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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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가장 처음 수록된 소설이기도 하고, 가장 내 취향에 잘 들어맞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아주 괴상한 크기와 형태의 코를 가진 한 스님이 주인공으로 평소 자신의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한 인물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비웃는 것만 같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한 제자가 코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서 그 스님의 코를 짧게 만든다. 과연 이 스님은 어떻게 될까.

아주 짧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그 안에 인간의 나약하고 간사한 본성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나혼자만의 비밀(?)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소설 속 인물의 행동으로 반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씁쓸한 조소를 짓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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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불 속]

북클럽 문학동네에 가입하면서 웰컴키트로 <트러스트>라는 책을 받았는데,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해 검색을 좀 했더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님의 코멘트가 눈길을 끌었다. ‘라쇼몽식 전개’. 그래서 <트러스트>를 읽기 전에 이 작품을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쇼몬>을 읽게 된 것이다. (여기서 ‘라쇼몽’이란 일본 영화를 말하며, 이는 이 작품집에 수록된 <라쇼몬>과 <덤불 속>을 영화화하였다.)

<라쇼몬>이라는 작품을 읽을 땐 잘 몰랐으나, <덤불 속>을 읽고 나니 장강명 작가님이 말한 ‘라쇼몽식 전개’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인물들의 상반되고 모순되는 증언들을 담은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혹은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이 작품은 끝끝내 밝히지 않는다. 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할 수도 있겠으나, 이조차 이 작품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라쇼몽식 전개’라고 한 것은 이 작품이 이런 서술 방식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 작품 나온 당시의 사람들에겐 정말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덤불 속>은 한번쯤 읽어보는 데에 의미가 있는 작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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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변]

단편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수록된 ‘모든’ 단편들이 전부 다 마음에 들기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작품집 역시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 작품들이 몇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지옥변>이었다. ‘호리카와 대신’의 명을 받들어 지옥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된 화가 ‘요시히데’가,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그린다는 (나름의 신념으로 인해) 자신의 딸이 불타 죽는 모습을 그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불쾌한 기분과 머릿속 물음표 몇 개만 남겼을 뿐이다. 그러다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북튜브 채널 ‘너진똑’의 영상에서 이 작품을 다룬 영상을 보고 그제서야 납득이 되었다. 이분도 이 작품을 대차게 까고 있는데, 책을 읽은 사람은 영상을 직접 보길 바라는 마음에 링크를 적으려고 한다. 나는 그저 이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만 남기겠다.

https://youtu.be/mX9zPWhGS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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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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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은 ‘키티’라는 여성 주인공의 불륜을 들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상대는 타고난 비주얼과 피지컬을 갖춘 ‘찰스’.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는 자신과 함께 콜레라가 창궐한 어느 시골 마을로 가는 출장에 동행할 것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을 시 이혼 소송을 제기할 거라고 협박한다. 키티는 찰스에게 달려가서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하지만 찰스는 나몰라라(?)를 시전한다. 이로 인해 키티는 온갖 배신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힌채 남편을 따라 콜레라의 소굴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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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2-30%의 내용만을 설명한 것이지만 이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를 다 본 듯하다. 그래서 이후로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미심쩍었으나, 기우였다. 서머싯 몸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말은 결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가치관으로서의 ‘여성’의 역할만을 알고 있었던 주인공이 점차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보려는 그 노력의 과정들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문체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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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감동적인 여운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감동이라 함은 성장소설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성취하게 되는 정신적인 성장 내지는 성숙의 결말에서 비롯되는 마음이었다. 불륜으로 시작해서 성장으로 마무리되는 서사를 담은 <인생의 베일>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교훈과 감동을 모두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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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직전에 읽은 <달과 6펜스>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자는 심산이었다. <달과 6펜스>가 좋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작품 중 간간이 끼어있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았던 게 가장 크다. 이를테면,


📖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달과 6펜스>, 11p)

📖 하지만 동정심을 발휘한다는 것은 미덕이긴 하나 그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미덕을 남용하는 수가 많다. (같은 책, 31p)

📖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 머리로는 알지 모르나 - 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같은 책, 176p)

📖 사람이란 사교적인 관계를 통해서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외양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람을 진짜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소한 행동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스치는 순간적인 표정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같은 책, 229p)


