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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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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전에 대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제약이 있을 때 편지는 친교 및 정서 표현에 적절한 소통 수단이다.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 백지에 마음을 눌러 전하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는 것은 스마트 폰의 문자와 인터넷 메신저에 밀려 손 편지를 받아 본 기억이 아득할 정도다. 낯선 공간을 여행할 때면 그곳의 풍광이 그려진 엽서에 근황을 적어 보낸 것이 전부였던 데 반해 고인이 된 두 분의 편지는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순정함으로 아동 문학을 지켜왔던 거장의 편지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품과 출판 관련한 사연을 전하며 서로의 건필을 기원하고 건강한 삶을 소망하는 글로 갈무리되었다.

 

    두 작가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이면서 물질적인 재화를 축적하느라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피폐해진 영혼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일련의 활동은 유연한 아동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초석으로 자리했다. 40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실천하며 쉬운 우리말로 아동 문학을 이끌어온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지금도 책상 위에 자리하여 적절한 어휘를 선택할 때 살펴보고 있다. 보잘것없는 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양분으로 기능하는 강아지 똥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감내하며 불가항력적인 일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못 먹어 생긴 결핵까지 앓게 되어 20대부터 시달리게 된 만성질환은 권 작가를 고통의 심연 속으로 끌었다. 1973년 경북 안동을 거쳐 일직으로 그를 찾아간 이 선생과의 편지 왕래는 오랜 친구의 사귐처럼 이어졌다. 열두 살을 뛰어넘는 문우의 사귐을 이으며 서로의 표정과 안색을 살피며 따사로운 말을 전하는 편지의 구절은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배려하는 삶이 배어 있었다. 두 선생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문학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며 평론가와 동화작가로 자신만의 가치를 세워가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직 교회의 종지기로 살면서 필요 이상을 취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여기며 가난한 삶을 선택하여 살면서도 글을 읽고 표현하는 일에 정밀함을 다하는 권 선생은 질병의 고통 속에 괴로워하면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건강을 잃고 육신의 병을 앓는 사람이 정신적인 병까지 앓으며 소멸되어 가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이 선생의 건강을 기원하는 대목은 지병 속에 갇혀 지내는 권 작가의 아픔이 전해졌다. 튜브를 끼우고 소변을 봐야 했던 고통까지 이 작가에게 진솔하게 전하며 약물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숙명적 고리를 끊어내려는 정신적인 노력은 추위를 견디며 글을 써 내려가는 지난한 활동에서도 드러났다. 문인들과 교류하며 출판사에 권 선생의 작품 출간을 의뢰하느라 신경을 모으는 이 선생은 결핵 치료에 필요한 약값을 대며 서로를 지지해주었다.

 

   배움의 끈이 짧아 글 한 편을 창작할 때도 늘 사전을 찾아 적절한 어휘 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권 선생의 모습에서는 정밀함을 추구하는 소신파를 연상케 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야 말 것인데 바보 같이 애를 태우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권 선생의 믿음은 이 선생의 한량없는 은혜를 떠올리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결집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없게 될까 두려워하는 권 선생은 한 인간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불온한 역사를 규명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몽실 언니의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과 희생 속에서도 넉넉한 사랑을 펴는 헌신적인 인간애가 그 예이다. 질병의 고통이 없었다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 토로하는 권 선생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지지하는 이 선생은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평생을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다 간 권 선생이지만 그의 작품은 인류에 대한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 질병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고 했던 어머니 말을 떠올리며 감내하였다. 이 선생은 세상이 어수선하고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 맹렬한 분노를 느낄 때에도 힘껏 살아 긍정의 힘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고 일상에 묶여 움직일 수 없을 때의 아쉬움을 드러내며 얼굴 마주보고 대화할 날을 기다렸다. 만날 수 없을 때는 서로의 근황과 더불어 작품에 대한 의견을 넣어 창작 활동에 관심을 불어넣는 편지를 부치며 서로의 길을 잇는 다리로 서로에게 건네는 따듯한 위로로 두터운 정을 확인케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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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 말하면서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에

찜찝해하는 경우가 있어 사고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합니다.

