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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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트가 추구한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도처에 퍼진 거주지에서 유달리 이질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독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이었다. 요스트의 말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지만, 또한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형제들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했지만, 그들의 새로운 고향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과 함께 기도했지만, 땅을 나눈 형제들과 함께 전쟁터에 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의 고향땽을 위해서도 피를 흘렸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같은 기원을 공유하지만, 여러 유대인 공동체들이 단일한 몸체에서 갈라져 나온 일부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유대인 공동체들은 지역마다 문화와 생활양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고, 오로지 신앙에서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하게 해주는 범유대적 정치 통합체는 없었다. 따라서 근대 세계에서 다른 공동체 및 문화 집단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있었음에도 자기들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같은 지역 주민임에도 통혼을 금지하는 등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집단을 국가는 보호하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고립을 자초함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반유대주의 조류가 커지면서 드는 생각은, 그동안 이와 관련한 수많은 문학 작품을 짚어보면 유대인(혹은 유대교)에 대한 편견과 폄하로 인해 그들이 더 스스로를 위대한 민족이라고 위무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원칙으로 인해 비유대인으로부터 비호감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럴듯한 답은 그 두 가지가 맞물려다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몇 년간 지식인 엘리트들은 성서-민족-이스라엘 땅이라는 신성한 삼각구도를 구축하는 작업을 도왔고, 성서는 '다시 태어난'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무원들은 압력을 받거나 자진해서, 주민들은 기성 엘리트들을 모방하려는 마음에서 이름을 히브리 이름으로 개명했다. 교사, 작가, 평론가, 시인 등 각계의 지식층이 유대 역사를 자신들에 맞춰 해석하는 작업에 나서는 등 이념화된 현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한 20세기 초 시온 정착붐이 일고 히브리어 학교들이 문을 열면서 성서는 민족 교과서가 되었고, 별도의 학과목으로 지정해 교육되었다. 그럼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형성시켜줌과 동시에 그 땅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함에 있어 먼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후 모든 교육 방안들은 국가 교육제도 전 분야에서 표준이 되었다. (국정교과서의 폐해가 여기에서 새삼 확인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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