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치 공산주의자 아들, 바르셀로나 출신의 아나키스트의 사위, 팔레스타인의 민족 시인의 친구, 이스라엘 비유대인 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파리의 대학에서 부계 혈통 유대계 소녀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친 교수, 이것이 저자의 정체성이다. 


저자가 이스라엘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 책은 성서를 비롯해 그동안 유대인들이 민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저술했던 저작들을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고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통해, 심지어 생물학까지 끌어와 그들이 어떻게 단일 민족의 정체성과 시오니즘을 체계화하고 이데올로기로 정착시켰는지 서술한다. 또한 다양한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객관적 근거를 들어 만들어진 신화와 역사의 오류를 짚어낸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채우게 된 까닭은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유랑민족은 팔레스타인을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땅이라고 여기며 그곳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성서적으로 부흥을 이룰 것이기에 이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들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계보는 기억의 구성자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층층이 쌓아올린 것이고, 그 기억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유대 역사학과들의 고집스런 배타성 때문에 유대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냉철하게 조사할 새로운 역사학이 나올 길은 막혀있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에게 유대인이란 '이천 년 전에 추방된 민족의 후손'이다. 


​민족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발전인 것은 틀림없지만 순수하게 자발적인 발전은 아니다. 집단 충성심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강화하고, 단일하고 확고한 실체로 거듭나기 위해 통합적인 집단 기억을 만들어 냈다. 민족은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다.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고 패권을 잡은 것이 근대 들어와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족주의는 근대에 만들어진 기초적 권력 관계를 뛰어넘는 지적.정서적 현상이다. 서구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시작된 다양한 역사 과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집단화 방식을 아우르고 다양한 요구와 기대에 해답을 주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었다. 


ㅡ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두고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자 원래부터 예루살렘 외부에 거주하던 유대교 신자들마저 유배를 신의 징벌로 보는 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념이 세계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유대인이 예루살렘 추방자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만이 유대교인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인 즉 유랑민으로 보는 한 구세주가 부활하여 은총을 내렸다는 그리스도교적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유배란 종교적 카타르시스의 한 형태였고, 유배란 장소적 의미를 넘어 아직 구원이 오지 않았다는 상황적 의미를 갖는 관념이었다. 


여기에서 오는 모순은, 예루살렘에서 평생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목적으로 집단이주를 감행하는 것은 이 종교의 관념(유배, 유랑)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며, 그래서 구원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대교인들에게 유배란 현존하는 물리적 세계 전체를 규정짓는 상황이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 국경이 닫히고 나치의 참혹한 학살이 시작되자 그제서야 영국 위임통치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유대인들은 그 긴 세월동안 고향땅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적도 없으며, 자발적으로 돌아간 일도 없었다고.  


