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저서나 저자는 인용은 많이 되는데 실제로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경우가 많습니다.우리나라에서 입시공부할 때 무수히 외우는 유명인사들도 이런 경우입니다.심지어 존경받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예전에 우스개 소리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모릅니다만 대학교 한국사 시험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끼친 영향을 논하라'는 시험 문제가 나와서 수험생 모두 백지를 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액튼(1834~1902)경도 그렇습니다.우리나라 신문의 정치관련 칼럼을 보면 "액튼이 말하기를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운운..."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하지만 이 액튼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잘 모릅니다.요즘 인터넷 시대라서 위키피디아 같은 것을 검색해보면 되지만 그래도 액튼은 그 이름과 남긴 명언에 비해서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에드워드 할레트 카(1892~1982)도 마찬가지입니다.<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외의 저서는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1980년대에 그의 저서들이 꽤 많이 번역되었지만 이젠 모두 절판 상태.기껏 최근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재출간되었을 뿐입니다.또 재미있는 것은 그의 이름입니다.워낙 'E.H.카'로만 알려져 '에드워드 카'라고 하면 그게 누구지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란 무엇인가> 역시 제대로 읽고 소화한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대학가 필독서였다는 등 소문은 무성한데 원래 필독서일수록 읽은 사람이 없는 법이지요.게다가 이 책(원래는 방송강연원고였음)에는 우리에겐 생소한 무수한 유럽인과 사건들이 인용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지않은 것도 사실입니다.아마 첫 페이지를 읽다가 내던져 버린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책 1페이지에서 카가 처음으로 인용하는 저자가 바로 액튼입니다.액튼이 학자였던 시기에는 역사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있어서 "오늘날은 모든 지식을 입수할 수 있고 어떠한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액튼의 장담이 통하던 시기였다는 것입니다.물론 이 믿음은 나중에 산산조각이 났음을 카는 바로 밝혀놓습니다.이 첫머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다음 내용이 무얼까 궁금해서 책을 읽어내려가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바로 책을 내려놓게 됩니다.
헌책방에 참고서 사러 가면 10페이지까지는 공부한 흔적이 있는데 그 뒤엔 깨끗한 책이 많습니다.나 역시 그런 책을 많이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첫페이지에 액튼 경이 인용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이 책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많이 읽혔다는 소문은 거의 거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10페이지는 커녕 첫 페이지도 안 읽은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유명하다니까 읽은 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요? 대학 나온 아저씨 아줌마들이 "우리 땐 이런 책이 필독서였어. 안 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자랑할 때 우리 20대 청춘들은 적당히 새겨들어야겠습니다.
***최근에 두툼한 카의 평전이 번역되었군요.우리 동네 도서관엔 아직 안 왔네요.