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이디푸스 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진정 인간에게는 보고 알아야 할 것이 많기도 하도다. 하지만 보기 전엔 그 어떤 예언자도 미래의 일이 어떻게 될 지 알 길 없도다.] P.291
운명이라는 걸 믿나요? 이미 비극적인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면 당신은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를 거부할 것인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작품집인 <오이디푸스 왕>은 신이 정해준 운명에 맞써 싸운 인간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등 총 네편의 희곡 작품들이 담겨져 있는데, 역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이디푸스왕>이다.
1. <오이디푸스 왕>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 너의 어머니를 범할 것이다˝라는 신의 저주를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그가 자라난 고향을 떠나게 되고, 여정 중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 왕국의 미망인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하게 되며, ‘테바이‘의 왕이 된다. 그리고 두명의 아들과 두명의 딸을 낳게 된다.
그러나 ‘테바이‘에 역병이 돌고,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선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자에게 보복을 해야만 역병이 없어질거라는 신의 예언을 듣는다. 선왕을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이디푸스˝는 선왕을 죽인 범인이 자신이었으며, 선왕인 ˝라이오스˝가 실제 그의 생물학적인 아버지, 지금은 그의 부인인 ˝이오카스테˝가 실제 그의 생물학적인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저주받은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자라난‘ 고향을 떠났었지만, 결국 그는 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테바이‘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부인인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게 되고, ˝오이디푸스는 그녀의 주검 앞에서 그녀의 브로치를 이용해 자신의 두 눈을 찌르게 된다.
[아아,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구나, 명백하게! 오, 빛이여, 이제 내가 너를 보는 게 마지막이 되기를!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태어나서,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들과 어울렸고, 죽어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죽인 자라는 게 드러났으니!] P.93
저주받은 운명을 내린 건 신이었지만, 실제로 저주받은 운명을 실행한 것은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신의 예언에 종속되버릴 수 밖에 없었던 인간 ˝오이디푸스˝는, 그냥 그렇게 살았어야한 운명이었던건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는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스스로 선택한 여정을 떠났고, 진실을 감추기 보다는 진실을 알려고 했다. 그의 운명은 그가 선택한 것이었다. 비록 그 운명의 끝이 비참했더라도 말이다.
2. <안티고네>
이러한 ˝오이디푸스˝일가의 비극은 두번째 작품인 <안티고네>에서도 이어진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의 죽음에 대한 비극 이야기인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왕권 다툼 때문에 두 오빠를 동시에 잃게 된다. 두 오빠의 사망으로 인해 ‘테바이‘의 통치권은 ˝안티고네˝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가지게 되고, ˝크레온˝은 반역자인 ˝안티고네˝의 오빠 ˝폴뤼네이케스˝에 대한 장례를 금지하며, 이를 어길시 엄벌해 처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부모님에 이어 오빠들까지 사망함에 따라 이를 비통히 여긴 ˝안티고네˝는 왕명을 어기면서까지 그의 장례를 치룬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죽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오빠의 장례와 자신의 죽음을 바꾼다. 이는 엄연한 그녀만의 의지였다.
[하지만 내가 때가 되기도 전에 죽는다 해도, 그 편이 더 이로우리라 싶습니다. 누구라도 나처럼 큰 불행 속에 산다면, 어떻게 죽음이 더 이롭지 않겠어요?] P.144
그렇게 그녀는 ˝크레온˝의 명령에 의해 동굴속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크레온˝에게 신의 비극적인 예언이 집행된다. 그녀를 사랑하는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그녀의 주검 옆에서 자살하게 되고, 이에 연쇄하여 ˝하이몬˝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뤼디케˝ 역시 자살한다. 그렇게 ˝안티오네˝를 가혹하게 대한 ˝크레온˝의 오만함은 결국 비극을 완성지었다.
˝안티고네˝의 죽음을 헛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도리를 하였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권력에 도전하여 죽을 운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해야할 일은 하는 인간의 의지는 그래서 죽음보다 더 값진게 아닐까?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나타나게 하라, 운명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최고의 것이, 나를 위해 최후의 날을 이끌고서. 오게 하라, 오게 하라, 내가 더는 다른 날을 보지 않게끔.] P.198
이어지는 단편 역시 인간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신의 농간에 의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전쟁 영웅 ˝아이아스˝의 최후를 다룬 <아이아스>, 남편인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얻기 위한 시도가 결국 남편을 죽게 만들어 버린 <트라키스 여인들> 역시 신과 미물의 저주 때문에 결국 약한 인간은 파멸한다는 이야기로, 주인공들은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죽음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죽음이 신의 뜻일 지라도, 왕의 명령일 지라도, 미물의 저주일 지라도 말이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