다시 읽어도 너무 좋다다만 <인생의 베일>에서 이러한 문장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작품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기대했던 <달과 6펜스> 매력 하나를 느끼진 못한 듯하여 (아주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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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6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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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인해 ‘코니’의 남편 ‘클리퍼드’는 성불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클리퍼드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육체 관계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훨씬 중요하다고 코니에게 말하지만, 코니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고 삶의 허무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존잘 상남자(?)인 사냥터지기 ‘멜러즈’를 만나게 되며 뜨거운 관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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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직접적, 노골적으로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당시에는 출판될 때 외설 시비를 겪기도 하였으나, 인물들의 심리 또한 상당히 예리하고 촘촘하게 쓰여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에로티시즘의 고전’이라 일컬어진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촘촘한 심리 묘사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코니’의 입장에 몰입해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공허한 삶 속에 지쳐있었고 또 멜러즈를 만나며 다시금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전개되니, 어쩐지 독자로서 나는 코니의 새로운 출발을 절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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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불현듯 홍상수 감독이 떠올랐다. 실제 미녀의 여배우와 사랑의 도피를 벌인 홍상수랑 이 작품 속의 코니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세세하게 다른 부분들이야 많겠지만, 적어도 기존 남편/아내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모습만은 똑같지 않은가? 홍상수 뉴스를 보면서 ‘저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하며 욕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와 반대로 홍상수와 비슷한 위치의 ‘코니’는 또 응원하는 내 자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깨닫게 된 것만 같아 조금 비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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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홍상수-김민희 커플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은 전에 그렇게 욕했으면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나오는 코니-멜러즈는 응원한 모순적인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치밀한 심리 묘사가 영향을 끼친 같다. 책을 읽으면서 세밀하게 서술된 인물들의 심리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그들에게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그래서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면서도 동시에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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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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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라는 것 말고는 이 책에 대해 딱히 들은 바는 없다. 여러 북튜버들이 이 책에 대해 언급하긴 하였으나 재밌게 읽었다는 후기보다 썩 좋은 감상은 아니었다는 후기가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져서 구태여 이 책을 읽진 않았다. 하지만,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에서 아란 부장님이 너무 재밌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지금까지 아란 부장님이 추천하신 책들 전부 내 취향과 찰떡이었다) 한번 믿어본다 하는 마음으로 사서 읽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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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을 내 마음 속 원픽 리스트에 올려놓을 정도로 너무 재밌게 읽었다. 아직 안 읽은 그의 작품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할 정도이다. (민음사 패밀리데이만을 학수고대 중이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무래도 고갱을 본보기로 만들어진 인물인 듯한데, 실제 고갱의 삶과는 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나는 고갱의 실화를 담은 작품으로 읽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허구적인 소설로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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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증권 거래소에서 일할 정도로 잘나가는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을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한순간에 떠나버리고선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런 이야기이다.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모습,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없이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스트릭랜드의 모습이 소설 전체를 아우른다. 그래서 만약 스트릭랜드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었다면 나는 봇물 터지듯 폭발하는 분통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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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소설은 스트릭랜드가 아닌, 스트릭랜드의 행태를 바라보는 어떤 작가를 서술자로 내세운다. 즉 독자들은 이 작가가 스트릭랜드를 관찰하고 설명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만약 스트릭랜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면… 읽는 내내 분노에 휩싸일 것 같지만, 스트릭랜드를 관찰하는 인물이 따로 있고 그 인물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인 나를 대신해서 이 인물이 화도 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그런다. 그래서 독자로서의 나는 이 작가에게 격하게 공감하며 책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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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마 <달과 6펜스>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다들 느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니 짧게나마 감상을 남길까 한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스트릭랜드의 행동들은 분명히 윤리적으로 보았을 때 맹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그림’이라는 꿈을 앞뒤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좇아 나가는 모습이 내심 멋있게 보이기도,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 속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들을, 아니 상상조차 하지 않을 일들을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대로 추진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나름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달까… 내 스스로의 성향을 고려해보아도 스트릭랜드 같은 행동은 내 인생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이 아주 분명하기에, 그리하여 책을 읽는 동안 스트릭랜드를 마냥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 (75p)

 -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아도 별로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치고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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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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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여성 주인공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평소에는 아내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은연중에 무시하는 듯한 대우가 겉으로 드러나는 가부장적인 남편 ‘헬메르’로부터 순종적인 태도만으로 지내다가 점차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이 드러난다…고 소개하고 싶으나, ‘점차’라는 부사를 사용하는 건 그다지 적절치 않아보인다. 그 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후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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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에게는 ‘헬메르’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헬메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던 것이다. 이후 몇년간은 무탈하게 지내왔으나 남편 헬메르의 부하직원인 ‘크로그스타드’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는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노라에게 남편이 자신을 해고한다면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러니 남편을 잘 구슬려서 자신을 해고시키지 않도록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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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스포일러를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정도의 줄거리 소개와 ‘성장문학’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더하면 누구나 결말을 충분히 예상하지 않을까 싶으므로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불가피할 것 같다. 아무튼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헬메르는 결국 노라의 범죄(?)사실을 알게 되고 노라에게 맹비난을 퍼붓는다. 이때 노라는 그동안의 결혼생활이 모두 허송세월이었다는 사실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결국 남편을 떠난다.

🗣 나는 그 일을 책임질 수 없어요. 먼저 해결해야 하는 다른 과제가 있어요.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일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혼자 해야 해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떠날 거예요.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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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것은 너무나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내가 <인형의 집>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성장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노라의 성장과정이 상당히 짧고 급격하게 나올 뿐만 아니라, 노라의 주체적인 노력이 아닌 남편의 폭언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게 많이 아쉬웠던 것이다. 어쩐지 타인에 의해 성장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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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내가 좋아하는 성장문학인 <내가 말하고 있잖아> 경우에는, 말더듬이 장애를 앓는 주인공이 그를 극복하기 위해 치료소 같은 곳에도 가고 직접 지하철역 근처 대로변에 나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들을 보며 절로 그를 응원하게 되는데, 반면 <인형의 > 노라는 그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색안경이 남편의 폭언에 의해 벗겨진 듯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성장문학을 읽을 때에는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쉬운 느낌으로 독서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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