에어컨에 선풍기로 열기를 식히며 사느라 땀 흘리며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는 환경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공간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어컨을 트는 게 능사가 아님을 알고 섭리대로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연이어 에세이 신간 평가단으로 활동하며  신간 도서를 살피어

읽고 싶은 작품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들으며 평가단 선정을 기다리고

두 권을 책을 읽고 표현하는 시간은 미처 깨닫지 못한 세계를 살피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쌓이는 책이 늘어날수록 앎의 영역은 확장되고 일깨움은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 최고의 글은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이다.

근육이 굳어가는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실천이 눈물겨웠기 때문입니다.

회복탄력성으로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을 반성케 합니다.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2) 우리가 사랑한 소설을

3)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4) 금요일엔 돌아오렴

5) 다정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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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독해져라 - 현실에 흔들리는 남녀관계를 위한 김진애 박사의 사랑 훈련법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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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문화적 맥락과 성장해 온 환경이 다른 이들이 운명처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한 곳에 안착하여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음은 결혼 생활을 지속해 온 부부들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은 처한 상황과 환경에 의해 달라지기 마련인데 현실로 들어오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일일진대 머릿속으로 그리는 결혼 생활은 환상 속에서나 가능함을 깨달을 때가 더 많다. 24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산 부부지만 여전히 다른 행성에서 온 이방인처럼 여겨질 때가 더 많은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마음이 머리를 따라주지 않아 오늘도 마찰을 일으키고 말았다. 서로 다르지만 공동의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어 평행선을 긋고 살아갈 때가 있는지도 모른다.

 

    정에 끌리고 모질지 못하여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며 살 때마다 지인들은 바보같이 산다고 지청구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연민의 감정이 앞서 남들이 꺼려하는 버거운 일을 자청해 행하면서도 이게 뭣 하는 짓인지 모른다고 푸념할 때도 있지만 관성대로 움직이며 지낸다. 어떻게 사랑하면 독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저자의 생각을 되짚어 본다. 다름을 인정하고 커리어를 쌓는 일을 도우며 공조하는 부부는 학부 시절에 만나 5년 연애한 뒤 결혼하여 지금까지 마찰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로 지내고 있음을 밝혔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생활하며 부부가 함께 텃밭을 가꾸며 생명력 있는 삶을 영위하고 시장을 보는 공통의 취미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현실에서 헤쳐가야할 일들과 병행해 사랑의 대상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기에 반복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명사 사랑을 실천하는 동사 사랑하기는 자신의 사랑을 객관화하는 습관의 훈련으로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 마음의 병을 깊게 하는 생지옥을 벗어날 가능성은 높다. 지친 마음을 달래며 서로를 구원해 줄 마음이 설 때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은 결혼 생활은 통념적인 인간관계까지 포용하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은 남녀를 부부로 묶어 복잡해지는 관계망 속에 파생하는 여러 일들을 해결하며 살아갈 운명 공동체로 간주되어 자유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일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이에 저자는 결혼한 부부가 제도의 틀에 기대지 않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를 지속하길 바라며 남녀관계는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을 나누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유하는 관계로 보았다. 부부 사이의 공허함이 자리하지 않도록 방어하는 길 중 하나가 남녀 관계로 협력과 지지 속에 지속되는 부부의 모습을 강조하였다.

 

   함께 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도 여전히 상대를 잘 모르겠다고 여길 때가 있다. 자기애를 바탕으로 한 이기심이 발동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매달리며 불가능한 일을 이뤄낼 것처럼 비장하게 말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기를 바라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본은 다르기에 의견 일치는 쉽지 않았고 변하지 않는 바닥 선을 혁신할 수 없기에 이를 그 사람의 성향으로 수용하며 나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남편의 험담을 하다가도 이 또한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올 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며 유머감각을 동원해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유연하게 살아갈 힘도 연륜과 경험으로 얻을 수 있었다. 쓸 돈과 벌 돈에 대한 개념을 바로 한 뒤 경제 파트너로서 같이하는 프로젝트를 고안하여 살아갈 때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로 동반 성장하는 부부가 자신의 커리어를 갖춘 남녀 관계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세월이 깊어도 위기는 여러 형태로 올 수 있는 결혼 생활이다. 라이프 사이클과 결부된 위기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허무의식이 자리하여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울 수 없을 때 일상은 이지러진다. 생이별을 최소화하며 살아가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스킨십과 지혜로운 언행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이어갈 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단기간에 끝이 날 프로젝트가 아니라 길게 가는 공통 사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밋밋한 일상에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을진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경청하고 내면의 울림에 공명할 때 인간적인 신뢰를 쌓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관계를 구축해갈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눈치를 보고 눈치를 주는 관계로 눈치 채는 훈련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하였다.

