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자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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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가볍거나 편한 마음으로 선택하여 읽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분량도 적지 않을 뿐더러,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공자에 대한 이야기이니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어림짐작이 짐작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에 띄는 이유는, 작가 최인호의 이름과 지금, 새롭게 왜 공자에 대한 소설이 나왔는가에 대한 궁금함 때문일 것이다. 정갈한 느낌의 표지가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공자를 새롭게 접하거나, 논어를 읽는 것보다는 조금 더 편안히 공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은 몇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자의 네번의 출국과 황금시대,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의 공자천추 등 약 다섯 부분으로 공자의 행적이 시기별로 나뉘어있다. 책을 읽기 전에 스스로 배경 지식이 없음을 되새기고 읽었지만 읽으면서 보니 의외로 공자님 말씀"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반갑고, 스스로가 기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워낙 영향력이 큰 인물이기때문에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학부시절 동양 철학과 관련된 기초 교양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논어를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었고, 간신히 그 위기를 넘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만약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안영과 경공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안영의 집에 간 경공이 그의 아내를 보고 그녀가 너무 늙고 못생겼으니 자신의 딸을 안영에게 주겠다고 하자, 안영이 자신의 아내와 백년해로를 약속했는데 이제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한 부분이 너무나 노골적이라 놀랐다. 이런 무례가 일상으로 이루어진 시대라니.

 

 책을 읽기에 앞두고 공자와 개성많은 그의 제자들 사이의 에피소드나, 공자가 가진 소심한듯한 집요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가 좀 더 많기를 기대했었는데, 막상 접하고 보니 공자의 면면을 받들고 따르는 내용이 주를 이뤄서 그 점은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이상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고 오히려 공자에 대해 재미를 느끼면서 차분히 알아갈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이 책과 더불어 '소설 맹자'도 출간되었으니 맹자에 대해서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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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소셜한가? - 소셜미디어가 바꾸는 인류의 풍경 SERI 연구에세이 109
유승호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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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하지 못한 편인 나로서는 이 책을 대할 때, 대체 소셜한가의 소셜이란 무엇인가가 더욱 궁금했다. 당신은 소셜한가'라는 질문에서는 아니오'라는 대답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더 궁금했다. 표지만 봐도, 사실 표지 속의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바로 좋아요 표시를 거꾸로 해놓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다 좋아요" 표시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좋아요가 있으면 싫어요도 있는 게 마치 짝꿍처럼 생각되는데 오직 좋거나, 혹은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지극히 배려적인, 우호적이기만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 또 몰랐다.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공간이 곧 소셜한 세계인가?

 

 책은, 생각 외로 가벼워서 놀랐다. 얇고 가벼워서 소포를 받아들고는 이 안에 대체 뭐가 들었을까 생각했다. 책이 올거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부피가 적었다. 보니 [연구에세이]라는 라벨을 달고 있었다. 어쩐지 다소 건조한 문체와 여기저기 달려있는 참고 문헌, 수없이 많이 차용된 실험과 이론의 예시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파고들게 되었는지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읽다보면 공감이 되거나 혹은 새롭게 느껴지는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몇몇은 조금 끌어다 썼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없지 않지만, 인문 사회 과학적으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이런 실험들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보면 사회의 흐름을 좀 실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재미있었다. 예를들면 도시와 시골의 쓰러진 사람"실험이라던지.

 

