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단편 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주인공의 시점에 빠져 들기 위해서는 관련된 내용이나 배경들이 어느정도 언급이 되어야 공감이 잘 되고, 긴 호홉으로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단편의 경우는 분량적인 측면 때문에 많은 부분이 함축되고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독자가 임의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뭔가 공감이 가는 내용의 단편일 경우 빠져드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상상력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이해의 어려움?
그래서 치밀하고 방대한 구성과 무한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장편은 누구나 쓸 수 없지만,
분량이 짧고 단 하나의 에피소드로도 글을 쓸 수 있는 단편은 누구나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편은 그 짧은 문장과 문단 속에서 독자에게 임팩트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장편에 비해 잘 쓰기는 오히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말에 러시아 작가인 ˝이반 부닌˝의 <부닌 단편선>과 미국 작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두 단편집을 읽었다. <부닌 단편선>은 정말 러시아의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고, <사랑을 말할 때...>는 정말 미국의 풍자적이고 쿨한 냄새가 진동하는 작품이다.
이 두 단편집의 느낌을 내가 생각하는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부닌 단편선>
‘눈 내리는 상트페테르부르그 한 성당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여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눈내리던 그때의 추억을 간직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
<사랑을 말할때...>
‘두 남녀가 서로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새로운 사랑은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 없이 쿨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이야기‘
두 작품의 느낌이 어떤 차이인지 느껴지실려나 ㅎㅎ
추가해서 각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데
<부닌 단편선> / 218페이지
[정말 그 저녁이 존재하긴 했던 걸까? 그렇다. 내 인생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날 뿐이다. 다른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꿈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믿고 또 굳게 믿는다. 그곳 어딘가에서 바로 그날 저녁 때처럼 사랑과 젊음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사랑을 말할때...> / 212페이지
[˝바로 내일 우리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상대, 그러니까 다른 한쪽은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곧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그러면 이 모든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랑이 그냥 추억이 되겠지. 어쩌면 추억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두 작품간 극명한 느낌의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말할 때...> 보다는 <부닌 단편선>이 더 좋았다.
<부닌 단편선>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주제인 서정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인데다, 러시아 작가여서 그런지 더 훨씬 좋았고 공감을 했다.
반면 <사랑을 말할 때...> 단편집은 모두 17개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랑보다는 삶과 연관된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단편 대부분이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등장인물들 모두 쿨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 미국 문화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각 단편들의 결론이 너무 암시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결론은 ˝이반 부닌˝의 단편집은 내 취향이었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해설에 써있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 것과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보다.
나는 미국 보다는 러시아 작가의 작품이 맞는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