 

   스물 셋인 딸이 어떤 상대를 만나 결혼할지 궁금해 하면서도 능력을 갖춘 직장 여성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면 굳이 자유를 누리기에 제약이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권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결혼하고 난 뒤 출산과 육아, 집안일 건사하느라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젊은이들을 대할 때마다 경제활동을 함께 하면서 삼중고를 숙명처럼 안고 사는 여자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한다. 예나 지금이나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은 힘겨루기에서 남성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여성이 겪는 고통은 커 보인다. 경제적 비용을 함께 마련하는 동반자로 자녀 양육에 동참하는 남성의 모습이 보편화되어 함께 일하고 쉬는 남녀 관계로 자리하길 바라며 딸이 결혼할 상대는 일가견을 갖추고 지혜롭게 처신하는 남성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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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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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한 뒤 오래지 않아 편견은 일상 속 다양한 생각을 담은 통찰로 비춰졌다. 중앙지에 기고하던 글들 중 추려 뽑은 단상들 속에 융해된 편견은 양심에 걸맞은 소리를 내는 용기로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집약되었다.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 2부 선량한 물음, 3부 바느질 소리, 4부 다정한 편견이라는 소제목 아래 실린 A4한 페이지 분량의 글은 쉽게 읽히지만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역사의 발전은 퇴조하여 극우 보수 세력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에 진보적인 언행으로 사회적 제약을 받을 수도 있는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설정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세상을 바르게 살피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무너져야 할 것들이 여전히 버티고 서있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때도 있지만 억압에 맞서 저항해 나갈 때 불복종의 힘은 발휘될 것이다. 진리라고 여기며 살았던 가치들이 산산이 부서져 명맥만 유지된 채 이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을 직면할 때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외치며 거리로 몰려들었던 독재 정권을 복원한 듯한 시대로 회귀한 것 같아 음울해진다. 감상적인 울분을 토로하며 소시민적 삶을 탈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비애를 안으로 삭이며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벽촌에서 나고 자란 유년 시절의 소소한 기억들을 융해하여 서술한 대목에서는 동시대를 살아온 옹색한 살림살이가 떠올라 서로를 연민하며 다독거리는 행색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내리 사랑의 진수를 보이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을 줄 알았던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O자로 굳어진 다리로 어정쩡하게 걷는 노모의 모습을 연상케 하여 처연해진다. 살갑지 않은 태도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모녀 지간이라 손을 마주 잡고 걸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성년 이전의 과도기라 불릴 만한 청소년기부터 도회로 나가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며 지내는 사이 강퍅한 서울에서의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엄연히 존재하였던 모양이다

 

