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친 슬하에 올망졸망 깃들어 사는 친구네를 부러워하며 지냈던 아동기가 떠오른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를 채우며 생업에 뛰어든 어머니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력으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메워야 했다. 편중됨 없이 균형 있는 생활이 유지되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부재는 또 다른 이의 희생과 베풂 아래 빈자리를 채우며 안간힘을 쓸 때 일상적 삶은 영위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살다 보면 우리네 삶이 최적의 선택과 결정보다는 불가항력적인 결정대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왕왕 벌어진다. 작은 개체인 점들이 모여 하나의 연결 고리인 선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영향 아래 놓여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복동생 신하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신기정 어머니는 의탁된 미성년자를 돌보는 일로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여겼고, 졸지에 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동생과 데면데면하게 지내기 일쑤였다. 가면을 쓰고 각지 처한 환경과 상황에 걸맞은 역할 수행으로 무탈하게 지내는 삶을 잇던 중 돌연한 사고는 점점이 떨어져 있던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결박하여 인간의 품위를 짓밟고 만다. 날 때부터 특별한 부와 권력을 쥐고 태어난 원도준이 도난 사고의 중심에 선 이유 중 하나가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소리치는 주인아줌마를 향한 복수심의 발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기정은 아연실색하면서도 그동안의 교직 생활을 반추하였다. 피교육자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보다 그들의 소리를 차단하고 편의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순응 잘하는 학생들로 길들여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위선적인 행동을 성찰하였다.

 

   고립된 섬처럼 찍힌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던 동생의 죽음은 그녀의 죽음이 배태하는 슬픔이나 그리움 대신 생전에 잘해주지 못하였다는 부채감으로 어떤 사연이 죽음으로 치닫게 하였는지 알아내야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던 중 동생이 남기고 간 통화 내역서에 수차례 찍힌 발신인 번호를 발견하고는 죽음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단기간에 목돈을 만질 수 있다고 유혹하여 하부로 삼는 구조망으로 연결된 먹이사슬에 지나지 않는 다단계 수업에 걸려든 게 포착되었다. 연락의 실마리를 찾아 다단계 물꼬를 트고 는 서로에게 덫을 놓아 먹이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종국에는 인간관계까지 파괴시켜버리는 다단계 수법의 그물망은 약육강식의 비정함을 표면화하였다. 독립된 개체의 점조직들이 상부와 하부로 나뉘면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서로를 잠식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가스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윤세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딸에게 사랑을 베푼 아버지를 빼앗아간 원흉을 찾아 응징하려는 복수심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함께 지냈던 아버지의 부재는 골방에서 갇혀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도하며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나서야했다. 채무 이행 독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자리하는 사채업자의 주구인 이수호의 행방을 추적하며 지니고 있던 장도리로 그의 머리를 가격하여 죽이려는 윤세오의 살의는 보라색 트렌치코트를볼 때마다 굳어졌다. 세상 곳곳이 돈에 저당 잡힌 채 연명하는 전당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그녀 역시 괴물로 변해갔다. 조미연이 윤세오를 끌어들이고 자신은 빠져나간 자리에 세오는 부이를 끌어들였고 부이는 다시 일면식이 있을 뿐인 하정을 끌어들여 하부로 삼았던 일은 악의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한 채 기생하는 삶을 배격하지 못하는 폭력의 그림자를 응시하게 된다. 윤세오를 만났지만 그녀의 말을 밀어낼 정도로 또렷한 의식으로 자신을 무장하며 지내온 부이는 의과대학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프랜차이즈 점포 개발 방식 중 보편적인 점선면의 법칙처럼 한 점에서 시작해 일정한 선을 만들고 일정한 선이 모여 면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체계적인 유통물류 방식과는 차별화된 다단계 사업의 허구성이 한 개인의 파멸로 입증되었다. 자본을 독식하려는 소수의 비대화는 이루어질지언정 대사수의 약자는 피해의 골이 깊어져 회생 불능의 상태에 귀착되는 현실은 익사채로 발견된 신하정과 사채업자의 전횡과 폭력에 짓눌려 목숨을 잃은 윤세오의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악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횡포 아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기에 극단적인 선택으로라도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세상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일에 희망의 빛을 투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연결고리로 이어진 생명체의 부음을 들을 때마다 망자와의 함께 했던 인연을 떠올리며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에 시큰둥하게 반응한 것부터 그곳으로 간다는 소리에 어디 외출 중이라 핑계 대며 편의성을 찾은 일 등이 회한으로 남는다.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위로와 사소한 웃음이 인간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지만 윤세오가 상상하는 세계는 인간적인 풍경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양심을 짓누르는 무게에 휘청거리면서도 노모에게 착한 아들이었던 이수호의 선혈이 낭자한 죽음은 또 다른 채무자의 거대한 분노 앞에 무력한 존재의 삶을 일단락 짓게 하였다. 가학적인 폭력으로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자유롭게 숨 쉬고 뜻한 대로 움직이며 살아갈 힘까지 앗아가 버린 악인들의 행동은 거대한 자본의 힘에 굴종하여 기생하는 삶을 잇는 선들의 법칙이었지만 이들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유대하고 연대하여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가족이 함께 밥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마저 유기한 채 지내온 시간들을 복원할 수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고 응대하는 가운데 소원해진 관계는 서서히 회복될 것이다. 신기정이 신하정의 죽음의 궤적을 좇아 외로운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생을 연민하면서 진정한 애도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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