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운 게 뭔데?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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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 **떨어진다.’

   는 말을 서슴지 않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오빠가 밥상이라도 들고 부엌으로 가서 주섬주섬 그릇을 개수대에 담을라치면 역정을 내며 여자기 몇이나 되는데 장손에게 부엌일을 시키느냐고 항변했다. 세 살 아래인 맏딸인 나는 속으로 그럼 남자는 밥 먹고 밥상머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게 옳다는 말인지 푸념하며 세제를 풀어 그릇을 씻는다. 때로는 설거지할 때 큰소리가 난다고 야단을 맞을 때도 있어 적잖이 억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산업화가 한창인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이 밀려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특권 의식은 곳곳에 자리한다.

 

   모름지기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분석적 지능이 뛰어나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야하며,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말을 따라야 한다는 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저자는 경험을 바탕으로 남자다움’ ‘남성성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양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상호 발전하는 관계 형성을 지향한다. 남성성이란 규칙이나 규범이 아니라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해져 내려온 메시지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 더 나아가서는 남성적아거나 여성적이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나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받을 때 가치 있음을 확언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몸이 느끼고 행동하려는 대로 움직이며 반응할 때 인간성 회복은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남성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인정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무모한 일이라도 용기 있게 도전할 때 남자는 남자다워진다고 말한다. 남자라면 자신의 감정과 필요와는 거리가 멀어도 용감하게 덤빌 줄 알아야 한다는 관습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굳어졌다. 최초의 사회라고 불리는 가정에서부터 남자다운 역할 수행을 위한 지침을 따르며 보여 주기 두려웠던 부분을 감추며 가식적으로 행동하여 왔던 지난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열기 위하여 실천하였다. 여자애 같다는 말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용기 있게 의사를 표현하는 훈련을 해나갈 때 고착화된 남성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2014년 신어로 선정한 뇌색남은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러스하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고 정의 내렸다. 남자는 똑똑해야 한다는 말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능력자 이면에는 분석적 지능 못지않게 실용적 지능, 감성 지능 등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물음을 던진다. 모든 측면에서 뛰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부족함을 채워가는 과정 속에 자존감을 키워나가면 더 좋을 것이다. 배우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시청자의 구미에 맞는 연기로 이름을 알려온 과거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점이 눈에 띈다. 육체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할 줄 알고,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뛰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등을 실천하며 남성성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후천적으로 만든 성정체성인 남자다움이나 여지다움의 젠더적 성향의 궤도를 수정하여 신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남녀 서로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봐야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다. 생활에 편한 혜택을 누리는 특권이 몸에 배여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혜택만 누린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타인이 상처를 입었다면 이를 인정하는 걸음부터 뗄 수 있어야 한다. 이중 잣대를 대며 사느라 놓친 부분은 회한으로 남는다. 좋은 일만 있는 인생이 아니기에 슬픔과 과절, 기쁨과 성취 등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우리 삶은 더 풍성해진다. 보이즈 클럽은 없고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 감정을 나누는 남자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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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홍콩 여행지도 - 수만 시간 노력해 지도로 만든 홍콩 여행 가이드 총정리, 2024-2025 개정판 에이든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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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 떠난 도시,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고 싶은 공간, 코로나19 이후 떠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려는 몸짓은 여행서적을 읽게 한다. 용기가 없어 혼자 떠나기는 두렵고 여행 상품대로 움직이는 여행의 단점을 피하고 싶을 때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으로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다. 인도 북부를 여행하기 전 론리 플래닛의 인도 100배 즐기기 시리즈를 사서 읽었고, 책을 분권하여 필요한 지역의 정보가 담긴 부분을 배낭에 넣고 짐을 꾸리던 시간이 떠오른다.


