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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1
제리 스피넬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칠판위에 번져있는 분필 글씨 "문제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공교육 시스템인 학교를 못 견뎌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나이 정도의 청소년과 그를 끝없는 사랑과 인내로 감싸 안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말았다. 아마 선생님과 부모님 둘 중 하나는 주인공에 대해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않는 기성세대로 나오겠지 하는 추측만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꽤나 오랜 시간 망설여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망설임 끝에 책을 펼쳐들고 만난 징코프는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도 이제 막 밝고 넓은 세상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하며 "야호"소리치는 꼬마아이가 아닌가!! 그 꼬마 징코프가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의 모습을 저자는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로 보여주고 있었다.
징코프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보여주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때로는 키득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도 하고 때로는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함을 선물하기도 했다. 확실히 징코프는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무난히 살아가기에는 힘든 구석이 많은 녀석이다. 입학식때 엄마가 쓰고 가지 말라고 50번은 넘게 말한 기린모자를 쓰고 가서 바로 담임선생님께 눈도장을 찍는 징코프. 글씨는 개발괴발인데다 운동능력은 거의 전무한터라 서로 자기팀에 올까봐 두려워하게 만드는 징코프. 거기다 위까지 약해 툭하면 먹은것을 토해내곤 하는 징코프.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징코프는 이미 어릴 때부터 패배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아이였다. 징코프의 마음 속 가득히 들어차 있는 자신의 삶과 가족,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에 대한 맹목적일정도의 사랑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만으로 그 아이를 패배자로 규정짓고 마는 친구들과 비즈웰 선생님....자신을 패배자로 여기고 비웃는 친구들의 마음을 눈치채지도 못하는 징코프는 그래도 늘 주어진 삶에 열정적으로 다가가고자 애쓴다. 결과가 좋게 나온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다행인것은 담임선생님 중에 이런 징코프의 순수함을 인정해 주는 미크 선생님, 얄로비치 선생님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남다른 아들을 끝까지 응원하는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실에 쓰고 온 기린모자를 벗게 하면서 혹시나 마음상해 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미크 선생님. 엉망으로 기어다니는 징코프의 글씨를 보고 "Z선생, 선생께서 종이위에 연필을 움직일 때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군요."라고 야단은 치지만 다른 선생님과 달리 웃으며 그 말을 해 주는 얄로비치 선생님.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일도 "천번 축하해"라고 말하는 엄마. 자신때문에 운동회에서 져서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과 함께 가스만 많이 낭비하면서 드라이브를 해주는 아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징코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던 징코프의 마음과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손을 내밀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분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리라.
남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 징코프. 글쎄....아마도 나는 징코프를 책 속 주인공으로 만난 터라 "남과는 약간 다른" 아이라고 여길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징코프가 우리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실제 다니는 아들 친구였다면, 아니 실제로 내 아들이었다면 징코프를 그저 '남과 약간 다를 뿐이지....'라고 여길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는 없다. 아니...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읽기전 나였다면 분명 나도 그 아이를 약간 모자라는 아이로 여겼겠지... 하지만 책의 첫머리에 "우리는 그 아이와 함께 자란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대로 나 역시 징코프가 자라는 동안 내 마음이 함께 자랐음을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행동을 놓고 천 번 축하해 주기보다 잘잘못을 따지며 야단치는 엄마였던 나. 그런 내가 징코프와 미크선생님, 얄로비치 선생님, 그리고 징코프의 부모를 만나고 나서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깨닫게 되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