 "밀그램의 실험을 보면 피험자가 권위자의 목적에 따라 행동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험자는 권위자에게 복종하기 위해 노력했고, 권위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매우 신경을 썼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친구는 편안한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가장 중요한 준거집단인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실험 대상을 두 부류로 나눠 한쪽은 질문과 전기 충격을 주는 쪽, 한쪽은 충격을 받는 쪽으로 해서 충격의 강도를 어떻게 올리느냐를 보는 실험이었는데 감시자가 충격의 크기를 올리도록 종용하자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지시에 따랐다는 내용이다. 그, 감옥에서의 감시자와 수감자 실험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잔인함에 대한 보고서였었는데. 여기서는 실험자들이 감시자의 존재를 매우 의식하고 있다는 측면에 집중해서 소셜미디어와 친구 집단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일상이나 생각에 대해 즉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집단이 있고 그들과 공감대를 공유하는 한편 그것을 깨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 마치 칼과 방패처럼 서로 감시와 공감이 가능한 이유는 같은 정서와 생활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성장기를 거쳤다는 것은 그만큼 같은 경험을 공유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감대의 기본 틀이 된다. 더불어 발달 지표가 있듯이 마땅한 시기에 수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성취도도 상대방에 비추어 가늠해 볼 수 있다. 친구라는 감시자가 가진 힘은 의외로 크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 집단에서 뒤쳐진 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에 자발적인 비교와 증명이 이루어진다. 

 

 "웃음이 전염되듯, 행복감도 전염된다. 즉 내 주위 사람, 그중에서도 나의 친한 친구가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한 것이다. 심지어 비만도 감염된다. 내 친구가 비만하면 나도 비만하게 되며, 이 말은 거꾸로 나 때문에 내 친구도 비만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의 비만은 내 친구 때문이며, 내 친구의 비만도 나 때문이다."

 

 이건 다른 내용들과는 전혀 상관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충격적인 부분이라 뽑아놨다. 가족들의 모습에서 식습관의 영향때문에 체형이 다 비슷한 것은 이해하겠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만이 감염된다니. 비만도 식욕이라는 욕구의 충족 과잉에서 오는 산물이기 때문에 그 행복감이 전염되어 감염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잖은 충격이다. 내가 살이 찐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내가 사귄 어떤 뚱뚱한 친구의 탓이고, 그리고 내 마른 친구가 살이 찐 것은 내 탓이라는 건가. 친구를 가려서 사귀고 사귀다가 이제는 체형도 가려서 사귀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니. 세상을 삭막하게 만드는 건 지식이다.

 

 "소셜 미디어 덕분에 스타들처럼 보통 사람들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모은다.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져 무리가 되면 서로 팬의 팬이 된다. 서로 팬이 되어주면 '나도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사적인 것까지 내놓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나와 유사한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한다. 이제 소셜미디어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존재할 수 없다. 나의 매력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나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노출시켜야 한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호기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다간 고립되고 만다."

 

 나를 드러내어 남의 이목을 산다. 어찌보면 자기 자신을 파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얼핏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일인데, 어차피 남과 교류한다는 것은 남에게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로 타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타인과 교류하고 싶은 생각이 드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니까.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나를 알린다는 것이 흉흉한 세상을 떠올려보면 꺼림칙할테지만, 아마 다들 그쯤은 감수하고 연결고리를 넓히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원하는 대상에게만 나를 알려봤자 닿지않는 소리없는 아우성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상은 남들이 원하는 대상이 되기 쉬우니까. 대신 나를 알려서 내가 남들이 원하는 대상이 되는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공개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노출시켜봤자 그 파편들은 파편일 뿐 전체의 그림이 될 수 없다. 는 것이 그 행위를 더욱 촉진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데,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것이라 직접적인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적어도 이 책을 읽으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구비해야 할 어떤 필수 조건이나 덕목처럼 여겨지기는 한다. 흥미로운 이론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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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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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옥 작가의 전작들 이름을 들어봤다. 들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트렌디한 느낌의 유명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읽어보지는 못했다. 백영옥 작가의 글을 처음 본 것이라 생각 외의 부분들을 많이 발견했다. 제목만으로는, 꽤 무거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볍고 또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는 제목과 소재가 매우 개성있어 인상적이다. 겉표지가 매우 화려해서 속도 그런 느낌일거라 생각했는데 속은 또 단정한 모습이라 의외였다. 책의 내적으로 외적으로 생각 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제목이 곧 내용이 되는 책이다. 실연한 남녀들이 잔뜩 나오는 책이다. 마치 이 책의 등장인물로 이름이라도 한 번 나오기 위한 서류전형에 최근 실연했을 것. 이라는 목록이라도 한 줄 들어가 있는 듯이 말이다. 아마,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 자격에도 한번쯤은 실연해보았을 것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을 것만 같은 책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무려 일곱시의 조찬 모임에 굳이 실연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남의 불행을 보고 즐기려는 사디스틱한 마음이 아니고서야.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은 아마 모두 실연을 해봤을 것이다.

