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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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 공산주의자 아들, 바르셀로나 출신의 아나키스트의 사위, 팔레스타인의 민족 시인의 친구, 이스라엘 비유대인 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파리의 대학에서 부계 혈통 유대계 소녀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친 교수, 이것이 저자의 정체성이다. 


저자가 이스라엘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이 책은 성서를 비롯해 그동안 유대인들이 민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저술했던 저작들을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고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통해, 심지어 생물학까지 끌어와 그들이 어떻게 단일 민족의 정체성과 시오니즘을 체계화하고 이데올로기로 정착시켰는지 서술한다. 또한 다양한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객관적 근거를 들어 만들어진 신화와 역사의 오류를 짚어낸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채우게 된 까닭은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유랑민족은 팔레스타인을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땅이라고 여기며 그곳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고 성서적으로 부흥을 이룰 것이기에 이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들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계보는 기억의 구성자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층층이 쌓아올린 것이고, 그 기억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유대 역사학과들의 고집스런 배타성 때문에 유대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냉철하게 조사할 새로운 역사학이 나올 길은 막혀있다. 이스라엘 역사가들에게 유대인이란 '이천 년 전에 추방된 민족의 후손'이다. 


​민족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발전인 것은 틀림없지만 순수하게 자발적인 발전은 아니다. 집단 충성심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강화하고, 단일하고 확고한 실체로 거듭나기 위해 통합적인 집단 기억을 만들어 냈다. 민족은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다.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두고 패권을 잡은 것이 근대 들어와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족주의는 근대에 만들어진 기초적 권력 관계를 뛰어넘는 지적.정서적 현상이다. 서구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시작된 다양한 역사 과정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집단화 방식을 아우르고 다양한 요구와 기대에 해답을 주는 이데올로기이자 정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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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두고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자 원래부터 예루살렘 외부에 거주하던 유대교 신자들마저 유배를 신의 징벌로 보는 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념이 세계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의 존재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유대인이 예루살렘 추방자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만이 유대교인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인 즉 유랑민으로 보는 한 구세주가 부활하여 은총을 내렸다는 그리스도교적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유배란 종교적 카타르시스의 한 형태였고, 유배란 장소적 의미를 넘어 아직 구원이 오지 않았다는 상황적 의미를 갖는 관념이었다. 


여기에서 오는 모순은, 예루살렘에서 평생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목적으로 집단이주를 감행하는 것은 이 종교의 관념(유배, 유랑)에 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며, 그래서 구원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대교인들에게 유배란 현존하는 물리적 세계 전체를 규정짓는 상황이었다. 1920년대에 들어 미국 국경이 닫히고 나치의 참혹한 학살이 시작되자 그제서야 영국 위임통치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유대인들은 그 긴 세월동안 고향땅에서 강제로 추방당한 적도 없으며, 자발적으로 돌아간 일도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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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츠, 두브노프, 배런 등 유대인 및 시오니스트 역사가들도 민중 전체의 유배나 강제추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강제추방을 성전파괴와 연결짓지 않았다. 강제추방 없는 유배의 시작점은 아랍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정복한 7세기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기나긴 유배의 시간은 실제로는 더 짧았다는 것. 그런데 디누어가 스스로 역사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아 역사에 대한 지나친 왜곡이 불러올 이후 역사의 모순된 문제점과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민족 소유권 주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유배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저자는 아랍 국가들이 1947년 유엔의 분할 결의안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이제 막 세워진 유대인 국가에 합동 공격을 개시한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이 자리 잡는 것을 도와준 셈이 되었다면서, 전쟁이 없었더라면 약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가거나 추방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유대 민중'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원칙을 공고화시키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죄책감 없이 거부할 수 있게끔 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저자의 말대로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그 땅에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을 진정한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였을까라는 점이다. 1947년 결의안은 두 국가에 남는 소수자들에게도 반드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였고 유엔 가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하지만, 법적으로 이스라엘 국민일뿐 땅을 몰수 당하고 군정 통치와 가혹한 규제 하에 둔 것을 감안한다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또한 '선택받은 종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시오니스트 정치가들이 아랍인의 개종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결국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지 않았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또다른 '게토'를 팔레스타인에 만들었을려나.  


'유대 민족은 존재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스라엘로의 이주는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떠나는 이들이 더 많다고. 저자는 오늘날 시오니스트 논리의 약점은 이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으며, 미래에 '에트노스'에 입각한 유대인은 인류 전체로부터 고립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의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고대 유대교는 번성했던 일류 종교였고, 유럽과 아시아를 포괄하는 범대륙적 종교였음에도 시오니스트들이 채택한 정체성은 '유랑 민족'이었다. 역사를 철저하게 재구성한 시오니스트들은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역사를 숨기고 조작하는 행위에 자괴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리고 (유대인들이 읽으면 돌 날아올 말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시작과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면 과연 홀로코스트가 팔레스타인 식민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는가? 물론 홀로코스트는 명백히 처벌받아야 할 잔악한 범죄다. 그러나 이것이 피해자였던 그들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왜 굳이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를 대상으로 오류와 과오를 짚어가며 이토록 길고 냉철한 글을 써내려 간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비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분열을 조장하고 억합하는 자국이 미래에 인류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라고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세계 각국에 있는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연대를 표명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큰 관심이 없으며, 유대인이지만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서 일상적 차별과 소외와 억압을 겪고 있지 않기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버리고 이스라엘로 이주해 오지 않는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유대인 가정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고 있고, 이스라엘과의 연대는 오직 60대 이상에서만 안정적이고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데이터가 '디아스포라' 로 대변되는 힘이 영원히 이스라엘로 유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또한 오랜 갈등을 해결하고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긴밀한 공존 관계를 엮어나가기 위한 해법을 제안하고 당부한다. 이것이 저자가 자국민들과 정부에게 전하는 '애국'의 방식일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유대인(교)의 역사의 변화, 그리고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동유럽 등에서의 유대인들의 기원과 현재는 사라져버린 개종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한다. 유대인이지만 마치 외부자의 시선으로 쓴 이런 문헌은 쉽게 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근본주의 정체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민족 서사에 대한 집착하는 이들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썼던 이스라엘의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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