ㅡ 


그레츠, 두브노프, 배런 등 유대인 및 시오니스트 역사가들도 민중 전체의 유배나 강제추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강제추방을 성전파괴와 연결짓지 않았다. 강제추방 없는 유배의 시작점은 아랍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정복한 7세기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기나긴 유배의 시간은 실제로는 더 짧았다는 것. 그런데 디누어가 스스로 역사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아 역사에 대한 지나친 왜곡이 불러올 이후 역사의 모순된 문제점과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민족 소유권 주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유배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고대 유대교는 번성했던 일류 종교였고,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범대륙적 종교였음에도 시오니스트들이 채택한 정체성은 '유랑 민족'이었다. 역사를 철저하게 재구성한 시오니스트들은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역사를 숨기고 조작하는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리고 (유대인들이 읽으면 돌 날아올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시작과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면 과연 홀로코스트가 팔레스타인 식민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는가? 물론 홀로코스트는 명백히 처벌받아야 할 잔악한 범죄다. 그러나 이것이 피해자였던 그들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왜 굳이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를 대상으로 오류와 과오를 짚어가며 이토록 길고 냉철한 글을 써내려 간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비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고 억합하는 자국이 미래에 인류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세계 각국에 있는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연대를 표명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큰 관심이 없으며, 유대인이지만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서 일상적 차별과 소외와 억압을 겪고 있지 않기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지 않는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유대인 가정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고 있고, 이스라엘과의 연대는 오직 60대 이상에서만 안정적이고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데이터가 '디아스포라' 로 대변되는 힘이 영원히 이스라엘로 유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또한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긴밀한 공존 관계를 엮어나가기 위한 해법을 제안하고 당부한다. 이것이 저자가 자국민들과 정부에게 전하는 '애국'의 방식일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유대인(교)의 역사의 변화, 그리고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동유럽 등에서의 유대인들의 기원과 현재는 사라져버린 개종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한다. 유대인이지만 마치 외부자의 시선으로 쓴 이런 문헌은 쉽게 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근본주의 정체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민족 서사에 대한 집착하는 이들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썼던 이스라엘의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총, 균, 쇠>가 전방위적으로 문명 이동을 탐구했다면, <바다 인류> 그야말로 바다의 관점에서 인류사를 통찰한다. 근대 서구인이 마치 바다를 그들이 최초로 도달한 듯 기술하면서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 했지만, 지구상 대부분의 바다는 먼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고대 말기에 지중해 세계는 강한 군사적 성향을 보인다. 지중해 지역과 서아시아 시역에서 최초로 해양 제국 단계까지 발전한 나라는 페르시아다. 페르시아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마케도니아에 이르는 해안 지역 폴리스들을 지배하면서 그리스와 직접 마주한다. 이때 페니키아로부터 수용한 삼단갤리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저자는 앞서 갤리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는데 이 부분도 무척 흥미롭다. 오래 전에 거북선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헌들은 당시의 기술을 가늠해 볼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현재 1부까지 읽은 상황인데, 어렵게 쓰이지 않아서 읽기에 부드럽고 무엇보다 재밌다. 선사시대를 시작해서 고대로 이어지는 역사 흐름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지 못했던 민족들의 해양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읽어볼 수 있다. 1부는 악티움 해전으로 마무리되는데, 고대 역사는 아무리 읽어도 재미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스트가 추구한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도처에 퍼진 거주지에서 유달리 이질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독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이었다. 요스트의 말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지만, 또한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형제들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했지만, 그들의 새로운 고향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과 함께 기도했지만, 땅을 나눈 형제들과 함께 전쟁터에 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의 고향땽을 위해서도 피를 흘렸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같은 기원을 공유하지만, 여러 유대인 공동체들이 단일한 몸체에서 갈라져 나온 일부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유대인 공동체들은 지역마다 문화와 생활양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고, 오로지 신앙에서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하게 해주는 범유대적 정치 통합체는 없었다. 따라서 근대 세계에서 다른 공동체 및 문화 집단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있었음에도 자기들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같은 지역 주민임에도 통혼을 금지하는 등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집단을 국가는 보호하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고립을 자초함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반유대주의 조류가 커지면서 드는 생각은, 그동안 이와 관련한 수많은 문학 작품을 짚어보면 유대인(혹은 유대교)에 대한 편견과 폄하로 인해 그들이 더 스스로를 위대한 민족이라고 위무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원칙으로 인해 비유대인으로부터 비호감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럴듯한 답은 그 두 가지가 맞물려다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몇 년간 지식인 엘리트들은 성서-민족-이스라엘 땅이라는 신성한 삼각구도를 구축하는 작업을 도왔고, 성서는 '다시 태어난'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무원들은 압력을 받거나 자진해서, 주민들은 기성 엘리트들을 모방하려는 마음에서 이름을 히브리 이름으로 개명했다. 교사, 작가, 평론가, 시인 등 각계의 지식층이 유대 역사를 자신들에 맞춰 해석하는 작업에 나서는 등 이념화된 현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한 20세기 초 시온 정착붐이 일고 히브리어 학교들이 문을 열면서 성서는 민족 교과서가 되었고, 별도의 학과목으로 지정해 교육되었다. 그럼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형성시켜줌과 동시에 그 땅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함에 있어 먼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후 모든 교육 방안들은 국가 교육제도 전 분야에서 표준이 되었다. (국정교과서의 폐해가 여기에서 새삼 확인하게 될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걸쳐 민족주의가 일어나자, 근대의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정체성이 된 이 이념이 '민중'이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민족의 장구함과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역사에서 살아남은 언어.종교 등의 문화적 요소들이 민족을 건설하는 자재로 이용되면서 민족의 역사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가공되어졌다. 19세기 민족 문화들은 '민중'과 '인종'을 자주 묶었고, 많은 이들은 두 단어로 서로 겹치거나 상화 보완해주는 말들로 생각했다. 근대성의 물결이 겉으로는 통합을 추구하고 있어도, 그 밑에서는 여전히 지속적이 하위 정체성이 끊임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단일한 집단적 기원은 하위 정체성의 출몰에 대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과의 통혼을 걸러내는 효과적인 필터로도 기능했다.  
 

