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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N22049
하루키 좋아하나요?
(봄날의 곰을 좋아하나요를 변형해 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두명의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난 "무라카미 하루키"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겠다. 만약 한명의 작가를 꼭 꼽아야 한다면? 그건 불가능 하다. 그때는 차라리 "필립 로스"라고 해야겠다.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일단 가장 부담없이 아무 책이나 꼽아서 읽을 수 있는 작가는 "하루키"가 확실하다. 이번주에 멀리 갈 일이 있어서 가방속에 넣고 나갈 세권의 책을 골랐는데, 그 중 하나가 "하루키"의 <반딧불이>였다. 특별히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하루키"의 작품이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까지 이 책을 두번은 읽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드는데, 그럼 이번이 삼독인 작품이다.
<반딧불이>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역시 가장 좋은 단편은 표제작인 <반딧불이>이다. 이 단편은 "하루키"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노르웨이 숲>의 초창기 단편 버젼이다. <노르웨이 숲>과 아주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단편만의 임팩트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부자연스러우리만큼 투명했다. 그녀의 눈이 이렇게 투명하다는 것을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조금 신비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투명감이었다. 마치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다.] P.21
<반딧불이>에서 '반딧불이'는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하루키"는 왜 갑자기 '반딧불이'를 등장시킨 걸까? 아마 결코 닿을 수 없는,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반딧불이'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이 편지를 몇백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한없이 슬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눈을 말끄러미 바라볼 때 드는 느낌과도 같은,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런 기분을 어디로 가져갈수도, 어디에다 넣어둘 수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윤곽도 없고 무게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몸에 걸칠 수조차 없었다. 풍경이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내 귀까지 닿지 않았다.] P.42
그 다음으로 좋은 단편은 <헛간을 태우다> 이다. <헛간을 태우다>는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과 동일한 제목인데,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내가 아직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을 태우다>를 안읽어봐서 어떤면에서 다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미국식 헛간과 일본식 헛간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아직 한편밖에 안읽어 봤는데(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이번 기회에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어봐야 겠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나는 기혼이었지만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니 가정이니 수입이니 하는 것은 발 크기며 목소리 톤이며 손톱 모양과 같이 순수하게 선천적인 것이라고 믿는듯 했다. 요컨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P.51
<헛간을 태우다>를 다 읽고 나서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그녀의 남자친구)가 마지막으로 태운 헛간은 어느곳에 위치한 헛간이었을까? 그가 태운건 헛간이 아니라 여자친구인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분위기가 왠지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다섯 개의 헛간 앞을 달린다. 우리집 근처의 헛간은 여전히 한 곳도 불타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헛간이 탔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또 12월이 오고, 겨울새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나는 불에 타 허물어지는 헛간을 생각한다.] P.80
나머지 네편의 단편은 나에겐 재미있었지만, 위에 소개한 두 작품에 비해선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하루키"의 필력과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작가가 '장님 버드나무'나 '코끼리 공장' 같은 것을 소재로 글을 쓸수 있을까? 이래서 "하루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호불호가 극명히 나눠지긴 하겠지만.
하루키 너무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