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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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은 못하겠다. <마지막 이야기들> 속의 단편들은 ([여자들]이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분량이 상당히 짧은 편인데, 그 안에서도 장면 혹은 시점의 전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거나, 해당 장면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부재하여 독자로서는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다리아 카페에서]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연달아서 두 번이나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장을 펼쳤다가 호되게 혼났는데, ‘이게 대체 뭔소리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내용에 대한 갈피를 전혀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품해설에 쓰인 줄거리 요약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이 내용이었어?’하며 말이다.



원래 ‘단편’소설들이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원래는 장편보다 단편 분량의 소설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몰라도, 이 작품집은 ‘독서 고수’들에게나 적합하지 서사성이 강한 작품을 좋아하는 내겐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중에서 (그나마 가장) 좋았던 단편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에 대한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는 총 분량이 열 쪽을 넘지 않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이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것은 인생에 대한 묵직한 통찰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미스 나이팅게일’이라는 한 여성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벌어지는 일. 소년의 연주는 그녀에게 황홀경을 선사하지만 소년의 과외가 끝난 후로 집안에 있던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걸 깨달은 후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때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 소년이 물건을 훔친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느닷없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전애인(유부남)을 떠올리며 자신이 소년을 기만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는다. 이 지점이 바로 내가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전애인이 아내를 기만하며 자신을 만난 것처럼 본인도 소년을 기만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 생각들이, 대체 소년의 도둑질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가 이해되지 않는달까.



그러나 소년이 그녀를 더이상 찾아오지 않게 되며 그녀에게도 내적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또한 시간이 흘러 소년이 성장하여 다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소년의 연주를 들으며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삶 자체가 하나의 경이임을 깨닫게 된다.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마지막 교훈 만큼은 내게 얼마 만큼의 울림을 준 듯한 작품이었다. 

🗣 그는 그녀의 물건을 돌려주러 온 게 아니었고, 곧장 걸어들어와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그 음악의 미스터리는 그가 연주를 마치고 그녀의 인정을 기다리며 지은 미소 속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 나이팅게일은 그를 바라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그 미스터리 자체가 경이였다. (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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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행복한 왕자 - 191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선희 옮김 / 더스토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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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아마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왕자>의 내용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온몸이 금으로 칠해져있고 얼굴의 눈과 쥐고있는 칼자루에 보석이 박혀있는 ‘왕자’의 동상이 어느 새 한 마리의 도움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보석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야기 말이다. 어렸을 적에는 TV 동화 시리즈 같은 걸로 본 적 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그때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나이팅게일과 장미]

이 작품은 <행복한 왕자>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크게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 또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행복한 왕자>에서는 ‘왕자’가 그러했다면,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가 그러하다. 이 새는 한 학생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붉은 장미 한 송이를 피워 그에게 선물한다. 읽으면서 ‘이정도까지 한다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아했지만, 어쩌면 그런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이 오스카 와일드가 평생 동안 가장 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 더욱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스카 와일드 작가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는 <심연으로부터>라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정말… ‘처절’하기 그지없다.)



[자기 밖에 모르는 거인]

약 10페이지 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그보다 훨씬 큰 행복한 기분을 선사한 작품이다. ‘동화’의 정석을 따르는 듯한 내용이더라도 그래서 더 크게 감동이 느껴진달까. 내용을 요약하자니 10페이지를 굳이 요약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또 요약하게 되면 결말까지 다 적게 될 것 같아서… 그냥 거인이 앞으로도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만 남기도록 하겠다. (오랜만에 동심을 자극하는 작품을 읽어서 그런지 마음이 아주 몽글몽글하다.)



[충직한 친구]

밀러는 한스를 이용하기만 하고, 한스는 밀러가 자신의 친구라는 점을 생각하며 그를 항상 받아준다. 흡사 밀러가 한스를 가스라이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데 그 둘에게서 내 모습이 모두 비춰보인 것 같기도 하다. 학창시절에는 어딜가나 항상 ‘여우같다’는 말처럼 상당히 약은 애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친구의 존재에 많이 의존했을 시절에는 그들에게 정말 많이 휘둘렸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가 참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힘든 걸 알면서도 ‘친구’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속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한스’의 모습을 보며 많이 몰입이 되고 위로를 받을 수밖에… 그런데, ‘밀러’에게서도 내 모습이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앞서 말한 학창시절에 약은 애들이 있는가 하면 ‘착하기만 한’ 애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과 어울릴 때면 내가 항상 그들보다 우위에 있으려고 했던 것 같고, 그 모습이 ‘밀러’의 행동과 닮아 보였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주체적인 자아가 확립되기도 해서 밀러’든 ‘한스’든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여러모로 이중적이었다는 점이 <충직한 친구>를 읽으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고 반성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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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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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조지 오웰이야말로 ‘칼 같은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는 것을. 전에 읽은 <동물농장>이 우화의 형식으로 반공주의 사상을 그려냈다면, <1984>는 보다 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강하게 경고한다. <동물농장>보다 소설적인 재미는 덜할지 몰라도, 담고있는 메시지는 훨씬 더 무겁고 날카롭다. 읽는 동안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느낌이 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소설은 198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약 4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읽어도 충분히 몰입하고 납득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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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1부에서는 작중 배경을 묘사하는 데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소설 속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약탈을 통해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세 개의 거대한 국가로 통합되었고, 이중 ‘오세아니아’를 작품의 주무대로 하고 있다. 오세아니아의 최고 권력 기구인 ‘당’은 허구의 인물 ‘빅브라더’를 내세우면서 ‘텔레스크린’ 등의 장치를 통해 당원들의 사생활 하나하나를 모두 감시하고 통제한다.

