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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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 글이 과연 실화인지 허구인지 종잡을 수 없게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프랑켄슈타인> <피그말리온> 등 여타 몇몇의 문헌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을 고딕소설 양식으로 직조한 이 작품은 독자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괴물처럼 묘사되는 고드윈 백스터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생학적 의도에 따라 태어났으나 콜린 경의 예상과는 다르게 실패작에 가깝다. 백스터는 자신의 창조물인 벨라에게서 본인을 투영시킨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공포스러운 목소리,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불균형적인 신체 등 아버지의 실험체이자 실패작인 자신을, 친절하고 인기 많고 사랑받는 치료사가 되고 싶었던 소망을, 벨라를 통해 완성하려고 했다는 짐작이 든다.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출산을 막을 방법은 없고, 이를 거부할 시에는 열악한 정신병원이나 감화원, 혹은 감옥으로 보내진다. 매년 젊은 여성 수백 명이 가난과 부당한 사회의 편견 때문에 스스로 물속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기형과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영아들을 태어나자마자 질식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서술과 함께 백스터는 영국을 가리켜 세계의 공장이라고 표현하는데, 소설 사이사이에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 오염과 도시의 비위생적인 상황, 빈부격차에 대해 언급한다. 


백스터는 여성을 사회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배제하고 진출을 막아 오히려 많은 것을 잃고 있음을 지적하고, 더불어 과학기술이 사용된 분야는 대체로 개인적 혹은 국가적 차원에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음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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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가장 핵심 인물인 벨라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와 경험을 통해 다방면으로 문학, 사회학, 과학, 철학, 종교, 정치, 이념, 경제학 등 실질적인 지식과 지혜, 처세와 수완을 배운다.  


백스터와 벨라는, 전능을 향한 명예에 대한 탐욕, 급변하는 산업화의 폐해, 불합리한 결혼제도,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위치와 한계 등 사회 문제가 빚어낸 산물로 의미되는 게 아닌지 생각을 해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폐해의 산물로 느껴지는 벨라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삐뚤어진 종교와 신념 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성인 백스터가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가정 내 남성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가 이 괴기한 소설의 주인공 벨라를 통해 근대 이후의 인류사 전반을 훑으면서 정작 전하고픈 말은 생명 존중에 따른 평등과 자유, 인간의 존엄성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창조물을 괴물이라 치부하고 악마로 규정했다면, 고드윈 백스터는 벨라를 괴물같은 자신을 대신할 구원의 통로로 여겨 모든 헌신을 다했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듯 하지만, 소설 내에서 그들의 창조물이 욕망의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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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백스터와 맥캔들리스를 대척점에 놓으며 두 사람이 서로의 주장에 반대 급부를 이어감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바를 찾아간다. 그런데 스토리는 예상과 전혀 다른 흐름이다. 19세기 고딕소설처럼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독자를 여러 분야의 인류사로 끌어들여 현실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이 점이 무척 시선을 끈다.  


재미있는 점은 세 남녀의 관계다. 백스터가 벨라에게 가르침을 주는 멘토의 역할을 한다면, 맥캔들리스는 그녀의 정서를 보듬어 주는데, 마치 세 사람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관계로 읽혀진다. 분명한 건 두 남자 모두 벨라를 그들의 방식으로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마무리는 훈훈하지 못하다. 책의 마지막에 빅토리아 맥캔들리스가 직접 서술한 그녀의 삶과 소설의 진실에 대한 일기를 생략하지 말고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그 남자, 그가 벨라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진짜 이유, 그리고 놀라운 반전.  


이 소설의 엔딩이 슬픈 로맨스, 그리고 희대의 OOO 일 될 줄이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제목의 '가여운 것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 독자는 알 수 있다. 



끝으로 벨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무언가 고마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과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관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싶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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