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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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고 싶었던 역사였기에 하나라도 놓쳐 잘못 이해할까 우려되 꼼꼼하게 읽느라고 완독까지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일단 표지의 지도는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지도의 색깔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현대에 이토록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이 가능한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영국과 근대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을 민족적.정치적 권리를 지닌 한 민족으로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중동의 다른 모든 위임통치령은 독립을 획득했는데, 왜 팔레스타인만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그리고 밸푸어와 영국은 왜 영국의 유대인 유입을 막는 데에 팔레스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팔레스타인은 다른 독립국가들처럼 뚜렷한 실체와 중앙집권적 체제, 그리고 진정한 동맹자가 없었으며, 외견상 확고한 민족전선도 유지하지 못했다. 영국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엘리트 파벌을 형성해 이간질하고, 일부를 통치 체제 안에 흡수했다. 밸푸어는 4대 열강이 시온주의에 동조함을 밝히며, 시온주의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오래된 땅에 거주하는 70만 아랍인의 욕망과 편견보다 시온주의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현재의 요구와 미래의 희망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견해를 존중할 필요가 없으며, 그 오래된 땅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70만 아랍인을 '일시적인 거주자'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이 모순적인 논리를 이해할 수 있나?


위임통치국과 국제연맹은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무력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전포고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정성 호소와 대표단 파견, 민중 시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들은 언제든, 언제라도 총을 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안보리 결의안 242호를 보면 유엔은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고 썼는데, 나는 유엔조차도 애초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나라가 없는 난민일 뿐이고, 분쟁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인도주의적인 쟁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인 건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었고 (...)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언을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강대국 사이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무시당했다. 이러한 모욕을 참아낼 민족이 있겠는가? 그들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과 대의를 제기하기 위한 민족운동을 부활시킬 수 밖에 없었을 터다.  



1979년 1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미국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핵심 인물인 아부 하산 살라메를 암살하는데, 이스라엘의 배신감은 미국을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레바논 주재 대사인 존 건서 딘을 암살 시도 표적으로 삼긴 했지만 결국 죽은 사람은 팔레스타인인이다. 민간인을 담보로 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할 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방관한 아랍 정권들에 의해 계속될, 그리고 전쟁 후 참혹한 학살에 대한 책임도 심판도 없는, 비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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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결정적이자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오류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원칙 선언>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로 인정했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도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그런데 이 '인정'이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유의미한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거나 국가의 창설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터무니없게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자신들의 고국을 식민화하고 점령하는 국가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온갖 특권을 유지한 채 사실상 땅과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정당화해준 셈이었다. 껍데기 뿐인 이 협상의 오류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안겨다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1995년 협정은 2년 전 오슬로 협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형상이었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땅은 누더기처럼 쪼기졌고, 이스라엘은 60퍼센트가 넘는 지역을 차지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차지한 지역의 아랍인들은 졸지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이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사이에 이스라엘 땅이 있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단절과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자는 자살 폭탄 공격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공격하고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하마스의 서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맹목적 복수 이외에 어떤 성과를 달성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은 이스라엘 사회를 와해시키는 데 치명타가 되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응집력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의식을 각성한 계기가 되었듯,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이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점은 이스라엘은 왜 그토록 불평등에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은 보통 안전의 욕구로 암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응해서 지금까지 여러 세대가 공격적 민족주의라는 반사적 교의를 바탕으로 자라났으며 정밀하게 구축된 식민지 현실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시온주의자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차곡차곡 계획을 쌓아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사냥감(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정해놓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냥꾼의 모습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덫에 걸려든 영락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었고. 결론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명분으로 삼는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식민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은 그들에게 대의적 명분을 안겨준 셈이라는 것이다(로 이해됐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극악스러운 이유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넘어서 다른 식민국과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딛고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몰아냈던 유럽인들도 따지고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다는 원리는 어쩜 이렇게도 찰떡같이 들어맞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테러'다. 테러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국가가 없으니 군대가 없어 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을 비판없이 무조건 비난만한다면, 국가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정규 군대를 이끌고 무방비 상태, 그것도 국가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난민 위치에 있는 수백, 수천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 정당한가.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도, 이스라엘에도, 일본에도, 한국에도,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는 '국민'은 없다. 대의적 명분없이 가족과 함께 먹고 살 만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팔레스타인 전쟁 100년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이다. 저자는 비교적 냉철하게 정황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제3자이자 독자에 불과한 내가 더 감정이 올라와 읽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3국의 국민일 뿐인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테러리즘에 가려 그 이면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협상과 타협, 공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막무가내로 독선적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해방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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