 

 "실연의 흔적이 남긴 것들은 어째서 이토록 반짝이는 걸까. 이미 죽어버린 후에도 이 빛들은 왜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걸까. 죽어가는 역에 몰입한 발레리나의 눈빛에서 가장 큰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한 걸까."

 

 연인과 반짝임에 대한 명구절이 있는 드라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일 것이다. 한 번 보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드라마. 거기서 려원이 마음이 변한 현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 그 사람이 반짝여보일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와 나 사이의 반짝거림이 사라졌듯이 그 사람도 반짝임이 없어질거라고. 그래도 그 사람에게 갈거냐고. 이 책에서도 반짝임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반짝임이 아니라, 사랑이 끝남의 반짝임을 말한다. 마치, 죽기 전에 한 번 낸다는 백조의 울음처럼, 스러지기 직전 그 마지막 반짝임이 어째서 그토록 반짝이며 상처입은 가슴을 비추고 있는 것인지 묻는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말고는 큰 공감은 하지 못했다. 실연의 흔적은 반짝이지 않고 시뻘건 생채기를 그냥 내보인 채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같은 느낌이다. 너무 크고, 또 흉이 남을까봐 나로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누군가 전문적인 사람에게 가서 보이고 수술이라도 받아야 나을 수 있는 상처처럼 느껴지는 실연을, 죽어버린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반짝임으로 표현한 것이 나와 다른 점이라 인상적이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 단면 중 하나를 서로 맞대어 본 기분이다.

 

 " "전 그냥 애인을 잃은 게 아니에요. 지훈이는 저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었고, 우린 같은 학번 친구이기도 해요.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MT를 갔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함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죠. 지훈이는 제가 가장 힘들 때 아빠나 엄마처럼 늘 제 곁에 있었어요. ...중략...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가판대 앞에 서서 잡지를 팔고 있는 나이 든 아저씨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걸 알게 됐어요. 지훈이를 통과하지 않고 제 청춘을 이해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전 정말 고아가 된 거예요. " "

 

 한 사람과 오래도록 만나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마치 한 사람 몫의 추억을 그 사람과 나눠가진 것처럼, 반쪽을 떼어내면 온전치 못하게 되는 물건을 서로 한쪽씩 맡아두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이별이 더 아프단 구절을 본 것 같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면 여러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겹겹이 쌓인 감정은 선명하지도 않고, 어느 한 가지 감정만이 도드라지지도 않는다. 대신 더 무겁고, 여러가지 빛과 형태를 가지고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나니, 오래도록 만난 사람과는 헤어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만으로 고아가 된 기분이 되어버린다니. 시간이 참 무섭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트렌드한 글을 쓰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톡톡 튀는 문장들도 많았고, 사강에 대해 언급한 감성은 약간 8,90년대 분위기도 났는데, 사진으로 보니 꽤 미인이다. 작가의 신작을 읽고 오후 일곱시의 모임이 있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됐다.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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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김용원 지음 / 하다(HadA)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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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라고 시작하는 책의 제목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생각해보며 약간의 질투가 났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물론 딸에게 해주는 말들이 담긴 책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지만. 김용원의 신간 '아들아'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남자의 구실, 남자다움'을 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면서 호기심 섞인 기대 반, 약간의 질투섞인 부러움 반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는 썰매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고, 또 썰매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거구나.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당연히 썰매가 없고, 또 탈 수도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참, 넌 아버지가 없지." 준식이는 혼잣말처럼 그 말을 내게 던지고는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하며 쌩 달아났다."