20세기 전반기 이후 인종 개념이 반박되자 많은 역사가와 학자들은 '종족' 개념을 선발하여 먼 과거와의 긴밀한 유대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 용어는 문화적 배경과 혈연적 유대, 언어적 과거와 생물학적 기원을 한데 섞어주었다. 즉 하나의 역사적 가공물에 불과한 것을, 자연 현상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실(fact)과 결부시켜 주었다는 것.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저자들이 이 개념을 매우 안이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종족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가진 인간 집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종족'에 마치 근본적인 시원적 측면이라도 있는 양 혈연적 특성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종족'은 고대적 기원을 가진 실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인종'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 결국 '민족'이라는 개념은 만들어진, 심지어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부여된 의미라는 것인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집단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음이 전달된다. '종족' 혹은 '민족'의 개념조차 자본주의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를 극대화시킨 장본인이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대로 알고 싶었던 역사였기에 하나라도 놓쳐 잘못 이해할까 우려되 꼼꼼하게 읽느라고 완독까지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일단 표지의 지도는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지도의 색깔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현대에 이토록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이 가능한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영국과 근대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을 민족적.정치적 권리를 지닌 한 민족으로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중동의 다른 모든 위임통치령은 독립을 획득했는데, 왜 팔레스타인만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그리고 밸푸어와 영국은 왜 영국의 유대인 유입을 막는 데에 팔레스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팔레스타인은 다른 독립국가들처럼 뚜렷한 실체와 중앙집권적 체제, 그리고 진정한 동맹자가 없었으며, 외견상 확고한 민족전선도 유지하지 못했다. 영국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엘리트 파벌을 형성해 이간질하고, 일부를 통치 체제 안에 흡수했다. 밸푸어는 4대 열강이 시온주의에 동조함을 밝히며, 시온주의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오래된 땅에 거주하는 70만 아랍인의 욕망과 편견보다 시온주의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현재의 요구와 미래의 희망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견해를 존중할 필요가 없으며, 그 오래된 땅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70만 아랍인을 '일시적인 거주자'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이 모순적인 논리를 이해할 수 있나?


위임통치국과 국제연맹은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무력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전포고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정성 호소와 대표단 파견, 민중 시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들은 언제든, 언제라도 총을 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안보리 결의안 242호를 보면 유엔은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고 썼는데, 나는 유엔조차도 애초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나라가 없는 난민일 뿐이고, 분쟁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인도주의적인 쟁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인 건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었고 (...)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언을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강대국 사이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무시당했다. 이러한 모욕을 참아낼 민족이 있겠는가? 그들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과 대의를 제기하기 위한 민족운동을 부활시킬 수 밖에 없었을 터다.  



1979년 1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미국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핵심 인물인 아부 하산 살라메를 암살하는데, 이스라엘의 배신감은 미국을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레바논 주재 대사인 존 건서 딘을 암살 시도 표적으로 삼긴 했지만 결국 죽은 사람은 팔레스타인인이다. 민간인을 담보로 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할 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방관한 아랍 정권들에 의해 계속될, 그리고 전쟁 후 참혹한 학살에 대한 책임도 심판도 없는, 비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ㅡ 


개인적으로 결정적이자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오류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원칙 선언>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로 인정했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도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그런데 이 '인정'이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유의미한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거나 국가의 창설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터무니없게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자신들의 고국을 식민화하고 점령하는 국가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온갖 특권을 유지한 채 사실상 땅과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정당화해준 셈이었다. 껍데기 뿐인 이 협상의 오류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안겨다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1995년 협정은 2년 전 오슬로 협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형상이었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땅은 누더기처럼 쪼기졌고, 이스라엘은 60퍼센트가 넘는 지역을 차지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차지한 지역의 아랍인들은 졸지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이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사이에 이스라엘 땅이 있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단절과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자는 자살 폭탄 공격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공격하고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하마스의 서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맹목적 복수 이외에 어떤 성과를 달성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은 이스라엘 사회를 와해시키는 데 치명타가 되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응집력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의식을 각성한 계기가 되었듯,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이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점은 이스라엘은 왜 그토록 불평등에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은 보통 안전의 욕구로 암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응해서 지금까지 여러 세대가 공격적 민족주의라는 반사적 교의를 바탕으로 자라났으며 정밀하게 구축된 식민지 현실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시온주의자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차곡차곡 계획을 쌓아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사냥감(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정해놓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냥꾼의 모습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덫에 걸려든 영락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었고. 결론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명분으로 삼는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식민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은 그들에게 대의적 명분을 안겨준 셈이라는 것이다(로 이해됐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극악스러운 이유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넘어서 다른 식민국과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딛고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몰아냈던 유럽인들도 따지고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다는 원리는 어쩜 이렇게도 찰떡같이 들어맞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테러'다. 테러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국가가 없으니 군대가 없어 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을 비판없이 무조건 비난만한다면, 국가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정규 군대를 이끌고 무방비 상태, 그것도 국가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난민 위치에 있는 수백, 수천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 정당한가.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도, 이스라엘에도, 일본에도, 한국에도,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는 '국민'은 없다. 대의적 명분없이 가족과 함께 먹고 살 만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팔레스타인 전쟁 100년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이다. 저자는 비교적 냉철하게 정황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제3자이자 독자에 불과한 내가 더 감정이 올라와 읽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3국의 국민일 뿐인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테러리즘에 가려 그 이면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협상과 타협, 공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막무가내로 독선적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해방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