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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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영역은 낯설다. 절대적으로 나와 거리가 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환경과 자신의 아이를 육아한다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상상하지 못한 다른 세계(9)'는 나와 타인의 삶이 만나는 모든 순간 부딪힌다. 그래서 갈등도 있고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있겠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엿보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얼마나 치열하게 다투고 따뜻하게 이해하려 했을까 읽기 전부터 기대되어 웃음이 나왔다. 

이 세계는 두 개의 문화가 서로 섞여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뭐가 더 낫다 아니다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성적으로. 하지만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것에 기울지도 모른다. 책이 한국에서의 생활에 완벽에 대한 추구, 타인에 대한 의식, 외모에 대한 압박 이야기로 시작할 때, 반박하고 싶어지곤 했다. 한국스럽게 사는 일에 아무 비판도 불만도 없이 절여져있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맞아, 우리 사회의 병폐야.'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외국이라고 해서 더 낫기만 한 것은 아닐텐데? 갈등이 일었다. " 과연 우리는 자유롭게 육아 철학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각자의 성장 배경과 문화에 묶여 있는 것일까. 당연하고 옳다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각자의 문화 안에서만 통용되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우리 각각의 방식을 보편적인 기준이라 착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107" 이와 비슷한 고민이 이 가족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 살림에서 깔끔함과 정리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은 좀체 타협을 보기 쉽지 않다. 67"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한영 육아 번역기'라기보다는 영국식 육아 적용기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기존의 생애 과정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영국의 생활과 문화에서 느낀 장점과 새로움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많이 받아들인 티가 났다. '화이트 인테리어(191)'에 대해서 말할 때도 그게 유행이라서, 되팔기좋으라고가 아니라 확실히 집이 밝고 넓어보이고 더 깨끗해보이기 때문이라는 장점을 말하고 싶었다. 옅은 녹색, 연분홍색, 캐릭터벽지, 포인트벽지 많은 디자인을 거쳐왔지만 크림과 흰색은 가장 질리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선택이었다. 육아서를 읽고선 왜 인테리어 한 마디에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읽는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말이었다. 획일적이고 지나치게 기준을 세워둔 듯해 답답하게 여겨졌을지 모르지만, 고심해서 효율이 가장 좋은 길을 요령껏 가려는 노력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흙에서 뒹굴고 놀아도 좋고, 유아용 세제를 구분해서 쓰지 않아도 좋다. 무균의 상태로 배양하듯 자라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집안에서 신발을 신는 문화에서 아이가 기어다니는 것(83)은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것만큼은 '영국식 돌봄'이 유연하고 하는 수식도 아무 소용없이 양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밖에서는 바닥도 굴러다니고 강아지랑 뒹굴고 놀 수 있지, 하지만 신발을 신고 다니는 집안에선? 안된다. 

" 일터로 향하는 엄마들은 매일 아이들과 작은 이별을 한다.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하더라도 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데는 끝없는 고민이 따른다. 하지만 내가 나의 엄마를 향해 가졌던 생각을 떠올려보면 일을 계속 할 이유가 선명해진다. 나도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날 위해 너무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으니까. 95" 

K 할머니 육아에 대해 예찬하는 저자이면서 자신의 삶과 가정의 균형을 조절하고 있는 여성으로서 황혼육아, 돌봄 노동을 부모 세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산후우울증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154)을 이야기하면서 그 결말이 친정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156)으로 맺어진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할 때 순간적으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쉽긴 할텐데 싶었다. 그리고 곧 자신이 무지했음을 깨달았다. "육아하는 아빠들이 아이와 둘이 외출을 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혹은 싱글 대디라면 매번 이런 상황을 마주하진 않을까. 44" 사실 영국 펍에 아기 의자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썩 괜찮게 다가오진 않았다. 영국의 펍은 그 의미나 기능이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한국식으로 생각하기에 술집에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우리 음주 문화를 생각했을때 그건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마저도 육아를 하면서 잠깐 압박감을 해소하고 저녁시간의 여유를 즐기고픈 마음을 몰라주는 고리타분한 생각일 수 있다.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현실을 담은 조언을 남겨주길 바란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있어 그 점이 재밌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게 읽었다. 중반이 지나면서는 연애와 가족 이야기의 비중도 높아지면서 전체적으로 이들이 어떻게 가족이 되었고, 되어갔는가를 관람하듯이 읽었다. 전문적인 비교나 분석은 없었지만 저자가 굉장히 유연하고 열린 태도로 한국과 영국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반영하여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혼과 육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영 육아 번역기'라는 제목이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와 엮인 해프닝은 씁쓸했다. 소중한 누군가의 책에도 어쩔 수 없는 사건이 가끔은 끼어드는 법이다. 생활기반과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조금씩 닮은 넷이 되고,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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