🗣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이 동시에 가능하다. 이 기계는 숨죽인 속삭임을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낱낱이 포착한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모두 도청을 당하고, 캄캄한 때 외에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했는데, (…)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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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통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골드스타인’이라는 인물을 반역자로 내세워 그를 혐오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분노를 그에게로 집중시킨다. 또한 기존의 언어를 줄이며 ‘신어’라는 새 언어 체계를 만드는데, 이는 당에게 반대하는 사상 자체를 막기 위한 활동이었다.

🗣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 (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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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윈스턴’은 이러한 당의 통제에 환멸을 느끼는 인물이다. 앞서 말했듯 1부에선 작중 배경을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써 주인공의 생활 방식을 설명했다면, 2부에 들어서는 주인공이 당에게 반기를 드는 과정을 서술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연인 관계를 맺고,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을 찾아 반당 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하며 골드스타인의 저서를 읽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 그러나 그는 곧 함정에 빠지며 사상경찰에 체포되며 소설은 3부에 접어든다. 3부에서는 윈스턴이 줄곧 고문을 당하는 장면들이 나열된다. 동시에 당은 그의 정신을 개조하고자 하는데, 윈스턴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는 이만 말을 줄이겠다.

🗣 그는 ‘좌중단’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몇 가지 명제들 - ‘당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한다’, ‘당은 얼음이 물보다 무겁다고 말한다’ - 을 제시하고, 이와 반대되는 견해는 듣지도 생각하지도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상당한 추리력과 임기응변 능력이 필요했다. (3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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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라는 존재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세계관이, 어쩐지 지금 시대에 부합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3년에 쓰인 작품해설에선 ‘CCTV’ 등을 예로 들고 있는데, 20 정도가 지난 지금에선 그보다 체계화된 시스템이 우리를 훔쳐보고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알고리즘이다.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인스타 광고 등을 , 우연히 초간을 지속하여 어떤 영상을 보면, 해당 영상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뒤로 우후죽순 쏟아져 내리는 경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무서움을 느끼는데, <1984> 그런 점을 정확하게 꼬집으며 경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읽는 동안 계속 무서웠고, 오한을 느낀 또한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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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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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는 자신의 가족 중에 본능적인 폭력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의 낱낱을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드러내어 작품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영원히 행복할 줄만 알았던 한 가정이 처참하게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나 역시도 책을 다 읽은 뒤에 찾아온 여운이 참 무겁고 짙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어느 파티장에서 만나 첫눈에 반하며 결혼까지 골인한다. 그들은 엄청나게 부유하진 않았지만, 아이를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들은 6년 동안 4명의 아이를 출산하였고,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 노동적 도움을 받아가며 대저택을 장만하여 친척들을 초대하고 파티를 여는 등 그들이 꿈꿔왔던 ‘행복’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간다. 그러나 ‘다섯째 아이’가 들어서면서 문제가 생긴다. 아내 ‘해리엇’은 임신 기간에 신통치 않은 고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괴로움의 나날로 보내고 결국 아이를 출산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가진 그 아이 ‘벤’은 본인을 보러 온 다른 형제 ‘폴’의 팔을 뒤로 꺾어버리기도 하고, 저택으로 놀러 온 다른 가족들의 애완동물들을 죽이기도 하는 등 범상치 않은 폭력성을 보인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는 고함을 치고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은 기본이고, ‘벤’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거나 가족들의 휴가를 위해 잠깐 ‘벤’을 돌보았던 장모 ‘도로시’는 온몸이 피멍투성이가 되는 등 ‘벤’으로 인해 다른 가족들은 많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결국, 남편 ‘데이비드’는 다른 가족들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생각에 ‘벤’을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운영되는 요양소로 보내버리지만, 아내 ‘해리엇’은 그래도 본인의 자식인데 그곳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벤’을 그곳에서 구해온다. 이로 인해 ‘해리엇’은 남편과 자식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비난받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현실에서 ‘다섯째 아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본능 중 하나인 ‘폭력성’으로 보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폭력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것이 발현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면 혹은 같은 수준으로 통제된다면 좋겠건만 사람마다 그 정도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본성을 잘 누르고 살아가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의 조절을 어려워하거나 심지어는 악의적으로 그를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이 작품 속 ‘벤’의 경우에는 본인이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인 듯하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인생을,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만약 이런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들을 대할 것인지 한 번쯤은 깊이 고찰해보아야 할 듯싶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의견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답한다. ‘피해라’, ‘너만 피곤하다’, ‘굳이 상대해서 좋을 것 없다’ 등등. 맞는 말이다.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피할 것이다. 하지만 내 가족이 이렇다면? 내 자식이, 내 형제가 이런 사람이라면? ‘가족’이라는 강력한 연으로 한데 묶여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마냥 피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 질문을 한 편의 소설로 풀어낸 것이 바로 <다섯째 아이>이다.

