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쓸모 -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하는 32가지 통찰
강은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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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퍼지기 전에 몇몇 전시의 표를 구해두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때때로 전시장을 찾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갔고, 여러 사정이 겹쳐 기껏 구해놓은 표는 기한을 넘긴채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문득 예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녀오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전염병이 도는 불안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 예술작품 관람은 과연 삶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반년 이상 찾지 않은 도서관, 예매했다 취소된 콘서트 표 등을 떠올리면,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기꺼이 포기하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예술 분야가 차지하고 있을까?

 

 아주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투모로우'라는 영화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봤을 법한 이 영화는 한국인의 성향에 맞춰 제목을 바꿔 성공한 사례로 이미 유명할 것이다. 영화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추위때문에 위기 상황에 처한 주인공 일행이 도서관에서 생존을 위해 책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책을 불태우다니, 물론 그들도 책을 분야에 따라 선별하여 불태우기는 했지만 꽤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언젠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이 자연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오리라는 예고같았다. 버리지 않고 서랍에 넣어둔 관람 기간이 지나버린 표를 보면서 문득 그때의 장면을 떠올린다.

 

 코로나로 인한 혼란과 함께 단기간에 찾아온 예술에 대한 냉담을 추스리고 책을 찾아 들었다. '예술의 쓸모'라니, 그건 무용한데서 오는 가치 아니었나. 사회적 혼란속에서 가장 먼저 포기해버린 것들 중 하나인 예술에게서 저자가 어떤 쓸모를 발견했을지, 그리고 독자로하여금 그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아주 쉽게 굳은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란 그림을 마주했을 때였다. 유명한 그림이라 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생각이 복잡한 와중에 만나게 되니 또 새로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주는 은근한 스트레스와 고독감, 그리고 때로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던 밤이 그림속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이 평범한 거리의 그림이 왜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지 찬찬한 설명을 곁들여 읽으며 공감했다.

 

 일단 마음을 열고 나니 친절한 책의 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서툰 관람객에게 딱 적당한 눈높이로 다양한 시각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 대부분이 어디서 한번쯤 봤을 법한 대중적인 작품들이라 모르는 작품들을 보면서 배워야한다는 부담도 없이 읽을 수 있다. 오히려 그림에 눈도장을 찍으며 반갑게 느낄만한 목록들이다. 그림 뿐 아니라 도자기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얼마 전 찻잔을 살려고 이리저리 살펴봤던 웨지우드나 로열코펜하겐 등의 브랜드에 대한 얘기도 나와서 재밌었다. 이 그릇들이 왜 이렇게나 비싼걸까 생각했었던 부분을 정곡으로 찌르는 대목도 나온다.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서 꽃피운 아름다움이자,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물(228)"이니, 찻잔의 차도 더 향기롭겠지 생각하기로 했다. 

 

 한동안 메말랐던 감성적 부분을 다시 채워주는 책이었다. 쓸모라는 것이 기능적인 용도를 채우는 것에만 있는것이 아니고, 예술은 여전히 무용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마음의 곁은 무한하단 생각을 했다. 한동안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고, 현생을 살아내는데 벅차게 지내느라 마음이 좀 딱딱해졌다면 '예술의 쓸모'로 굳어가는 감성을 되살리는 준비운동을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은 내용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심을 이끌어줄 것이다. 긴 연휴를 맞아 집에서 감상하는 마음 편한 전시 '예술의 쓸모' 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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