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리듬으로 삽니다 - 80대 엄마와 50대 딸의 한 지붕 남남생활
신연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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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여서 어떤 선택이 가장 완벽한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선택은 불완전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선택 뒤에 따라오는 결과에 대해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에서부터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30)"


 목소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80대 어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비혼인에 대한 그릇된 발언을 꼬집어내는 비판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엔 좀 당황했는데 잠시 생각해보고 이내 수긍했다. 적령기라 생각되는 시기부터 저자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자주, 또 반복적으로 전해져왔겠는가. 그나마 비혼과 1인 가구가 이정도의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요즘에나 실례와 이해를 의식이나마 한다. 그러니 비혼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때 하하호호 말랑한 일화가 놓여져있을거란 예상이 엇나가도 어쩔 수 없다.


 " 지난번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 갔을 때,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특별히 즐길 거리는 없어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는 것보다 저분에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125)"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나이 먹는 일이 가장 무서울 때가 새롭고 멋진 경험이 생기면 그게 젊은 사람들에게 어울려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다. 나 자신에게 제약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도 편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 나잇값이라는 것에 고민할 때가 있는데 나이 먹은 만큼의 어른스러움과 걸맞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부딪히곤 한다. 저자가 탱고를 배우려고 했을때 나이제한이 있는 것을 보고 '물 흐리는 나이'가 되었다(124)고 했는데 차갑고 뾰족하게 찔러오는 표현이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한참동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중에 주변인들을 만나 한번씩 물어봐야지 마음 먹었다.


 저자가 여든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에 병간호라던지, 노후 돌봄의 주제가 나오는데 요즘 주변인들과 만나서도 적지 않게 나오는 얘기라 마음이 저절로 무거워지기도 했다. 전보다 병원에 방문할 일이 잦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순례를 떠나는 것이 혹은 가끔 입원이라도 하는 일이 생기시면 병실을 찾아가며 챙기는 것이 그동안 좀처럼 무관심해지기 어려운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당연히 자신이 챙길 몫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내 앞에 부모님의 노후가 놓여진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나는 버거워져서, 문득 (늙은 나를 돌보아 줄 나와 같은)내가 없는 내 노후는 어떨까 염려도 해보곤한다.


 한 네번째 장에 들어서야 처음 기대했던 '엄마와 함께 사는' 일상적인 내용이 풀려나온다. 어떤 부분은 너무 똑같아서 웃고, 또 너무 똑같아서 피곤했다. 서로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의 이야기니 당연히 소소하게 감동적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부추전을 해놓고 기다렸는데 저녁밥을 먹고 왔다고 하자 '미리 말을 해주지'(145)하셨다는 날의 이야기는 괜히 더 마음이 쓰였다. 언젠가부터 우리 엄마도 내가 먹을 음식을 잔뜩 해두고는 마음대로 골라가며 담아가는 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고 좋은지 홍보하신다. 선심쓰듯 그럼 조금 더 가져간다고 하면 신나서 가방에 담아주시니, 부추전을/반찬을 해놓고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공감도 하고 감동도 하고 대체로 웃으면서 때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며 그러나 즐겁게 읽었다. 에세이를 자주 읽지는 않는데 이렇게 가끔씩 마음에 드는 에세이를 만날 때면 더욱 반갑고 즐겁다. 비혼을 결심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하던데 조금 멀지만 가까운 미래의 혼자사는 삶이 어떨지 궁금하다면 '우리만의 리듬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지 엿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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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그림들 - 보통의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
조안나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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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맛없는 비스킷을 먼저 먹고 가장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 나는, 힘든 일을 한번 겪고 나면 나머지는 웬만하면 다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햇살 가득한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는 수요일은 행복 그 자체이다. (41) "  


