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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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그아말로 완벽한 ‘영국 집사’다. 스티븐스의 집안은 대대로 집사로서 일해온 가문이었고, 특히 아버지는 훌륭한 집사라는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본인 역시 그러하다. 스티븐스는 한 저택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달링턴 경’을 모시며 살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최근에 미국인 주인으로 바뀌었고, 이 주인은 자신이 미국으로 잠시 돌아가있는 동안 여행이나 즐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스티븐스는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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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스티븐스의 첫 여행기’가 아니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다니면서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서술된 액자식 구성의 서사가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사실 나는 책을 읽기 전 앞 문단의 내용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스티븐스의 집사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자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내가 영국 집사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 시작하니, 스티븐스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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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두 개 이상의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자아(사회적 자아)와 자연인으로서의 자아. 앞서 말한 것처럼 스티븐스는 ‘직장인’으로서는 정말 완벽하기 그지 없다. 아버지가 노쇠하신 바람에 저택의 윗층 어느 방에서 쉬고 있었고 스티븐스는 아주 중요하고 성대한 연회를 치르기 위해 바쁘게 일하는 중이었다. 이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인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녀에게서 듣지만, 그럼에도 스티븐스는 연회를 끝까지 성공하는 데에 주력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이 사례만 봐도 스티븐스가 얼마나 뼛속까지 집사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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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스티븐스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혹은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아니 자각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행 중이었던 스티븐스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그때의 본인이 많이 서툴렀다는 걸 깨닫는다. 책을 읽으면서 스티븐스의 이런 점이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완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서투른 부분도 있기에 정이 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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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책을 읽은 시점은 아직 직장에 들어가기 전이다. 그래서 직장인으로서의 모습에서 그다지 흥미나 공감을 느끼지 못한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직장에 들어가고 조금의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된다면, 그때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지금과 달리 미래의 나는 조금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같기도 하고, 스티븐스를 더욱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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