 

 주인공 귀동이는 여섯살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어린 아이다. 할머니, 폐병을 앓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그 아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아이가 느끼는 아버지의 빈자리는 이런 곳에서 오는 구나, 싶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 줄 존재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영민한 주인공인 귀동이는 이를 두고 쓸데없는 떼를 쓰지 않는다. 귀동이네 할머니가 집안의 대들보라고 추어줄만한 마음의 깊을 가졌다는 점이 좋았다. 귀동이는 매우 어리지만, 형편 상 어린아이의 위치에서만 머물지 않는 아이라 더욱 안타깝고 매력있는 주인공이 되었다.

 

 "부엌으로부터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눈 주위는 불그스레했고, 얼굴은 부어 있었다. "할머니, 나 안 울었어요." "안다." "할머니도 안 울었지요?" "그럼." 그렇게 대답하던 할머니의 두 눈에서 끝내 눈물 두 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실은 내 눈에서 먼저 그랬다."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고 귀동이와 할머니는 조손가정이 되어 지낸다. 두 사람만의 생활은 따뜻하면서도 어렵다. 옛날엔 누구나 살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특히나 이가 빠진 듯이 여기저기 비어있는 집안은 더욱 울 일이 많았을 것이다. 여섯 살에 울 일을 참아가며 가족을 지키려고 애쓰는 귀동이와 그런 귀동이를 재우치면서도 보듬는 할머니,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는 책이다. 특히 손자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엄할 때는 타인처럼 냉정하게 꾸짖어주는 할머니의 교육법이 좋다. 무조건 응석을 받아주고 사랑만 해주는 것보다는 더 큰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불끈 일어나 벽장 안으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벽장 안에서 무언가를 찾느라고 한동안 부시럭 툭툭 덜거덕거리더니 마침내 파랑색의 좁고 긴, 양초관만한 종이곽을 들고 내려오셨다. 내 앞에 바로 앉으시더니 곽을 열어 보이셨다. 은수저와 은젓가락이었다. "까치나라 대장이 쓰시던 건데, 이제부터는 대주님이 쓰시게." "내 숟갈하고 젓가락 있잖아요?" "까치나라 대장이 대주님 가슴 속에 있으니 대주님이 이것으로 식사를 하면 바로 까치나라 대장님이 먹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야." "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사람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해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렇게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봤다. 멋지고 따뜻한 말이긴 한데, 사실 그동안은 그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삼 그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 대목이어서 따로 옮겨보았다. 까치나라 대장은 귀동이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인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귀동이에게 아버지가 까치나라에 계시다고 얘기해준 것을 계기로 까치나라 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는 식사 인사를 두 사람 몫, 해야 겠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다.

 

 큰 이야기 거리는 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편이 짧게 끊어져서 이어지는데 마치 만화책 여러 편을 글로 옮겨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가슴은 따뜻해지는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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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온도 - 조진국 산문집
조진국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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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의 드라마 중 하나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의 작가 조진국의 에세이집이다. 소울메이트라는 드라마는 사실 인기있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매니아 층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임은 틀림없다. 어떤 매니아 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매니아 층의 사랑을 말이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할 무렵 지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별로인데, 니가 보면 분명 좋아할 드라마가 있다"고. 그래서 속으로 어떻게 니가 내 취향에 대해 확신하냐'고 생각하면서 반신반의 이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나는 그 지인의 말대로 분명 그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빈말로라도 별로였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게다가 그 드라마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음악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음악 마저도 작가 조진국의 선곡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대체, 이런, 남자가, 또!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얼굴에 싫고 좋은 티가 금방 나고, 하고 싶은 말도 잘하는 편입니다. 농담도 잘하고 입맛도 까다롭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당신이 실은 외로움에 자주 뒤척인다는 것을."