 어떤 분야이든 전문적인 지식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괜히 거리감이 들었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인 나는 언제든 어느 누구와든 대체될 수 있는 흔한 사람인데, 그들은 뭔가 특별한 능력이나 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나 예술을 감상하고 그걸 풀어낼 힘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멀었다. 분야마저 어렵게 느껴지곤 했다. 요즘은 생각을 바꿔 나도 뭔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만큼 즐거웠다면 됐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마음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나의 다정한 그림들'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보고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저 문장을 읽는 순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책의 리뷰도 수요일에 써서 남겨야지, 마음먹었다.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 시간동안 항상 내려져있던 거실창의 블라인드를 일부러 올려두었다. 어떨 때는 별안간 책을 읽다말고 블라인드를 올리러 달려가곤 했다. 늘 모니터와, 화면과, 활자를 보던 눈이 어느 한 순간이라도 푸르고 일상적인 풍경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마음먹게 되는 책이었다. 하루종일 외부와 단절시켜놓고도 답답한 줄 몰랐던 공간에 개방감이 더해지는 변화를 덕분에 꽤 즐기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해둔 화단의 나무들이 조금씩 물드는 사소한 풍경이라도 시선 안에 들어오면 특별해지는데, 화가들에게 더 넓고 푸르른 자연이 주어진다면 그리지 않을 수 없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자연과 정물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 것일까. 모델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하고 닮은점을 찾아내기도 하느라 오래 걸렸다. 일상이 수시로 끼어드는 상황에서 할 일을 하는 고군분투인지라 책 안에는 코로나로 격리를 하던 시간, 반찬 해먹는 일, 잠들기 전 인터넷 쇼핑 같은 주제가 등장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세탁소도 다녀오고, 분리수거도 하고, 택배를 받기 위해 몇 번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하면서 '느낌 있게 사는(183)'건 일상 안에서는 좀처럼 쉽지 않구나 했다. 어느 날 지인이 어떤 가수의 얘기를 하면서 결혼을 하면 예술성이 죽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명곡의 탄생은 짝사랑과 실연 기간에 집중된다는 우스갯소리와 곁들인 말이지만 순간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니 책 한 권 읽는데도 생활이 끼어드는 순간이 있는데, 예술을 하며 느낌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더 어렵겠냐는 뜻으로 느껴져 속으로 그랬구나 했다.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세속적인 지점은 미술 에세이를 쓸 때 저자가 거치는 4단계(129)를 설명한 부분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이 참고해도 좋겠지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으로 써도 좋겠다. 전에는 전시를 가기 전에 미리 공부를 안해가면 이해도 못하고 어떻게 감상해야 되는지 모를 것 같아 걱정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는 도슨트 안내 시간에 그림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면서 설명만 들으며 힘들게 쫓아다닌 적도 있다. 그런 감상법이 나에게 더 잘 맞아서가 아니라 잘 모르면서 보는 걸 부끄럽게 또는 의미없게 여긴 탓이다. 하지만 모르고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좋다'고 느꼈다면 "내 삶에 필요한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왜인지 이유를 생각해보자. 같은 감상법들은 나에게 더 잘 맞는 방법이라 도움이 되었다. 


 많은 그림들이 소개되는데, 샐리 스토치의 그림(25)을 안내 받으며 기쁨을 느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인가 했는데, 책에서도 스토치의 그림을 소개하며 호퍼를 말한다. 물론 나중에 호퍼의 그림도 등장한다.(143) 하지만 둘 사이의 분위기가 다르고 굳이 누구의 그림이 더 좋다고 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선을 끄는 각자의 매력이 존재한다. 카페라는 익숙한 공간이 화폭으로 옮겨져서일까. 잘 모르는 예술의 세계를 쉽게 설명해주고, 유명한 작가와 그림들을 배우는 내용도 좋지만, 이런 어렵지 않은 접근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커피를 한 잔 내려 책을 읽는 시간처럼 그래서 어떤 '작품 속 의미'들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분위기'를 예술에서 음미하는 순간을 선사한다. 새삼 '다정한'의 의미를 깨달았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책이 인상깊었던 탓일까, 흐리던 날이 개어 어느 날의 한라산을 바라보고는 책에서 본 오키프의 그림같다고 떠올렸다. 작가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그네스 마틴의 <행복한 휴가>(225)를 이야기 했지만, 단순한 선이 칠해진 <행복한 휴가>보다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페데르날>(91)이라는 그림이 한라산과 닮아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한라산이 이렇게 생겼었나 새삼스럽기도 했는데, 아마 이런 감상은 이전에 가지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는 혼자 한라산을 보며 이 그림을 떠올릴 것을 짐작하니 천천히 느리게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독서에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책과 그림과 저자와 일상과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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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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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맛집 산책은 그리움을 먼저 전해주었다. 경성이라 불리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책에 소개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식당 중 한 곳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종로와 인사동엘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종로에 자주 가질 않아 목적한 곳 외에 어디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지 몰랐다. 일을 마치고 괜찮아보이는 곳에 들어가 기분좋게 먹고 마신 우리의 외출은 썩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날 밤 우리의 자랑을 들은 아버지가 놀라움과 안타까움 게다가 약간의 기막힘을 담은 기색으로 거기까지 갔으면 이문설렁탕을 먹으러 갔어야지! 하시는게 아닌가. 대체 그 설렁탕이 무엇이길래! 눈앞에 놓인 설렁탕을 두고 '왜 먹질 못하니' 탄식하는 김 첨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던 것일까. '경성 맛집 산책'에 바로 그 이문설렁탕 집도 소개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며 궁금했다. 