 


나라면 어떨까. 만약 내가 ‘벤’의 부모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아직 부모보다는 자식의 입장에서 인생을 살고 있다 보니 ‘벤’을 요양소에 보내고 남은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 어머니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해져서 설거지 중이셨던 어머니를 붙잡고선 무작정 <다섯째 아이>의 줄거리를 대강 말씀해 드렸는데, 엄마는 ‘아이가 불쌍하다’며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고 데리고 키울 것’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데 어떻게 나몰라라 하면서 방치할 수 있냐며, 내가 ‘벤’처럼 폭력적이고 온 가족의 불행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지라도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을 거라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코끝이 찡하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무 당연한 것을 괜히 물어본 것인가 싶어 어리석은 나를 탓하게 되면서도 그런 감정을 들게 한 우리 어머니한테 깊은 감동받았다. (사랑해요 엄마…) 더불어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벤’으로 가정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감정 등을 아직은 감도 잡지 못하겠다는 걸,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어머니와의 짧은 대화 후에 다시 이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니, 양측 모두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치 딜레마에 빠진 상황처럼 말이다. 다른 가족들의 평화와 안정을 간절히 바랐던 남편 ‘데이비드’와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꼴을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었던 아내 ‘해리엇’ 두 사람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어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벤’을 구출한 이후 다른 가족들의 힐난을 감당해야 했던 ‘해리엇’에 동정심이 들면서도, 그런 시선을 던졌던 다른 가족들도 무턱대고 책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 요양소에 보낼 것이라는 처음의 생각이 변하진 않았다. 설령 내가 입장이 되어 요양소로 들어가는 희생을 감수해야만 할지언정 남은 가족들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자식을 가져보지 않아서, 부모의 마음을 알지 못해서, 아직은 많이 어리고 어리석어서 이런 생각에 그친 같다. 그러므로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갖게 된다면, 그때 다시 책을 읽고 싶다. 지금 시점보다 사회생활의 풍파를 많이 겪고 경험을 쌓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뒤에 <다섯째 아이> 다시 읽는다면, 그때의 감상은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은 보지 못한 것을 그때 가서는 충분히 고려할 있기를 조심스레, 그리고 마음 깊이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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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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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그아말로 완벽한 ‘영국 집사’다. 스티븐스의 집안은 대대로 집사로서 일해온 가문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훌륭한 집사라는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본인 역시 그러하다. 스티븐스는 한 저택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달링턴 경’을 모시며 살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최근에 미국인 주인으로 바뀌었고, 이 주인은 자신이 미국으로 잠시 돌아가있는 동안 여행이나 즐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스티븐스는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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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스티븐스의 첫 여행기’가 아니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다니면서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액자식 구성의 서사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사실 나는 책을 읽기 전 앞 문단의 내용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스티븐스의 집사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자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내가 영국 집사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 시작하니, 스티븐스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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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두 개 이상의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자아(사회적 자아)와 자연인으로서의 자아. 앞서 말한 것처럼 스티븐스는 ‘직장인’으로서는 정말 완벽하기 그지 없다. 아버지가 노쇠하신 바람에 저택의 윗층 어느 방에서 쉬고 있었고 스티븐스는 아주 중요하고 성대한 연회를 치르기 위해 바쁘게 일하는 중이었다. 이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인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녀에게서 듣지만, 그럼에도 스티븐스는 연회를 끝까지 성공하는 데에 주력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이 사례만 봐도 스티븐스가 얼마나 뼛속까지 집사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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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스티븐스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혹은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아니 자각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행 중이었던 스티븐스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그때의 본인이 많이 서툴렀다는 걸 깨닫는다.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스의 이런 점이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완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서투른 부분도 있기에 정이 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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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책을 읽은 시점은 아직 직장에 들어가기 전이다. 그래서 직장인으로서의 모습에서 그다지 흥미나 공감을 느끼지 못한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직장에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면, 그때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지금과 달리 미래의 나는 조금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같기도 하고, 스티븐스를 더욱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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