   에이든의 홍콩 여행지도 나에게는 생소하지만 자유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가벼우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세밀하게 담은 지도라니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니 취향대로 움직이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돕는 홍콩 여행 지도이다. 홍콩 전체 여행 지도를 모두로 구룡반도, 란타우섬,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랜드, 침사추이, 셩완&센트럴 등을 지도에 조밀하게 담았다. 간편 지도에서부터 구체적인 명소까지 곁들인 상세 지도가 함께 실려 있어 큰 그림을 그린 뒤 찾고 싶은 곳을 찾는 데에도 유익한 에이든 홍콩 지도이다.

 

   원하는 품목을 쇼핑하기에 적합한 홍콩답게 지역의 명품 매장까지 담아 사려다 미뤘던 상품을 찾기에 그만인 지도이다. 체크 리스트에서는 홍콩에 갔다면 해야 할 목록을 담아 체크하며 메모하는 여행이 가능한 에이든 트래블 노트는 아날로그 감성을 톺아보게 한다. 나른해지기 십상인 오후 세 시에는 애프터눈티 세트를 가까이 두고 휴식을 취하며 홍콩의 야경을 즐길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하여 차 한 잔과 함께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


   한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이 선풍적으로 읽히던 때가 있었다. 지구본을 책상 위에 두고 세계 여행을 꿈꾸었다는 여행자의 말은 가슴 뛸 때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벼운 지도 한 장을 들고 홍콩으로 향하는 마음을 끌어당긴다. 먼저, 피크트램을 타고 센트럴에서 피크 타워까지 올라 마천루를 보는 경이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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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채 겉치레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반문할 때가 있다. 값진 내용보다는 형식에 편중되어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마음은 가지 않지만 조직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을 중시하며 살아온 시간이 회한으로 남는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미라 싫어도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고는 후회할 때가 왕왕 있었다. 타인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손해를 볼 때도 있지만 이해와 아량으로 넘기다 이제부터는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연고주의와 유교 중심의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폐쇄적 구조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기능과 역할을 중시한다. 결혼한 배우자에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시가에 의무를 강요하다 이혼 당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효자도 결혼하면 효자 흉내를 내는 남편 때문에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기 힘들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셀프 효도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하는 이들은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함께 사는 이에게 고통을 전가한다.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갈라선다는 말 이면에 감춰진 비밀은 우리라는 대명사가 빠져 있음을 드러낸다.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은 일인칭인 나를 쓰기보다는 3인칭인 우리를 많이 사용한다. 고마움을 바탕으로 한 우리는 과거현재미래에도 함께하는 뜻을 더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우리라는 소속감을 안고 서로를 배려하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운데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산할 때, 진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실존적 외상을 입었더라도 의미 있는 타인과 긍정적인 경험을 누적할수록, 내 삶의 부정적인 요소는 줄어들어 회복탄력성을 더한다.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만 만나 살 수 있으면 별 무리가 없을 수 있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결이 달라 정신의 공명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부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식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며 효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 역시 20대에 혼자 된 어머니가 오누이를 다른 데 보내지 않고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제 여든인 어머니가 점점 노쇠하여 지팡이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황이 안쓰러워 연민의 감정을 앞세웠던 적이 많았는데 자신을 옭아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인간관계의 주고받음이 균형을 잃으면 어느 순간 주는 쪽부터 지치게 된다. 직장에서 소모임을 하는 경우 입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땡전 한 푼 안 쓰면서 남이 사는 모임에는 꼭 참석하여 음식을 먹고는 이내 자리를 뜬다. 고마움을 모르고 은혜를 입고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과는 더 이상 인연을 지속할 필요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봐주고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주고받음의 균형은 잡혀야 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감정노동자로 고객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때가 많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상식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칠 생각이 없는 자아 비동조적인 태도를 지닌다. 사람 뜯어 고쳐 쓰는 것 아니지 않느냐는 민원인의 말을 듣고 생각한다. 타인을 뜯어 고쳐 쓰지 못하면 자신을 고쳐 쓰면 될 것을 대부분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 대로 생각하며 지낸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인식의 틀인 세계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당당히 드러내 타인과 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을 지지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서사를 쓰기 위하여 나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때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명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양가감정을 들어 누군가가 자신을 조정하려 든다면 과감하게 관계를 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중시하며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에 집중하여 성취의 기쁨을 더할 필요가 있다. 