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 나를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심리 안내서
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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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연락조차 주고 받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되지 않는 사이다. 작년,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먼저 연락을 주었고 마침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볼일이 있기에 겸사겸사 얼굴을 보기로 했다. 늘 그렇듯 그녀는 밝고 쾌활했다.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럽고 잘 웃었다. 밥을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의 볼일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여전한 태도로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고, 병원이 이 근처라 진료를 보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 자신의 모습이야, 스스로 보면서 말할 수 없으니 기억하기로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라고 조언해주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은데 막상 느닷없는 대면은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그녀의 낙관적이고 명랑한 모습을 좋아했던만큼 마음도 소란스러워졌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면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 마음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조언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약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그게 더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우울의 증상들을 보면서 지금 나는 어떤가 헤아려보기도 했다. 수면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유심히 읽었다. 수면에 관한 부분은 너무 해당되는 점이 많아서 다른 부분들이 좀 겹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의 경우 염려하는 것에 비해 내원이 필요할만큼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들은 하지만.

 

 처음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요즘은 우울이나 공황으로 병원 많이들 간다고, 약 먹고 꾸준히 치료받으면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힘들겠다고 공감하고 위로를 해주는 말을 추천해서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주면 상대방의 부담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말이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말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려나 싶었다. 내 입장에 비했을때 상대방이 평이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누군가가 또 우울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이 좀 됐다.

 

 아주 밀접하게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들로 어떤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다만 지금 어떤 상황일지 혹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와 나를 마주하고 있을지는 조금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녀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거쳐갈지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도 우울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럴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 생각이 좀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룸펠스틸츠헨 효과(189)처럼 이름붙인 것, 정체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덜 당황스러울테니. 책을 읽고나니 지금껏 알아온만큼 그녀를 오래도록 보리라 마음먹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괜찮아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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