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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법
유상우 지음 / 넥서스BOOKS / 2026년 3월
평점 :
" 겉으로 보면 거절은 단순한 선택처럼 보인다. '할 수 있다' 혹은 '어렵다'를 말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거절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마음속에서는 여러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밀려오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자주 자기 뜻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15"
길을 걸으면 무슨 판넬에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따라오거나, 멀리서부터 짝을 이룬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얼굴에도 복이 많다며 말을 걸어오는 이른바 만만한 인상이라 세상을 살아오면서 피곤한 일들이 없지 않았다. 자신의 기분이나 성별이 태도가 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언제는 정말 간절히 내가 마동석같은 체격의 남자였다면 얼마나 세상 편했을까 바랐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만만해보이는 외면에 내면까지 갖춘 물렁한 사람이었고 이따금 마주하게 되는 '덜 교육된 사람들' 앞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면 그 고통이 신체적 고통으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피하는 방법을 골몰하는 쪽이 더 익숙하고 필요했다.
'아, 저 잠깐 올리브영 좀 들렀다가 가려구요.' 라는 말을 해본 적 있을까, 혹은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요즘은 제의, 부탁에 대한 거절을 자신에 대한 거절로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많아 거절이 무섭다. 아주 사소한 거절이나 거부의 표현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거절, 저 사람이 이 거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어 발전된 돌려말하는 기술을 두고 쿠션어라는 표현도 생겼다.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지 왜 싫다는 말을 못해서 답답하게 하냐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지만 거절을 말하기 힘든 사람도 최선을 다해 당신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방식을 '올리브영' 같은 쿠션어로 만들어낸 것이다.
" 거절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행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지켜 내기 위한 중요한 기술이다. 19"
하지만 언제까지 에둘러 말하는 방법만으로 답답해지는 속을 풀지도 못하고 쌓아가면서 살 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법'이 좀 더 성숙하게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궁금하고, 필요한 사람을 위한 도움이 되어 줄 것 같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왜 거절이 어려운가를 생각했을때 떠올랐던 이유들을 책에서도 세가지로 나눠 제시하고 있었다. '첫째, 관계가 끊어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둘째,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16' 두서없이 생각했던 이유들이 차례로 정리된 것을 보고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약한 면과 욕망이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나를 존중하는가?" 43" 책을 읽다 찌르듯이 다가온 질문과 함께 사실은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 상대의 호감을 얻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하고 괴롭게 만들었던 적은 없었을까 되짚어보았다.
" 자존감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는 분명히 축적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존감은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다. 이미 오늘 아침,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226"
이 자신에 대한 질문은 4장에서 답으로 돌아온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법'에서는 남을 똑같이 무시해주는 방법을 말하기 전에 나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몇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가 단단하지 않으면 그만큼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나를 무시하는 남에게 대응하기 전에 나를 무시하는 나부터 개선하도록 조언한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기, 나를 칭찬하기, 피곤해도 밥을 잘 챙겨먹기, 환기를 해보기 같은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을 통해 쌓이는 변화를 어렵지 않게 제안해준다.
사실 책을 펼치면 이렇게 못된 사람한테는 저렇게 쏴주고, 이렇게 나쁜 사람한테는 저렇게 들이대버려라 하는 맞춤형 사이다식 대응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남에게 어떻게 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바라보라는 조언이 먼저 나와 이제부터 세상과 싸우는거야, 하고 화부터 장전했던 마음이 한풀 가라앉았다. 물론 일단 나보다는 저 사람 왜 저러나가 궁금한 사람들은 2장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솔직히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땅굴을 충분히 파봤던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들었을테니 일단 2장부터 읽기(2-3-1-4)를 추천한다. 심지어 집착형(93)의 내용을 읽으며 혹시 내가 집착과 통제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도 했으니 이런 성향에게 1장에서 마주하는 자신에 대한 점검은 투지를 살짝 꺾는 일이 되니 나중에 읽어도 좋을 듯 하다.
가장 중요한 실전 활용편은 3장에 있는데, 그래서 3장의 내용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대응하기보다 질문하는 편(137)이 더 강력한 전략이 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똑같이 무례해지거나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지 않고도 상대방이 생각없이 가볍게 한 말을 되돌아보도록 만들면서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라 현명하고 성숙한 태도로 여겨졌다. 또하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도 관계에서 피로를 가져온다고 짚어준 점(친밀성 피로 151)도 의미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함께 살때보다 더 사이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가끔 본 적이 있었다. 오랜시간 함께 살아온 가족 사이에서도 이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이 거리감을 잘 유지해야 함을 느꼈다.
남탓을 해보려고 기세등등하게 책을 들었다가 사실은 남보다 내탓을 더 많이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왜 거절이 어려운가, 왜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기 어려웠나를 먼저 생각하고 건강한 관계맺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는 도움이 되었다. 책의 곳곳에 동영상 자료를 볼 수 있는 큐알코드가 있어 좀 더 궁금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리브영에 들러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워서 잠들기 전 그날 들은 누군가의 배려없는 말에 이렇게 대답해줄걸 이불을 걷어차 본 사람이라면, 거절을 하기 어려워 빠져나오고 싶은 단톡방에 영원히 갇혀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실수에는 위로를 하면서 자신의 실수에는 자책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법'을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