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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N22138
˝내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을 부른겁니다.˝
내가 책(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을 알수있기 때문이다. 반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면에 대한 묘사가 아무래도 제한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뇌를 다루는 내용을 좋아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러한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작가다. 그리고 <그 후>는 서구문물이 막 유입되는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랑과 우정에 관한 소세키의 내면 탐구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그러자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이런 논리에 의해 그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머리는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틀림없이 그렇다고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P.517
이야기는 간단하다. 부유한 집안의 ‘다이스케‘는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그녀 역시 ‘다이스케‘에게 어느정도 마음이 있었는데, 또다른 친구이자 가난한 ‘히라오카‘ 역시 ‘미치요‘에게 마음이 있었고,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에게 ‘미치요‘에게 마음이 있다고 고백하며 그에게 ‘미치요‘와 연결시켜달라고 부탁한다. ‘다이스케‘는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하게 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이후 ‘다이스케‘는 별다른 직업없이 유유자적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서구의 선진 교육을 받았지만 오히려 혼자서만 지식인척 살아간다.
[히라오카는 마침내 자신과 멀어지고 말았다. 만날때마다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히라오카뿐만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더라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대사회란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대지는 자연과 이어져 있지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금세 조각조각 나버린다. 집 안에 있는 인간 역시 조각조각 나버린다. 다이스케는 문명은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P.360
그리고 몇년 후 세사람은 재회하는데, ‘다이스케‘는 ‘히라오카‘와 ‘미치요‘ 부부가 행복하지 않고, 궁핍하게 산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이스케‘가 보기에 두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이스케‘는 자신의 마음이 여전히 ‘미치요‘에게 향해 있음을 느낀다. 왜 그때 나의 마음을 뒤로하고 사랑대신 우정을 택했던 걸까?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강한 향기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하게 떠올렸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처음으로 자연스러웠던 옛날로 돌아가는군.‘] P.697
뻔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소세키의 문장은 뻔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사랑, 우정,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라는 문제 앞에서 고뇌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에 동화될 수 밖에 없었다. 지식인이자 이성적인 ‘다이스케‘ 라면 당연히 ‘미치요‘를 선택하면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그녀가 불행하면 할수록 더 끌리게 된다.
[˝난 미치요 씨를 사랑하고 있네.˝
˝남의 아내를 사랑할 권리가 자네에게 있나?˝
˝어쩔 수 없어. 미치요 씨는 물론 자네 소유야. 하지만 물건이 아닌 인간이니까 마음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지. 본인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애정의 정도나 대상을 명령할 수는 없지.˝] P.837
왜 그깟 마음 하나가 뭐길래 ‘다이스케‘는 안락함을 버리려는 걸까? 불행한 미래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저런 선택을 하려는 걸까? 그런데 난 ‘다이스케‘가 이해가 된다. 마음이란 원래 그런거니까. 명확하게 구분할수도, 쉽게 버릴수도 없고, 돌아서려고 하면 할 수록 끌리는게 마음이니까.
[그는 자신이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만족감을 이해해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사회도, 세상사람들도 모두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어 태워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자신을 빨리 태워 없애기를 간절히 바랐다.] P.869
Ps 1. <그 후>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Ps 2. 역시 나의 소세키 최고의 작품은 <그 후>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