주변인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진짜 관계에 집중할 때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공명하는 시간을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잘해줘도당신곁에남지않는다#전미경#가제본#진짜관계#서로의성장을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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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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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은 스트레스로 피폐해진 자신을 달래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오를 때가 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걸음을 떼며 지난 일들을 되짚어 요동치는 마음을 조율하는 데 산행은 요긴하였다. 체력이 딸려 험준한 산은 오르기 힘들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야산을 즐겨 찾는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산을 오르는 시간은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며 내면의 울림에 공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회 지붕 청소 일로 생활하는 랜드는 삶의 확고한 목표 없이 일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랜드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일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행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는 오가다 만난 여성들과 교류하며 가볍게 정을 나누면서 감정을 소진하였다. 함께 지내던 여성의 아들인 열두 살 레인과 함께 등반하던 길, 과거에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 캐벗을 만나면서 랜드는 가슴속에 사려 둔 등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암벽을 오르던 기억이 머리를 밀고 나설 때면 해머로 그 기억을 두드려 잠재웠지만 캐벗을 만난 후 알프스의 샤모니로 향한다. 샤모니는 알프스 산맥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산 근거지로 쉽게 허락하지 않는 미봉을 찾는 산악인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프랑스 샤모니를 찾은 랜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혼자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내부에서 생명력은 넘쳐흘렀고 존재감 있는 주체로 변모하였다. 등반에 관심 있는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 등반을 시도하여 성공해 그의 명성은 높아가고 있었다. 랜드에게 등반은 스포츠 그 이상의 매력을 지닌 도전으로 거대한 암벽 등정으로 그를 이끌었다. 수단과 목적을 불문하고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캐벗은 무리한 등반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야심찬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거대한 암벽 아이거에서 샤모니로 향해 다시금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의 등반에 성공하면서 랜드의 명성은 높아갔다. 한편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에서 무리한 등반을 강행하다 스물세 살의 젊은 산악인 브레이의 추락사를 목격하였다. 브레이는 암벽 등반 중 로프가 끊어져 아이거에서 900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함께 등정하던 동료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랜드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카트린을 사랑하지만 그녀를 떠나기로 한다. 가정을 꾸려 담당하고 살아야 할 책무에서 자유롭고 싶은 랜드는 얽매이지 않는 생활자로 남고 싶었다. 한편 카트린은 임신 16주의 몸으로 이전의 남자친구에게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평범한 외양과 편안함을 좋아했던 그녀는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비강의 품을 찾아 랜드를 떠났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은 랜드는 카트린과 헤어져 홀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아이거에서 존 브레이가 죽었을 때, 랜드는 생전의 브레이는 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했다고 토로하였다. 랜드는 정신과 육체를 집중하여 어렵게 내딛는 한 걸음이 정상으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여 산봉우리를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 정상과 가까운 숙소에서 머물며 기상을 살펴 등반하였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봉우리들을 홀로 오르며 위험한 등반의 고통에 경의를 표하였다. 거세할 수 없는 랜드의 남성성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를 올랐다.


   랜드는 드뤼에서 사투를 벌이던 이탈리아인 조난자 두 명을 구하면서 산악계의 영웅적인 인물로 대두된다. 그는 세간에 자신이 얼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명성을 얻어 의인 등반가로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을 은근히 즐겼다. 그는 이후에도 그랑드조라스의 북벽인 워커 등정에 도전하였지만 빙벽에 달라붙어 암벽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의지는 고갈되었고 급기야는 얼어붙은 암벽에서 퇴각하였다. 준비가 덜 되어 용기가 부족했다고 말한 랜드는 샤모니를 떠나 미국으로 가서 쉬고 싶어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랜드는 생물학적 아버지로서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어 카트렌을 찾았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가 고향으로 가기 전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 명확히 알 길은 없지만 아들 얼굴은 보고 떠나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 프랑스를 떠나면 언제 다시 샤모니를 찾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아들을 눈에 담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아들 장을 본 뒤 고향을 찾은 그는 암벽 등반 중 추락하여 척추손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지내는 캐벗을 찾았다. 10년 동안은 등반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등반에 매달렸던 시간을 회고하였다. 비범한 일에 도전하며 성취를 얻어 자존감을 키워가는 일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정의 매력은 야성이 지닌 마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고산을 목숨 걸고 오르는 산악인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등반길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비를 부담하면서 변화무쌍한 기상 악천후를 견디며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노정이 펼쳐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반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요소가 곳곳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프를 묶고 빙벽에 피켈을 꽂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베레스트 도전의 화신인 조지 말로리는

