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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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여성 주인공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평소에는 아내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은연중에 무시하는 듯한 대우가 겉으로 드러나는 가부장적인 남편 ‘헬메르’로부터 순종적인 태도만으로 지내다가 점차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되는 과정이 드러난다…고 소개하고 싶으나, ‘점차’라는 부사를 사용하는 건 그다지 적절치 않아보인다. 그 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후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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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에게는 ‘헬메르’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헬메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던 것이다. 이후 몇년간은 무탈하게 지내왔으나 남편 헬메르의 부하직원인 ‘크로그스타드’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는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노라에게 남편이 자신을 해고한다면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러니 남편을 잘 구슬려서 자신을 해고시키지 않도록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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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스포일러를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정도의 줄거리 소개와 ‘성장문학’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더하면 누구나 결말을 충분히 예상하지 않을까 싶으므로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불가피할 것 같다. 아무튼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헬메르는 결국 노라의 범죄(?)사실을 알게 되고 노라에게 맹비난을 퍼붓는다. 이때 노라는 그동안의 결혼생활이 모두 허송세월이었다는 사실과,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선 결국 남편을 떠난다.

🗣 나는 그 일을 책임질 수 없어요. 먼저 해결해야 하는 다른 과제가 있어요. 나는 나 자신부터 교육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일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혼자 해야 해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떠날 거예요.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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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 쓰인 이 작품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것은 너무나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내가 <인형의 집>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성장문학’이라고 하기에는 노라의 성장과정이 상당히 짧고 급격하게 나올 뿐만 아니라, 노라의 주체적인 노력이 아닌 남편의 폭언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게 많이 아쉬웠던 것이다. 어쩐지 타인에 의해 성장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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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내가 좋아하는 성장문학인 <내가 말하고 있잖아> 경우에는, 말더듬이 장애를 앓는 주인공이 그를 극복하기 위해 치료소 같은 곳에도 가고 직접 지하철역 근처 대로변에 나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들을 보며 절로 그를 응원하게 되는데, 반면 <인형의 > 노라는 그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색안경이 남편의 폭언에 의해 벗겨진 듯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성장문학을 읽을 때에는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쉬운 느낌으로 독서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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