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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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이 단순해졌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딱히 지겹지는 않았다. 감정마저 뭉툭해져서 이제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일이 오래전 추억 같았다. 자신을 동여매고 있던 감정의 매듭들이 헐거워진 게 나쁘지 않았지만 살을 파고들던 서릿발 같은 마음들이 이따금 그립기도 했다. (16) "


 '사랑이 우스운 나이까지 단숨에 흘러가길' 바란다는 노래가사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곤 했다. 딱히 사랑만이 아니라 속을 복잡하게 하는 감정과 관계들에게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갔으면 바라기도 하고, 혹은 나이를 먹으면 정말 점차로 무던해지게 될까 궁금했다. 책을 읽다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일이 오래전 추억 같'다는 문장을 보고 같은 말을 하는구나, 나는 언제쯤 공감하게 될까 싶었다.


 가제본이 도착했을때, 주어진 분량은 길지 않았다. 금방 읽겠구나, 싶었는데 100쪽도 채 되지 않는 일부분만을 손에 들고도 한참을 천천히 읽었다. 문장이 섬세하고 힘이 있었던 까닭이다. 삶에서 짜여져 나온 문장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시선이 예사로 지나는 것을 막고 한글자씩 오롯이 읽도록 이끌었다. 시종일관 무겁고 심각한 눈으로 읽었는데 책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요즘 계속되는 사건과 현상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하기로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한으로 '전방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 거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머리길이나 교복 등 품행에 대한 단속과 규정, 체벌이 허용되었고 교권의 위기보다 학생의 인권이 더욱 흐리던 때를 지나온 이미 낡은 세대라 요즘 뉴스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낡고 고루한 소리만 무신경하게 내뱉는 어른은 되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옛날과 비교하려는 자신이 튀어나온다. 하물며 실제로 교사 출신인 작가는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지켜야 할 세계'로 바라보았을까 궁금했다. 


 방직 공장의 여공들과 함께 싸우던 엄마를 둔 윤옥도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사복경찰에게서 정훈을 도망시키던 무모했던 여대생에서, 지호를 찾으러 원주로 내려간 누나에서, 시영의 담임이 되어주고 싶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아이들과 멋진 수업을 연주하고 싶은, 학교라는 장소에서 싸우는 교사가 되었다. 더불어 기주와의 재회를 기점으로 동생 지호를 입양 보내야 했던 과거가 풀어지며 윤옥의 안에 맺혀있는 '한풀이(19)'가 무엇일지 깨닫게 되었다.


 짧지 않게 읽어낸 분량이 역시나 너무 짧아 아쉽게 느껴질만한 흡입력이었다. 윤옥의 쓸쓸한 마지막으로 가기까지 아직 못다한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어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만 하다. 다소 무거울 것 같은 인상이지만 일단 읽어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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