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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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한 삶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 여기며 지냈던 나날들이 안타까움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죽음만큼이나 생명이 다한 원인도 각양각색이지만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학생들의 죽음은 잘해 주지 못한 점을 떠올리게 한다. 교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며 공부하느라 미뤄뒀던 이야기를 나누며 동급생들과 추억을 쌓는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 억울한 죽음을 초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관계자의 직무 유기로 맺힌 꽃봉오리를 채 피우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뜬 열여덟 살의 영혼들이 목 놓아 통곡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온 물리적 일상이 쌓여간다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늘어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별다른 야망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티나는 무용수로 일하다 의상 담당자를 거쳐 안무가로 활동하다 쇼를 기획하는 제작자로 역량을 발휘해 갔다. 한편, 그녀의 남편 마이클은 블랙잭 딜러로 일하며 변화를 추구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관성대로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삶의 태도를 보이며 티나가 그의 트로피 아내로 자리하기를 바랐다. 쇼를 기획하는 제작자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티나의 열정을 달가워하지 않던 마이클과의 감정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이어져 둘은 결별했다.

 

   남편과 헤어진 해의 겨울철 혹한기에 스카우트 캠프를 떠난 대원들이 탄 버스 전복 사고로 탑승자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캠프를 떠나는 아들을 배웅한 지 오래지 않아 열두 살 대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신의 훼손이 심각하여 아들의 주검을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장례 담당자의 말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관을 덮은 채 아들을 떠나보냈다. 준비 없는 이별로 아들을 만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가 머무르던 공간까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대형 매직 쇼 공동 연출자로 자신의 잠재된 에너지와 새 역량을 발견하며 막바지 준비에 골몰한 채쇼 비즈니스 성공을 바랐다. 막이 오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불안감은 커졌지만 오롯이 정신을 집중하며 중심을 잡아갔다.

 

   ‘죽지 않았어!’

   명징한 글씨와 함께 대니의 방에서 시작된 괴이한 소리는 좁은 복도 벽을 타고 계속 메아리쳐댔다. 벽에 걸린 액자가 떨어지고 방문 손잡이는 얼어붙는 등 난방 온도와 다른 양상을 띠는 기이한 흔적은 눈에 띌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나의 꿈속에서 대니는 생매장당하고 있었고, 잡지 표지 모델로 나온 남자가 꿈에 괴물로 나타나는 등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악몽은 계속되었다.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 크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고 여기면서도 죽지 않은 아들이 어딘가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하며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발굴해서라도 유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진행했던 작품의 성공적인 개최로 티나는 잠재적인 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인생의 전기를 마련할 마법이 펼쳐질 듯하였다. 매직 쇼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티나는 운명처럼 끌리는 엘리엣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죽음의 게임을 예상치 못한 엘리엇과 티나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와 영결한 아픔의 심연이 자리하였다. 췌장암으로 아내와 사별한 엘리엇은 급작스레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반복된 소리는 어둠 속에 갇힌 아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티나는 신뢰를 쌓으며 교유하던 엘리엇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종내에는 의혹이 많은 아들의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한 일에 의기투합하여 나섰다. 티나는 아들의 시신을 발굴한 뒤 최고 병리학자의 재조사를 통해 아들의 사인을 발표하는 순서를 밟아 의혹을 풀고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악몽에서도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라고 말하는 티나에게 엘리엇은 기밀 유지를 위한 케네벡의 상관들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예기치 못한 폭행을 당한 엘리엇, 가스실 폭발로 집을 잃은 티나는 생존 위협이 따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비밀경찰 조직에서 네바다 지국장으로 일하는 알렉산더 일당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은 죽지 않은 아들이 보내는 구조 요청에 부응함으로써 드러났다. 극비리에 진행되는 생화학 연구원들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대니의 수척해진 몰골을 찾기까지 티나와 엘리엇은 한몸으로 나섰다.

 

   자기 보존 본능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강력한 요구라는 사실을 입증하듯 연구실에서 만든 질병을 앓고도 생존한 유일한 생명체 대니와의 극적인 만남은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어머니의 질긴 노력의 산물이었다. 연구원들은 바이러스가 아이를 죽이기 전까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였다. 대니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될 때마다 더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를 물리친 아들이 종국에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 것이라는 말을 들은 엘리엇은 분노했다. 중국인들은 오로지 인간만을 괴롭히는 우한-400을 이용해 특정 도시나 나라를 궤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우한-400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모조리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생존한 대니였다.

 

   우한-400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반복한 대니는 극도로 쇠약해지면서도 초현실적인 에너지로 어머니에게 신호를 보냈고, 어머니는 아들의 부름에 답하였다. 아들의 생존 여부를 알기 위해 거대한 힘이 가로막고 있는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냉철한 판단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엘리엇이 티나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이러스 감염을 반복한 아들을 극적으로 구출한 어머니는 자식의 건강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대형 쇼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것처럼 티나는 마법 같은 손길로 대니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방책을 강구하며 엘리엇과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갈 것이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상대가 절실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기꺼이 힘을 보태는 일은 신뢰를 깊게 하는 일에 선결과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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