 

 마치 별자리나 혈액형 성격같은 두루뭉실한 얘기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얘기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문자로 마치 번역이라도 해놓은 듯한 이 감정의 색깔은 너무나 쉽게 사람의 마음에 파고든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부분을 읽을때, 그 첫 순간 내 코끝 어디선가 초콜렛 냄새가 느껴졌다. 매우 달큰하면서도 씁쓸한 뒷 기운이 빠지지 않은 것 같은 초콜렛 냄새가 느껴지다니. 과장하는 것 같겠지만 진짜여서 달리 할 말이 없다. 덧붙여 내가 그렇게 감성적인 독자도 아님을 밝혀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그랬다. 그의 글은 마치 딱 이런 분위기다. 당신 일상의 이런 사소함이 아플거야라고 알아주는 듯한, 사실은 나도 이래. 라고 꺼내놓는 듯한 조곤한 털어놓음. 그가 가진 외로움의 온도를 손을 통해 직접 느끼는 듯한 기분이다.

 

 "그녀는 남편이 간절하게 보고 싶을 때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냄새가 생각난다고 했다. 평소에 이렇게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똑같이 생활하다가도 그 사람이 문득, 보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툭, 그립다고 했다. 그 사람의 냄새가 너무 그리워서 누군가 푹 하고 가슴을 찌르듯이 아프다고 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냄새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그 첫번째 부분이다. 누군가가 보고싶을때 사진도 분명 그 사람을 추억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람의 냄새가 주는 힘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마치 그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냄새를 맡으면서 그 사람이 내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곁에 없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데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나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진다. 상실감이 조금은 상쇄된다. 슬픔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움, 상실감, 상처처럼 남은 슬픔은 일상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쪽지처럼 의외의 곳에서 툭툭 터져나온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이 발견하지 않으려고 돌아갈수록 더 많은 곳에서 찾게 된다. 그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녀는 알뜨랑 비누 냄새가 좋다고 했다. 옛날에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잘생기고 우직한 남자가 있었다는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그 사람에게선 늘 알뜨랑 냄새가 났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알뜨랑이었어. 샴푸가 뭔지, 린스가 뭔지도 모르는 순박한 남자였지. 그래서 더 그 사람이 좋았어. 겨울에는 꼭 내 손을 깍지 끼고 외투에 넣고 다녔는데 그러면 집에 돌아와서도 내 손에 그 냄새가 배어 있었어."

 

 마치, '젊은 느티나무'를 떠오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그 풋풋하고 아름다운 소설. 사랑해마지 않는 그 소설. 사랑하는 대상의 냄새란 것은 이렇게도 각별한 것인가보다. 상대방의 냄새가 배어들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의 냄새 면면을 맡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만의 냄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역시나, 아름답다. 차마 풀어내기 아까울 정도로. 누구에게나 자기만 살며시 음미할 생의 가장 달콤한 부분이 있다. 공유하기 조차 아까운.

 

 "지금껏 내가 맺어온 관계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변한 거 같아, 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내 감정이 먼저 퇴색되고 식어버렸던 것이다. 다만 나쁜 인간이 되는 게 싫어서 빠져나갈 변명 거리를 상대에게 찾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친구 A와의 일과도 비슷한 것 같아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굉장히, 깨어질 듯한, 약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감성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는 초저녁 하늘 끝에 뜬 달빛이 너무나 예쁘다며 나를 찾아오는 소녀였고, 약간 들뜬 허스킨한 목소리로 조잘거리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너무 좋고, 싫어하는 것은 너무 싫다고 표현하곤 하는 소녀였다. 그런 그녀가 가진 감성과 약간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에 내가 속해있다는 안정감을 나도 매우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더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었을 때 그녀와 오랫만에 다시 만나게 된 일이 있었는데, 달빛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내 말에 전처럼 달뜬 목소리로 화답하는 그녀가 예전의 그녀가 아니게 된 것만 같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은 아닐까. 그녀를 다시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진국의 에세이는 내밀하다면 내밀하고, 뭔가가 잔뜩 숨겨져 있는 것 같다면 또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전부 다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삼켜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전해주는 감성의 색채나 온도만은 어째서인지 제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그의 글도 좋지만, 그가 선보일 드라마도 기대된다. 소울메이트 시즌 2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아직 소식이 없음이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좋은 소식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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