 책이 제법 귀엽다. 음식점에 대한 소개와 함께 메뉴판이 제공된다. 비싸보았자 50전 내외의 가격을 보며 부자가 된 기분도 느낀다. 만원만 가져가도 갑부가 되겠구나. 설렁탕이 15전 냉면이 20전이니, 뒤에 전 대신 천원을 붙이면 요즘 물가인 셈일까? 책에서는 1원에 5만원 정도로 소개했는데 1원에 10만원으로 봐도 무방할만큼 식대는 갈수록 오른다. 요즘 물가를 비교해 생각해봐도 일반적인 식사 한끼 가격보다는 좀 더 비싼가 싶은데, 책 속에 나오는 음식점들이 대부분 고급스러운 곳이라 호텔 식사값이나 커피값으로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그러니 1원도 안되는 가격들에 살짝 넉넉한 기분을 내봤지만, 그때도 갑부는 커녕 설렁탕과 냉면 값 살벌하게 오른 물가에 허리띠를 졸라 매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서민의 삶일 것이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더 힘들었으면 모를까. 


 다시보니 가격면에서는 영 귀엽지만은 않은 경성의 맛집 면면을 살펴보니, 고급스러운 호화로움이 느껴진다. 그때 당시를 보여주는 신문, 사진 그리고 문학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묘사를 살펴보면 꽤 재미있다. 얼마 전 유행했던 개화기 스타일의 의상을 그대로 입은 듯한 사람들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광화문이나 인천, 전주, 군산 같은 관광지에서 요즘도 볼 수 있는 모습같기도 하다. 그 시절 사람들의 옷차림이 내노라하는 식당들의 호화스러움 못지 않게 멋을 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 고급 음식점들이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요즘 위스키를 마시고 오마카세나 호텔 식사를 예약해서 향유하는 문화가 새삼스러운 과소비 풍조라기엔 오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이 상당히 두툼한데 읽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니 어떤 장소들은 눈 앞에 풍경이 펼쳐질 것도 같다. 이제는 흔해진 음식들이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식문화로 자리잡은 메뉴들을 컨셉에 맞춘 차림을 하고 즐기러 다녀와도 재밌겠다. 시간을 뛰어넘어 혹은 옮겨와 오래된 가을 길을 걷는 특별한 산책을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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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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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뉴스는 보도국과 디지털뉴스국이 알아서 만든다. 기자들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신껏 기사를 쓴다. 데스크와 국장은 그것을 고치거나 손볼 수 있다. 그러나 사장은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MBC는 그런 언론사다. (17) "


 언론기관에 종사한 저자가 쓴 책이니만큼 우리가 경험해 온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조명하며 조금 더 깊숙이 전달해준다. 잊었던, 혹은 담아두었던 사건들이 기억속에서 끌려나올 때마다 새삼스럽고 충격적이다. 그 시간들을 다 지나와서 또 지금 이런 현실이라니.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서일까 우리가 어리석고 이기적인 탓일까. 


