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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김용원 지음 / 하다(HadA) / 2012년 6월
평점 :
아들아'라고 시작하는 책의 제목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생각해보며 약간의 질투가 났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물론 딸에게 해주는 말들이 담긴 책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지만. 김용원의 신간 '아들아'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남자의 구실, 남자다움'을 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표지의 문구를 보면서 호기심 섞인 기대 반, 약간의 질투섞인 부러움 반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는 썰매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고, 또 썰매 타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거구나.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당연히 썰매가 없고, 또 탈 수도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참, 넌 아버지가 없지." 준식이는 혼잣말처럼 그 말을 내게 던지고는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하며 쌩 달아났다."
주인공 귀동이는 여섯살 소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어린 아이다. 할머니, 폐병을 앓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그 아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아이가 느끼는 아버지의 빈자리는 이런 곳에서 오는 구나, 싶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 줄 존재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영민한 주인공인 귀동이는 이를 두고 쓸데없는 떼를 쓰지 않는다. 귀동이네 할머니가 집안의 대들보라고 추어줄만한 마음의 깊을 가졌다는 점이 좋았다. 귀동이는 매우 어리지만, 형편 상 어린아이의 위치에서만 머물지 않는 아이라 더욱 안타깝고 매력있는 주인공이 되었다.
"부엌으로부터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다. 할머니의 눈 주위는 불그스레했고, 얼굴은 부어 있었다. "할머니, 나 안 울었어요." "안다." "할머니도 안 울었지요?" "그럼." 그렇게 대답하던 할머니의 두 눈에서 끝내 눈물 두 줄기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실은 내 눈에서 먼저 그랬다."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고 귀동이와 할머니는 조손가정이 되어 지낸다. 두 사람만의 생활은 따뜻하면서도 어렵다. 옛날엔 누구나 살기 어려웠다고 하지만, 특히나 이가 빠진 듯이 여기저기 비어있는 집안은 더욱 울 일이 많았을 것이다. 여섯 살에 울 일을 참아가며 가족을 지키려고 애쓰는 귀동이와 그런 귀동이를 재우치면서도 보듬는 할머니,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는 책이다. 특히 손자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엄할 때는 타인처럼 냉정하게 꾸짖어주는 할머니의 교육법이 좋다. 무조건 응석을 받아주고 사랑만 해주는 것보다는 더 큰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불끈 일어나 벽장 안으로 올라가셨다. 그러고는 벽장 안에서 무언가를 찾느라고 한동안 부시럭 툭툭 덜거덕거리더니 마침내 파랑색의 좁고 긴, 양초관만한 종이곽을 들고 내려오셨다. 내 앞에 바로 앉으시더니 곽을 열어 보이셨다. 은수저와 은젓가락이었다. "까치나라 대장이 쓰시던 건데, 이제부터는 대주님이 쓰시게." "내 숟갈하고 젓가락 있잖아요?" "까치나라 대장이 대주님 가슴 속에 있으니 대주님이 이것으로 식사를 하면 바로 까치나라 대장님이 먹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야." "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사람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해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렇게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봤다. 멋지고 따뜻한 말이긴 한데, 사실 그동안은 그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삼 그 말이 생생하게 다가온 대목이어서 따로 옮겨보았다. 까치나라 대장은 귀동이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인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귀동이에게 아버지가 까치나라에 계시다고 얘기해준 것을 계기로 까치나라 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는 식사 인사를 두 사람 몫, 해야 겠다는 생각을, 읽으면서 했다.
큰 이야기 거리는 없는 책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편이 짧게 끊어져서 이어지는데 마치 만화책 여러 편을 글로 옮겨 묶어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화려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가슴은 따뜻해지는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