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 언어는 곧 세상의 이치를 비추는 거울인 것만 같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문법과 어휘에 대한 훌륭한 식별 능력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스스로는 그 하나하나의 근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구사하지만, 개개인에게 잠재된 언어 구조는 거대하고 정교한 성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사람들의 언어 사용 구조는 당사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대단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45"
최근 신발을 사러 한 매장에 들렀을 때 재밌는 표현을 들었다. 사이즈를 물어보니 직원이 '해당 제품 사이즈는 5단위가 아닌 10단위로 전개가 된다'고 답해온 것이다. 사이즈의 전개라니 문학적이다. 그런데 이 낯선 표현은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과의 괜한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쿠션어와 존대(존칭의 인플레이션198)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사이즈의 전개라는 표현은 간만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저자 역시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107)라는 질문을 받고 문법적으로는 교정이 필요한 이 완곡한 의문형 표현이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매번 새로운 표현이 나오고, 새로운 말의 뜻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가장 먼저 놀래킨 것이 '돼지고기미나리찜'이다. 처음 듣는 메뉴 이름이기도 한데, 이것이 방송 자막일 때와 교재에 쓰일 때(18)에 따라 정확한 답변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돼지고기미나리찜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이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생세일(24)이라니 뭘 판다는 건 줄 알았다. 여러분이 알고리즘이라고 쓰는 단어가 사실은 알고리듬(31)으로 발음되어야 하고 이는 혼용 가능합니다,라는 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알고리듬은 또 어떤가. 재밌는 점은 국립국어원에서 매일 맞춤법 상담을 하며 연구해도 아밀라아제가 아밀레이스(47)가 됐다는 사실은 낯설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아주 작은 차이 띄어쓰기 한 번, ㅅ이 들어가느냐 마냐의(160) 일, 미묘한 의미 차이같은 것들이 아주 맹렬한 토론 주제가 되는데 듣다보면 정말 이렇게 중요한 일이 맞구나 싶어진다.
" 언어의 요소가 문장이나 글 전체의 의미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확인하기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아 교정하는 일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우리는 일종의 기술자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기술이 지나치게 정교해지면, 오히려 시야를 좁히기도 한다. 92"
짜장면(67)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불러야 했던 때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를려면야 자장면이든 짜장면이든 부를 수 있지만 짜장면이 틀렸다고 옳고 그름이 퍼져나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닭도리탕도 닭볶음탕이 되어서 한동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아직도 알쏭달쏭하게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로브스터가 랍스터도 된다(132)는 사실은 왜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상대적으로 덜 소비되기 때문에 알려질 기회도 적었던 것일까? 이 단어들이 논의가 되고 논란이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품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던 것을 떠올려보니 역사의 산증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새삼 재밌었다. 책을 읽다보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어머니, 민수를 1시까지 어머니 댁에 데려다 드릴게요(84)'의 소제목으로 시작해서 본문의 내용에는 '어머니, 제가 민성이를 어머니 댁에 1시까지 데려다줄게요/드릴게요.(85)'로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별 걸 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덩달아 갑자기 민수가 왜 민성이로 바뀌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읽고 갑자기 '우리말 365'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는 것 같고 전화를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 독자들이 있을텐데, 책의 중간중간 무례한 상담자들이나 예상 외의 질문을 하는 독특한 상담자들, 화장실 문제처럼 어찌할 수 없는 생리적 욕구 앞에서도 순번부터 고려해야 하는 솔직히 열악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담 환경 등도 등장하며 그런 호기심을 자제하도록 해준다. 맞춤법에 대한 정보만 담은 내용이 아니라 노동 환경에 대해서도 함께 접할 수 있어 읽다보면 고생하십니다,하고 절로 위로를 보내게 된다. 저자가 직접 조언한 것 중 가장 유용한 '우리말 365' 이용팁은 하루에 다섯 개까지 질문할 수 있다(158)는 것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팁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갖추고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핸드폰 너머에 사람이 있으니까.
" 문장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어떤 길로 뜻을 전하느냐에 따라 그 움직임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진다. '더 잘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2"
종종 어떤 사람이 좋고 싫은지 꼽으라는 질문에 맞춤법 잘 못 쓰는 사람이 싫다고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싫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의 과감함이 부럽고, 때로 무섭고, 종종 서운하고, 가끔 공감된다. 잘못된 단어나 문법 없이 글을 잘 쓰면야 참 좋겠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일부러 무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잘 쓰기를 추구는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상심하지 않을 정도의 마음을 가지는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낉여오다(173)'는 유행어나 '보리꼬리'같은 틀린 단어가 불쾌함 대신 유쾌함을 주는 것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얼마나 이해하냐에 따라 잘못 쓴 단어나 문장도 정 떨어지는 무식함이 아니라 실수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모두가 바른 문장을 쓸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실수를 할 텐데 그때마다 창피를 주고 그거 몰라도 잘사네 못사네 싸울 수도 없다. 그러니 웃음과 이해로 품고 살며시 고쳐나갈 수 밖에.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읽은 기념으로 격조했던 친구에게 "너 나 안 본 지 두 달 다 돼 감"(113) 안부를 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