   “왜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살 이유를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며 눈을 내리깔고 앉은 고2 아들의 힘없는 소리에 흠씬 놀라 생명체로 태어나 스러질 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할 당위성을 지닌 존엄한 개체임을 강조해 보지만 아들은 시큰둥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이 뿜어내는 냉소는 곳곳에서 묻어났다. 헛된 욕망을 좇다 절망 속에 죽어가는 일보다는 스스로 삶의 가치를 일깨우며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절실한 요즘이다. 파킨슨병을 앓는 구순의 소설가가 형형한 눈빛으로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적절히 타협하고 안일하게 지내온 것은 반추하는 시간은 순연한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난한 자들 곁에 머물면서 의술을 베풀다 떠난 고 장기려 박사가 남긴 유품은 행동하는 실천가로 우리들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삶이란 그처럼 낯선 사람과 풍경 속으로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이 아니던가.’ (112)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계속하면서 돌연한 일들로 쉽지 않은 생활을 잇다가도 또 다른 변수로 그럭저럭 살아온 삶이 일상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와 자아가 서로 조응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역사를 새기며 살아간다. 다음 생을 약속하며 현재에 회한을 남기기보다는 지금 행할 일을 실천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긴요함을 알아차리며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마중물을 붓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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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친 슬하에 올망졸망 깃들어 사는 친구네를 부러워하며 지냈던 아동기가 떠오른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메워야 했다. 편중됨 없이 균형 있는 생활이 유지되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또 다른 이의 희생과 베풂 아래 빈자리를 채우며 안간힘을 쓸 때 일상적 삶은 영위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 신하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신기정 어머니는 의탁된 미성년자를 돌보는 일로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여겼고, 졸지에 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동생과 데면데면하게 지내기 일쑤였다. 가면을 쓰고 각지 처한 환경과 상황에 걸맞은 역할 수행으로 무탈하게 지내는 삶을 잇던 중 돌연한 사고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날 때부터 특별한 부와 권력을 쥐고 태어난 원도준이 도난 사고의 중심에 선 이유 중 하나가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소리치는 주인아줌마를 향한 복수심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기정은 아연실색하면서도 그동안의 교직 생활을 반추하였다. 피교육자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그들의 소리를 차단하고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순응 잘하는 학생들로 길들여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위선적인 행동을 성찰하였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그녀의 죽음이 배태하는 슬픔이나 그리움 대신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으로 어떤 사연이 죽음으로 치닫게 하였는지 알아내야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동생이 남기고 간 통화 내역서에 수차례 찍힌 발신인 번호를 발견하고는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에 지나지 않는 다단계 수업에 걸려든 게 포착되었다. 연락의 실마리를 찾아 다단계 물꼬를 트고 는 서로에게 덫을 놓아 먹이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종국에는 인간관계까지 파괴시켜버리는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표면화하였다.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윤세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딸에게 사랑을 베푼 아버지를 빼앗아간 원흉을 찾아 응징하려는 복수심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함께 지냈던 아버지의 부재는 골방에서 갇혀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도하며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나서야했다. 채무 이행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자리하는 사채업자의 주구인 이수호의 행방을 추적하며 지니고 있던 장도리로 그의 머리를 가격하여 죽이려는 윤세오의 살의는 보라색 트렌치코트를볼 때마다 굳어졌다. 세상 곳곳이 돈에 저당 잡힌 채 연명하는 전당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그녀 역시 괴물로 변해갔다. 조미연이 윤세오를 끌어들이고 자신은 빠져나간 자리에 세오는 부이를 끌어들였고 부이는 다시 일면식이 있을 뿐인 하정을 끌어들여 하부로 삼았던 일은 악의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한 채 기생하는 삶을 배격하지 못하는 폭력의 그림자를 응시하게 된다. 윤세오를 만났지만 그녀의 말을 밀어낼 정도로 또렷한 의식으로 자신을 무장하며 지내온 부이는 의과대학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프랜차이즈 점포 개발 방식 중 보편적인 점선면의 법칙처럼 한 점에서 시작해 일정한 선을 만들고 일정한 선이 모여 면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체계적인 유통물류 방식과는 차별화된 다단계 사업의 허구성이 한 개인의 파멸로 입증되었다. 자본을 독식하려는 소수의 비대화는 이루어질지언정 대사수의 약자는 피해의 골이 깊어져 회생 불능의 상태에 귀착되는 현실은 익사채로 발견된 신하정과 사채업자의 전횡과 폭력에 짓눌려 목숨을 잃은 윤세오의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악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횡포 아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에 극단적인 선택으로라도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일에 희망의 빛을 투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이어진 생명체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망자와의 함께 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에 시큰둥하게 반응한 것부터 그곳으로 간다는 소리에 어디 외출 중이라 핑계 대며 편의성을 찾은 일 등이 회한으로 남는다.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위로와 사소한 웃음이 인간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지만 윤세오가 상상하는 세계는 인간적인 풍경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양심을 짓누르는 무게에 휘청거리면서도 노모에게 착한 아들이었던 이수호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은 또 다른 채무자의 거대한 분노 앞에 무력한 존재의 삶을 일단락 짓게 하였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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