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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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포시, 에르네스트 보, 치치올리나, 스텔라 테넌트, 모나 헤이더, 레니 리펜슈탈, 미셸 우엘벡, 로버트 저메키스, 백스 마틴 등 한 번쯤 들어봤거나 왠지 알 것 같지만 익숙치 않은 스물여섯 명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 시절을 풍미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사람들, 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의 숨어 있는 진정한 창조자이거나 조력자들, 단 한번의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이들 중에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변혁을 일으킨 인물도 있고, 인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알콜중독자, 인종차별주의자, 나치 프로파간다 참여자가 있는가 하면 진보와 보수, 선과 악, 성소수자 및 성차별, 장애, 우울증과 자살, 젠더, 세상을 투영하는 픽션이 갖는 자유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통한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포르노 배우 국회의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역사의 한 부분을 담은 창작물의 정치적 의도가 불순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성범죄가 동반한 예술의 역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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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인물은 2000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매각된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스 창업주인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다. '보살피는 자본주의'를 경영 원칙으로 내세운 이 회사는 다양한 분야의 자선 재단에 기부하고 상품 개발에도 이 원칙을 지켜왔으며, 매각 당시 매각 가격을 낮추면서까지 '창업 정신을 지킨다'는 계약 조건을 고집했다. 사실 편의점을 애용하지도 않고, 아는 아이스크림이라고는 체리주빌레와 투게더가 전부인 나로서는 벤앤제리스를 처음 들어본다. 어느 편의점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장 내일 편의점을 들러볼 요량이다. 


모나 헤이더 편을 읽으면서 몇 년 전의 젠더 관련한 책을 읽은 독서모임이 기억났다. 이때 히잡에 대한 얘기가 오갔는데, 대체로 히잡이 여성 억압의 도구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으나 한 회원이 선택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다른 의견을 냈다. 이에 히잡, 특히 니캅이나 부르카를 선택할 여성이 얼마나 될 것이며 설령 선택이라고 해도 이것을 벗고 일상 생활을 한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과연 자발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냐며 강경하게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회원이 있었다. 문화적 측면과 젠더적 측면.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냐에 따라 얘기의 방향이 달라지지만, 두 사람의 팽팽한 주장은 그날 결말이 나지 않았다.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관습에 따라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학습(세뇌)되었다는 전제가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은 그들 본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전제 되어야 외부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이렇게 얘기했다가 너무 안일한 대응이라고 한 소리 듣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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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각 인물마다 대여섯 장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서 해당 인물에 대해 굉장히 심도있는 접근을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저자는 가볍게 던지듯 얘기하고 있지만 독자는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안고 생각하게 된다(묘한 재주이자 능력이다).  


저자의 생각이나 의견에 다른 입장을 가진 독자도 있을 것이다. 반대 급부도 이 책의 매력이다. 기대 이상의 재미진 독서였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깨달음 하나. 디터 람스의 'Less, but better'는 디자인 원칙을 넘어서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에 적용해도 가치 있는 원칙이 될 듯 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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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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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인의 시풍과 천경자 화가의 화풍. 언뜻 색깔이 전혀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1958년 판본의 표지를 보니 왜 이 콜라보가 조화로운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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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소설
앙투안 로랭 지음, 김정은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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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렌이 책임자로 있는 출판사 원고 검토부에 도착한 170쪽짜리 원고 한 편. 관련 직원들의 만장일치로 출판이 결정되고, 출판 후 대대적인 성공으로 공쿠르상 후보 지명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정작 원고를 보낸 작가 카미유 데장크르가 신분을 밝히기를 꺼려한다. 나이는 고사하고 심지어 성별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공쿠르상 심사위원회에서 작가의 신원 확인을 요구하지만, 카미유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비올렌이 갖고 있는 카미유의 정보라고는 이메일 주소가 전부였다. 그리고 얼마 후 비올렌을 찾아온 경찰 소피 경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1부를 읽다보면 내용이 장황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내용을 일일이 언급할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3부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실 소설이 2부에 접어들면 실체 없는 작가가 누구인지, 살인범이 누구인지, 그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해지는데(독자는 그렇게 여기게 된다), 작가는 여봐란 듯이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독자가 궁금해지는 지점이 카미유 데장크르가 누구냐라는 관점에서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질렀으며 굳이 이를 대중에게 알리려 했던 의도는 무엇이냐는 관점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소설이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독자의 시선은 다시 '누구' 로 옮겨진다. 이렇듯 소설은 독자들이 유추할 수 있게끔 스토리를 풀어놓다가 마치 독자를 약올리듯 결정적인 순간에 흐름의 각도를 틀어버린다. 꽤 흥미로운 진행 방식이기는 한데 세 번째 범죄의 해결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차라리 네 번째 예상 피해자 죽음의 방식이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사이 은근히 문학상과 상업성의 유착과 관례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더라는.  


얼핏 성공을 위해서라면 성상납 쯤이야 예사로 여기는 한 여성의 출세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소설은 예상 외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르파주 부부가 엘렌의 사건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들 가족은 행복했을까? 가해자의 부모들이 자식의 범죄를 부정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까? 반면 비올렌의 인생에서 샤를과 에두아르(의 사랑)가 없었다면 그녀는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을까.  