  “왜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 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라고 답하였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이 내게로 올 수 없으니 자신이 산으로 간다고 하였다. 쉽지 않은 등정에 도전하며 오롯이 집중하며 빙벽을 오르는 순간 수수로 위험을 선택하였지만 고초를 겪으며 정상을 확인함으로써 맛볼 수 있는 인생의 희열이 있기 때문에 고독한 등정의 길에 나선다. 폭풍우에 휩싸여 한 치 앞을 헤아리기 힘들고, 번개가 봉우리를 때리던 공포를 견뎌야 하는 극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용기 내어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고독한 선택은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화두처럼 보여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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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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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혼한 기개로 동물 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해 벽두에 맞닥뜨린 혈육의 죽음은 안타까움과 분노, 서글픔과 무상감으로 가슴 한복판에 처연한 블랙홀을 만들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서너 달이 지나서야 산 자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안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을 담으려는 기자의 걸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봉합하여 미답의 길을 걷게 합니다. 단순한 전쟁의 신이 아니라 법과 정의를 지키는 신 티르에서 유래한 화요일 기자는 스승을 찾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어른을 만났습니다.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를 숙명처럼 여기며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었던 선생님은 각혈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자는 생사를 건네주는 스승 곁에서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을 조명하며 불가피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배움을 전합니다. 선생님은 3월이면 자신은 이 땅에 없을 것이라며 죽음을 숙고하면서 죽음과 놀이하듯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선생님은 죽음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5단계를 거치며 생존에 대한 갈증을 돋우며 여러 방법을 찾곤 합니다. 항암 치료를 거치며 이를 능가할 대증치료법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있지만 선생님은 여느 암환자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꿀벌이 스스로 꿀을 만들기 위해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는 것처럼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짐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감내하여할 것들을 수용하는 과정은 겸허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음을 일깨웁니다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하였던 디오게네스의 단호함은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던지 성찰케 합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지 않았으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에 놓인 딸의 불행을 목도하며 딸의 소망을 들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도 생명력이 용솟음쳤던 선생님은 방황하여 길을 잃게 되더라도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다 채우면 허무해지는 물독보다는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비워내는 지적 보헤미안으로 한곳에 정주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숨을 편안하게 쉬기도 힘들의 생과 죽음이 교차되는 때에도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죽음과 함께 생활하다 영면하기를 바랐습니다. 항암 치료를 마다한 채로 기력을 다해 글을 쓰고 강연하며 죽음까지 기록할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죽음은 동물원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기분이라는 말로고통을 수반하는 공포임을 자각하면서도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선생님은 인생을 갈무리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고 회고하는 선생님의 한마디는 겸허하게 삶과 죽음을 수용하는 통찰적인 시선을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생존 에너지를 뒤덮어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글을 쓰고 말로 전하면서 찰나를 살더라도 자기만의 문양을 수놓으며 살았습니다. 큰딸이 먼저 갔던 그 길을 따라 간 선생님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온 것처럼 즐거운 인생이었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는 시간에도 죽음을 기억하며 유일한 존재로 자리매김한  자신이 타자를 있는 그대로 있게 함으로 더불어 발전하는 생활을 꿈꿔왔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선생님은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금 선택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죽음으로 내몰린 낭떠러지에서 인문학적 통찰을 일깨운 선생님 덕분에 시야를 확장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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