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 하면 모두 화목한 모습을 떠올리도록 강요받습니다.이른바 억지감동입니다.이에 대해서 심리학자 김정운 씨는 이렇게 꼬집습니다."멋진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가족끼리 모여 하하하 웃고...가족 하면 그런 것을 떠올리는데 그게 다 환상이에요...그런 시간이 얼마나 되겠어요.대부분은 그냥 지지고 볶고...울며 불며 사는 게 가족이에요." 영화배우 기타노 다케시 씨는 더욱 적나라하게 가족을 정의합니다."가족이란 뭔고 하니...누가 안 볼 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 . 하긴 기타노 씨 역시 다른 가족이 보기엔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가족 간 불화는 서양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영어 관용구 중에는 'Black sheep'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가족이나 친인척 중의 말썽꾸러기를 이르는 말입니다.예를 들어 늘 남 두들겨 패면서 합의금으로 돈 날리는 삼촌, 가출해서 유흥업소에 있다 가족들에게 붙들려 머리를 깎이운 고모나 이모...명절날 모였다 하면 재수없는 소리 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누구누구...이런 사람이 검은 양입니다.
조금 긴 관용어로 'Every family has a skeleton in its cupboard'라는 것도 있습니다.직역하면 '어떤 가족도 그 벽장엔 해골이 하나씩 있다'는 말인데 의역하면 '어느 가족이나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뜻입니다.사람이란 존재가 성인군자로만 살 수 없으니 이러저러한 부끄러운 일도 있는데 차마 남에겐 말하기 힘든 수치가 어느 가문이나 다 있다는 뜻입니다.
이병철 씨는 삼성 창업주로서, 그 특유의 통찰력과 용인술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는 기업인입니다.그의 아들 이건희 씨 역시 탁월한 지도력으로 삼성을 일류기업으로 키웠다고 일본에서는 삼성을 배우자는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일가의 형제자매 간 다툼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하고 있습니다.길거리 장삼이사들도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형제지간에 주고 받고 있습니다.어린아이들도 형제 간에 저런 식으로 드잡이를 하면 야단을 맞을텐데 8순의 형과 7순의 동생이라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왕실에서 장남이 승계하지 못한 경우엔 꼭 무슨 사단이 나던데 재벌일가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삼성가의 형제 싸움을 보면 오랜동안 참고 참은 것이 폭발하는 모양새입니다.나이 먹을만치 먹고 세상경험 할 만치 한 사람들이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하고픈 말을 마구 내뱉습니다.동생이 형에게 '집안에서 이미 퇴출된 사람. 나는 한 푼도 더 못준다'고 하질 않나, 형은 동생에게 '집안 분란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하질 않나...이게 일류기업을 일군 사람들이 맞나요?
아마 이건희 씨는 이맹희 씨가 집안의 black sheep이라고 간주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당연히 맹희 씨는 건희 씨가 black sheep이라고 말하고 싶겠죠.하지만 결국 삼성가는 벽장에만 숨겨둬야 할 해골을 전세계에 내보이고 만 꼴이 되었습니다.우리나라 재벌은 유독 가족 간 재산다툼이 많습니다.이제 삼성까지 여기에 끼어들었으니...
이런 세태를 두고 요즘 '정치가는 측근이 웬수고, 재벌은 핏줄이 웬수다'는 말이 생겼습니다.하긴 천하를 호령한 영웅이나 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도 가족 간 불화로 불행하게 산 사람이 드물지 않습니다.그러니 치국평천하보다 수신제가가 더 힘든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