 광화문에 볼일이 있어 다녀올 적이면 하루에도 진영을 나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있는지 놀랍다. 정말 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극렬히 대치된 저마다의 신념에 뿌리를 두고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바탕에는 언론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보도들. 어떤 종편 채널에선 사담으로도 나누지 않을 내용을 출연진들이 앉아 방송으로 내보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의 태도가 천차만별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지금 뉴스를 볼 때면 빙산의 일각만이 주어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익이 눈을 가리면 입도 거짓을 말하는 데 부침이 없는 것일까. 책에서도 '블랙리스트'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는데 요즘의 행보를 보면 없어지지 않은 리스트가 다시 채워질 흐름을 보인다. 그 자체를 부정하면서 더욱 천연스럽게.


 가볍지 않은 내용인데 어느샌가 페이지가 줄어있다. 홀리듯이 책을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 확실히 문장이 명료하고, 사건들이 일부러는 아니어도 자극적인 면이 있어 기대보다 흥미롭게 읽었다. 예상하기로는 감성을 좀 팔고 딱딱한 내용이 될까 싶었는데, 현란하게 돌아가는 최근 국정과 언론의 행보에 '이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는 내용만 담아도 책장이 금방 넘어갔다. 


 " 그렇다면 좋은 언론은 어떤 사명을 추구해야 하는가. 많은 언론인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마치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나는 거기에 '인권을 수호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지향하며, 지구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더하고 싶다. (200) "


 마치 인기 영화 시리즈의 슈퍼히어로가 할만한 대사같다고 생각했다. 언론이 권력 감시와 약자 대변의 기능만 해줘도 대중들은 차고도 넘치게 만족할텐데. 학생이 공부 열심히 하기도 힘든 것은 맞으니까.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짧은 서평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웠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언론이 언론인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단 희망찬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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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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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단순해졌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딱히 지겹지는 않았다. 감정마저 뭉툭해져서 이제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일이 오래전 추억 같았다. 자신을 동여매고 있던 감정의 매듭들이 헐거워진 게 나쁘지 않았지만 살을 파고들던 서릿발 같은 마음들이 이따금 그립기도 했다. (16) "


 '사랑이 우스운 나이까지 단숨에 흘러가길' 바란다는 노래가사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곤 했다. 딱히 사랑만이 아니라 속을 복잡하게 하는 감정과 관계들에게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갔으면 바라기도 하고, 혹은 나이를 먹으면 정말 점차로 무던해지게 될까 궁금했다. 책을 읽다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일이 오래전 추억 같'다는 문장을 보고 같은 말을 하는구나, 나는 언제쯤 공감하게 될까 싶었다.


 가제본이 도착했을때, 주어진 분량은 길지 않았다. 금방 읽겠구나, 싶었는데 100쪽도 채 되지 않는 일부분만을 손에 들고도 한참을 천천히 읽었다. 문장이 섬세하고 힘이 있었던 까닭이다. 삶에서 짜여져 나온 문장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시선이 예사로 지나는 것을 막고 한글자씩 오롯이 읽도록 이끌었다. 시종일관 무겁고 심각한 눈으로 읽었는데 책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계속되는 사건과 현상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하기로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한으로 '전방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거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머리길이나 교복 등 품행에 대한 단속과 규정, 체벌이 허용되었고 교권의 위기보다 학생의 인권이 더욱 흐리던 때를 지나온 이미 낡은 세대라 요즘 뉴스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낡고 고루한 소리만 무신경하게 내뱉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옛날과 비교하려는 자신이 튀어나온다. 하물며 실제로 교사 출신인 작가는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지켜야 할 세계'로 바라보았을까 궁금했다. 


 방직 공장의 여공들과 함께 싸우던 엄마를 둔 윤옥도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사복경찰에게서 정훈을 도망시키던 무모했던 여대생에서, 지호를 찾으러 원주로 내려간 누나에서, 시영의 담임이 되어주고 싶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아이들과 멋진 수업을 연주하고 싶은, 학교라는 장소에서 싸우는 교사가 되었다. 더불어 기주와의 재회를 기점으로 동생 지호를 입양 보내야 했던 과거가 풀어지며 윤옥의 안에 맺혀있는 '한풀이(19)'가 무엇일지 깨닫게 되었다.


 짧지 않게 읽어낸 분량이 역시나 너무 짧아 아쉽게 느껴질만한 흡입력이었다. 윤옥의 쓸쓸한 마지막으로 가기까지 아직 못다한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어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만 하다. 다소 무거울 것 같은 인상이지만 일단 읽어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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