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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할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창작의 고통은 독자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가혹할 것이다. 특히 어느정도 유명세가 있는 작가라면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은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최은영 작가님은 본인의 첫 장편 소설인 <밝은 밤>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P.341
나같은 독자야 겨우 몇시간 투자하면서 책을 읽지만 작가님은 무려 2년을 준비했다고 하시니 어떻게 보면 난 참 쉬운 인생을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다행히 2년이라는 시간이 보상받을 정도로 멋진 장편이 나와서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작가님께 감사함을 남길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부터 현재까지, 5대에 걸친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인생이야기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고조할머니ㅡ증조할머니(삼천)ㅡ할머니(영옥)ㅡ어머니(미선)ㅡ딸(지연) 을 축으로, 그들이 만났던 사람들과의 사랑, 우정, 이별, 배신, 추억, 그리움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틱 하지도 않고, 부귀영화도 없으며, 극적인 연출도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공감이 가고 마음에 와닿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게 좋은 항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사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P.14
특히 주요 등장인물들이 힘들때마다 옆에서 힘이되어주던 사람들의 존재는 독자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시 딸로 태어나는 것 같고, 그 딸이 다시 손녀로 태어난 것과 같은 인연의 이어짐은 독자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너의 아픔을 내가 위로해 줄께' 라고 말이다.
이 책이 또한 좋았던 이유는 남여간의 사랑이 갈등의 해결책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자신의 아픔을 누구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신선했고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책을 읽다보면서 "지연"이 설마 남자를 만나서 재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건 아니겠지? 하고 걱정을 했었다. 남자를 만나는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이 책의 이야기 흐름상 "지연"이 재혼(?) 하거나 남자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나오면 엄청 어색할것 같았다. 그런데 역시 작가님이 대단한게 "지연"이 남자를 만난다는 그런 낌새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인기있는 작가님의 최신작품에, 리뷰도 많아서 줄거리는 생락하겠다. 다만 5대에 걸친 백년 이상의 시간이 그려진 멋진 이야기 이다보니, 차라리 <토지>와 같이 '대하소설' 처럼 초대형 장편으로 썼으면 어땠을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엄청난 작품이 됐을텐데...그런데 그랬으면 작가님 쓰러지셨으려나? 😅 (농담입니다...)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Ps 1.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희령"이 나에게는 강원도 속초를 떠올리게 했다.
Ps 2. 역시 이 책을 읽고 떠오른 노래
가을방학 <나미브>
https://youtu.be/cTs4Q2WYQy8
넌 묻지 왜 또 자꾸만
싹도 틔워줄지 모를 내게로 와
난 웃지 너와 마찬가지야
제멋대로 흘러넘쳐 온 것뿐
난 묻지 왜 안을 때면
다른 모든 세상과 등지게 될까
넌 웃지 그래도 그 덕분에
이토록 확실한 네 편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