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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SF형식으로 사랑, 언어, 고독, 입시, 현실의 모순, 인공 신체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홉 개의 중.단편이 실린 소설집인데, 각 작품마다 들었던 짧은 생각들이다.
[수요곡선의 수호자]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가진 것도 모자라 해탈에 이르는 로봇 마사로. 수요곡선을 상승시키기 위한 로봇을 개발한다는 상상이 기발하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이미 과잉생산 및 공급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동화시스템으로 일자리는 현저히 줄어들어가고, 저가 소비가 늘면서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게 일상화 되어 세계 곳곳에 쓰레기산은 높아간다. 더하여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까지 가능한 연구 개발을 서두르는데, 도대체 인간의 영역을 얼마나 좁히려 하는 건지. 앞으로 인간은 숨만 쉬고 살 작정인가.
[치카타파의 열망으로]
소설은 22세기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코비드19 시국을 기점으로 급변한 사회상을 허구적으로 보여주면서 대감염병 시대에 폭발한 문제들이 과연 감염병만이 원인이었을지를 고찰한다.
언어와 문자에서 격음이 사라지고 예사소리로만 이루어진 언어 체계로 바뀐 미래 시대. 거센소리가 사라진 언어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듯 하지만 시대의 정서를 발화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느껴진다. 문득 조만간 한글의 문자 체계에서 거센 소리, 된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넘어 모음이 아예 소멸하는 건 아닌지 갑자기 걱정이 된다.
[미래과거시제]
작가의 우려(?)대로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다만 언어와 묶여 더 아름다운 사랑 소설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냥 나 혼자의 생각으로 이 소설 앞에 배치된 <치카타파의 열망으로>의 대학원생이 강은신은 아니었을까라는 재미진 상상을 해봤다.
[접히는 신들]
종이접기 천재 은경의 말을 듣다보면 영화 <트랜스포머>가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에서 스탠드형 로봇으로 젼환하는 그들의 전환 방식이 종이접기와 뭣이 다른가 싶고. 그런데 이 소설에서 2,3차원의 물질을 접는 것뿐 아니라 공간을 접어 활용한다는 발상, 그리고 무기, 심지어 사람까지 접어서 수송할 수 있으며, 물건의 용도 자체가 새롭게 형성된다는 상상은 얼마나 기발한지. 물론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공간이 접어지는 시대에는 정말 영혼도 접어서 수송이 가능할까.
[인류의 대변자]
하필 소설의 그 지점에서 카모마일차를 입에 물고 있었다니.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입 안에 있던 물을 뿜어내고 사레가 들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한참을 웃었다는. 아무렴, 그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지. 외계인도 예외없이, 그날 하루 만큼은 우주와 지구의 평화도 일단 보류. 뒤에 실린 작가 노트를 보면 나는 <인류 대변자>를 작가가 의도했던 바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 같다.
[임시 조종사]
판소리 버전 SF소설. 판소리 장단에 맞춰진 서술 방식이나 근대 이전의 옛말을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배경 역시 옛 시대부터 미래까지 아우르고 있어 머릿속에서 소설이 영화 필름처럼 그려지며 읽는 맛이 있다.
나는 생뚱맞게 영화 <대호>가 생각났다. 그곳에 로봇만 드문드문 보인다면, 하임의 출정 장면은 이와같지 않을까..., 더하여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한 시대였구나, 라는 생각. 그리고 비장한 와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유머!
[홈, 어웨이]
일 년에 몇 번쯤 야구 직관을 하는 나는 가끔 3루 베이스 관중석에서 관람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아직까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원정팀 응원. 올해는 꼭 한 번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어우... 생각만 해도 너무 외로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덧, 이 소설은 야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절반의 존재]
인간은 이미 실제로 크고 작게 인공물에 의지하고 있다. 작게는 보청기부터 골절, 인공 장기 등 치료와 미용을 위해 대체제를 사용한다. 심지어 동물 장기 이식까지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을 소재로 삼아 미래를 그린 여러 소설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기준 혹은 경계에 대한 얘기는 적지 않다. 이 단편소설 외에도 다른 책들을 읽다가 든 생각은 인종, 성, 성소수성 들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는 데에 미쳤다. 지하임이 인간이냐 아니냐가 왜 중요할까. 누군가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본인을 제외한 타인들에게 왜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할까.
다와도 요코의 소설들에서 보이는 인물들처럼 스스로 만들어가는 정체성이야말로 큰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알람이 울리면]
J 여사가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오래 사는 게 아무리 좋아도 한 시절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혼자 남아 살고 싶지는 않다고.
시간이라는 영역에서 빠져나와 혼자서 '멈춤' 상태로 있다는 것, 과연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아픔도 박제될 수 있을까. 문득 예브게니 보돌라스킨의 소설 <비행사>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50년만에 냉동보존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살아있음에 행복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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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참 묘해진다. 분명 실린 소설들이 독립적인 작품들인데, 마치 시간여행을 하듯 차원을 옮겨가며 작품이 실린 순서대로 이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단정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나만 그런지도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연작 아닌 연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편 소설집이지만 실린 순서대로 읽기를 권하며, 완독을 하면 표지의 그림이 아주 잘 납득이 된다. 매 작품마다 <작가 노트>가 실려있는데, 미니 북토크같은 느낌이 있어 이런 부분도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무거울 수 있는 소재와 주제들인데, 읽는데 너무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