텁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오죽했으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야 했을까. 인생이 뭐 그렇게 시원시원했으면 이런 글도 없었겠지, 뒤늦은 자각이 온다.
보여지는 삶은 멋졌다. 책안쪽 날개에 실린 압도적인 분위기의 사진도 그렇고, 시상식에 참석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 재능도 많은지 이것저것 하는 일도 다양하다. 작가는 이런 자신을 두고 남들은 하는 일이 많아서 돈을 잘 벌거라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것저것을 하는 것 자체가 슬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능과 용기가 그 안에서 빛나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쑥 들이밀어진 숫자 얘기에는 부럽다는 말도 갈 길을 잃는다. 저 특별함과 돈의 문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반비례하는 것이라면 그 용기도 재능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더뎠다. 사실 나에게도 작가 지인이 있다. 이랑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때로 흘려두는 팍팍함을 주워놓았다 만나서 밥이라도 한끼하고, 차라도 한 잔 할때 조금이나마 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작고 별 것 아니었어서 씁쓸했다. 그도 나에게 차마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이렇게 있었겠지 싶고, 어차피 서로 없는 처지에 때로 만나 밥 한 술 같이 하는 것으로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싶어졌다. 외국에 나가서 며칠을 머물고, 지방 이곳저곳을 돌고, 서울 어디를 찾아 강연을 하던 그의 바쁨이 책 안에 옮겨놓은듯 그대로 담겨있었다.
읽으면서 전부 다 마음을 씁쓸하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틈마다 비집고 들어선 짧은 만화들은 별 내용이 아닌데도 재밌다. 파란색 입술을 한 사진을 떠올렸을때, 소담하고 아기자기한듯한 만화의 분위기랑 잘 연관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내용이고 짧고 단순한 그림인데도 마음이 간다. 사실 잘 모르던 작가였는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질만큼 괜찮았다. 책의 글들도 매우 솔직하고 인간적이라 예술을 하는 나랑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분명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맞는데, 큰 흐름에서는 공감되는 생활이 묻어나는 점이 좋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더 좋았다. 요즘 많이 보이는 힐링에세이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들이 끼워져있어서 저자의 여러 면모를 조금씩 엿보는 것 같다. 2부의 첫 내용에서는 당황하기도 하고, 4부의 어떤 내용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아플일이 점점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이렇게 전해듣는 이야기도 그냥 넘기기 어려워진다. 이상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 잘 여미고 살아야지 싶은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20대 후반, 30대를 넘긴 여성이라면 공감할만한 여운이 아닐까 싶다.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