가끔, 책을 덮고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우리 삶에 필요한 건 오직 사랑 뿐이라는 듯 여전히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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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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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 글이 과연 실화인지 허구인지 종잡을 수 없게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프랑켄슈타인> <피그말리온> 등 여타 몇몇의 문헌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을 고딕소설 양식으로 직조한 이 작품은 독자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괴물처럼 묘사되는 고드윈 백스터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생학적 의도에 따라 태어났으나 콜린 경의 예상과는 다르게 실패작에 가깝다. 백스터는 자신의 창조물인 벨라에게서 본인을 투영시킨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공포스러운 목소리,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불균형적인 신체 등 아버지의 실험체이자 실패작인 자신을, 친절하고 인기 많고 사랑받는 치료사가 되고 싶었던 소망을, 벨라를 통해 완성하려고 했다는 짐작이 든다.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출산을 막을 방법은 없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열악한 정신병원이나 감화원, 혹은 감옥으로 보내진다. 매년 젊은 여성 수백 명이 가난과 부당한 사회의 편견 때문에 스스로 물속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기형과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영아들을 태어나자마자 질식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서술과 함께 백스터는 영국을 가리켜 세계의 공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소설 사이사이에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 오염과 도시의 비위생적인 상황, 빈부격차에 대해 언급한다. 


백스터는 여성을 사회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배제하고 진출을 막아 오히려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지적하고, 더불어 과학기술이 사용된 분야는 대체로 개인적 혹은 국가적 차원에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음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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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가장 핵심 인물인 벨라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와 경험을 통해 다방면으로 문학, 사회학, 과학, 철학, 종교, 정치, 이념, 경제학 등 실질적인 지식과 지혜, 처세와 수완을 배운다.  


백스터와 벨라는, 전능을 향한 명예에 대한 탐욕, 급변하는 산업화의 폐해, 불합리한 결혼제도,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위치와 한계 등 사회 문제가 빚어낸 산물로 의미되는 게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폐해의 산물로 느껴지는 벨라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삐뚤어진 종교와 신념 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성인 백스터가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가정 내 남성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가 이 괴기한 소설의 주인공 벨라를 통해 근대 이후의 인류사 전반을 훑으면서 정작 전하고픈 말은 생명 존중에 따른 평등과 자유, 인간의 존엄성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을 괴물이라 치부하고 악마로 규정했다면, 고드윈 백스터는 벨라를 괴물같은 자신을 대신할 구원의 통로로 여겨 모든 헌신을 다했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듯 하지만, 소설 내에서 그들의 창조물이 욕망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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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백스터와 맥캔들리스를 대척점에 놓으며 두 사람이 서로의 주장에 반대 급부를 이어감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바를 찾아간다. 그런데 스토리는 예상과 전혀 다른 흐름이다. 19세기 고딕소설처럼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독자를 여러 분야의 인류사로 끌어들여 현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이 점이 무척 시선을 끈다.  


재미있는 점은 세 남녀의 관계다. 백스터가 벨라에게 가르침을 주는 멘토의 역할을 한다면, 맥캔들리스는 그녀의 정서를 보듬어 주는데, 마치 세 사람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관계로 읽혀진다. 분명한 건 두 남자 모두 벨라를 그들의 방식으로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마무리는 훈훈하지 못하다. 책의 마지막에 빅토리아 맥캔들리스가 직접 서술한 그녀의 삶과 소설의 진실에 대한 일기를 생략하지 말고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그 남자, 그가 벨라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진짜 이유, 그리고 놀라운 반전.  


이 소설의 엔딩이 슬픈 로맨스, 그리고 희대의 OOO 일 될 줄이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의 '가여운 것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 독자는 알 수 있다. 



끝으로 벨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무언가 고마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과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관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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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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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어느 날의 나>를 읽고 '이런 글도 참 좋구나'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서정적인 혹은 각자 다른 결의 삶을 살아가는 일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내레이션 하는 듯한 이 책의 단편 소설들은 잔잔한 물결이 퍼지듯 담담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실패한 자신과 화해할 용기.
가벼운 안부 문자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따뜻한 날.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의 색깔.
나의 의도와 선택이 아닌 나를 제외한 외부자들이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씌운 고정관념.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있는가?
어느 집단, 주변 사람, 세태에 의하지 않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조건없는 무자비한 따뜻함.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의 안온함을 바람하며 기다리는 마음.
스스로 알든 모르든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의 발걸음. 


자신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그래서 행복과 죄책감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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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낙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기다림, 부서진 자아, 천진한 선의, 혼란스러웠던 한때의 청춘, 치유와 회복, 다시는 볼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 


이주란 작가의 소설들에는 빌런이 없다. 지독한 적의나 악의를 가졌다거나 악다구니에 받쳐 저주와 독설을 퍼붓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선량한 사람들만 있는 건 더더구나 아니다. 때론 얄밉고 집요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고, 세상에 없을 착한 사람임에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한 켠으로 제 나름 몫의 아픔과 선의와 악의를 가진다. 


작가는 그들의 히스토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사연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는 어느새 등장인물들에 깊이 이입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체로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이며 동료이며 소득생산자들이고, 그들이 겪었을 실패와 상실과 사랑과 우정 등의 과정을 그 감정의 무게를 떠나 한 번쯤은 지나쳐온 경험이 있기 때문일 터다.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실린 소설 여덟 편의 전후 사정 설명없이 서술하는 방식은 자칫하면 독자가 읽기에 소위 불친절하다고 느껴지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주란 작가의 글들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이 함축적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격한 감정선이나 특정할만한 절정이 없어도 전혀 평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지나치게 사회적 문제를 의식하거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글들이라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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